70년대 많은 청년들의 경우처럼 강은기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은 ‘한국의 간디’라 불렸던 함석헌이었다. 성경과 동양철학을 독특하고 자유롭게 풀이해 내는 함석헌의 사상과 불의한 정치권력에 맞서 ‘싸우는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는 강은기에게 어떤 ‘길’을 제시했다.어릴 때부터 가져온 기독교 신앙과 출가의 경험, 불합리한 현실과 ···
한때 운동권의 각종 인쇄물을 지칭하는 은어였던 ‘피(P).’ 실로 그것은 운동의 피(血)요 무기였다. 그것은 군사정권의 감시망을 피해 점 조직으로 연결된 구성원들을 동일한 입장과 원칙으로 묶을 수 있는 용이한 도구였고, 지하 언로였으며, 정보에 굶주린 대중의 귀에 정의와 진실의 소리를 들려주는 데 없어서는 안될 선전수단이었다.러시아의 혁명가들이 ···
수능입시부정에다 학부모와 교사까지 가담한 성적조작사건 그리고 ‘일진회’가 몰고 온 학원폭력사태에 이르기까지,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탄식이 빈번한 이즈음 전교조 위원장을 지낸 그이는 자식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딸만 일곱을 둔 그이는 ‘달궈진 쇠판 위에서 튀는 콩처럼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해왔던 터라, 아내와 자식들한테 늘 미안하다. 여느 아버···
제자의 발을 씻는 맘으로, 윤영규 1이틀째 광주에 폭설이 내리던 날, 기아자동차 노조의 부패한 행태를 바라보는 그이의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노조 간부들이 비정규직으로 입사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 챙겼다니, 도덕성이 생명인 노동운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조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입사청탁을 한 사람들의 명단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마···
한국의 ‘마더 존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연방군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인권을 무지막지하게 짓밟았던 미국에는 검은 드레스 차림으로 파업현장을 누비며 특유의 독설로 자본가들의 비도덕성을 맹비난하고 투쟁심을 일깨웠던 마더 존스가 있었다.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예였던 그이는 1867년 남편과 자녀를 황열병으로 잃은 뒤 노동자와 미국의 현실에 눈을 떴다.···
불탄 자리에 깃발을 꽂다. 이소선 1며칠째, 전태일의 영정을 안고 몸부림치는 그이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제 막 사십대가 된 젊은 이소선. 그는 슬퍼한다기보다는 아파하고 있다. 물리적인 통증을 거의 온몸으로 호소하고 있다. 혹시 그는 스물두 살의 전태일을 낳고 있었던 게 아닐까.‘담대해지세요, 어머니…….’자기 몸에 불을 낸 아들은 그렇게 말했다.‘오! 어···
김진균이 다시 서울대 강단에 서게 된 것은 1984년 9월. 이 무렵, 그가 학교와 학계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과거의 ‘관운장’이 아니었다. 5·18민중항쟁 직후의 서명 투쟁으로 해직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존재에 도덕적 우위와 무게감을 더해 주었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진보 학술운동가들이 망라해 있는 산업사회연구회(산사연)···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 했던가. 관 뚜껑을 덮은 후에야 비로소 그 사람됨의 면모를 깨닫고 그가 떠나며 남긴 것들을 헤아리는 일은 사람살이의 쓸쓸한 이면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이 부박한 세상에 살아남은 이들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염치’인지도 모른다.지난 2월 14일 세상을 떠난 진보 사회학자 김진균. 진보운동 진영의 맏형이자 민중의 다정한 벗이었···
가짐없는 큰 자유, 제정구 2 나무가 아무리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싶어도 이 세상 어딘가의 흙 위에 설 자리가 없다면 나무는 존재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이 사람 또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자기 영역, 즉 사람으로서의 제자리를 만들고 누리기 이전에 땅위에 먼저 서야 하고 설 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주거다. …… 땅이 좁···
가짐없는 큰 자유, 제정구 188올림픽을 앞두고 이른바 ‘올림픽 철거’가 한창이던 1986년 여름, 성동경찰서 앞에서는 조금 색다른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빈민운동의 대부’ 제정구가 경찰서에 연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철거민들이 즉석에서 벌인 ‘제정구 구출 시위’였다. 당시 제정구는 하왕십리 철거민들 앞에서 반정부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