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전태일의 영정을 안고 몸부림치는 그이의 사진을 보고 있다. 이제 막 사십대가 된 젊은 이소선. 그는 슬퍼한다기보다는 아파하고 있다. 물리적인 통증을 거의 온몸으로 호소하고 있다. 혹시 그는 스물두 살의 전태일을 낳고 있었던 게 아닐까.
‘담대해지세요, 어머니…….’
자기 몸에 불을 낸 아들은 그렇게 말했다.
‘오! 어머니/ 당신 속엔 우리의 적이 있습니다.’
시인 박노해는 또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 아들은 어머니를 낳고

영별의 순간, 이소선의 내부에서는 자식과의 영별을 담대하고 의연하게 맞이하는 어머니와 자애로운 미소 속에 ‘적’을 감춘 어머니가 한판의 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어머니를 낳(김남주, 『고난의 길』)’는 그 싸움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한 여성이 ‘고난 받는 어머니’에서 ‘고난 받는 모든 이의 어머니’로, 한 사람의 전사로 다시 태어나는 혹독한 과정이었다.
아들이 불탄 자리에 깃발을 꽂고,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야 하는 그 길이 어찌 쉬웠으랴.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이소선은 올망졸망한 자식들과 함께 먹고사는 일 자체가 전투인 가난한 홀어미에 불과했다. 일제 암흑기에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여성이 이 땅에서 겪을 수 있는 시련이란 시련은 모조리 겪으며 살아왔지만, 자기 앞에 이런 고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길’을 열어 준 것은 사랑하는 아들 전태일이었다. 심한 화상으로 얼굴과 팔다리가 다 굳어져 송장같이 되어버린 아들을 보고 이소선은 자기의 생명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때 아들은 말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만은 나를 이해할 수 있지요? 나는 만인을 위해 죽습니다. 내 죽음을 원통하게 생각지 마시고 어둠 속에서 허덕거리고 있는 어린 동심들에게 햇빛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 어린 근로자들을 나로 생각해 주시고 그들 모두의 어머니가 되어 주세요.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 주세요. 하시겠지요?’

“뭔 소린지도 모르고 듣고만 있으니까 ‘하겠지요? 꼭, 꼭!’ 하면서 큰소리로 대답하라는 거야. 금방 죽는데 어떻게 크게 대답을 하겠어. ‘꼭, 꼭!’ 하는데 화기가 올라와서 끓으니까 의사가 (목에) 네모 칸을 잘랐어. 거기서 피가 퐁퐁 솟아나오는데 어휴,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해.”

이소선은 눈물을 삼키며 아들 앞에 큰소리로 맹세했다.

‘아무 걱정 마라.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
전태일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한 듯 겨우 눈을 감았다. 아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배가 고프다…….’ 이소선은 혼절하고 말았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어

다시 깨어났을 때, 이소선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당국에 청계피복 노동조합 결성과 근로조건 개선 등 8개항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것은 아들 태일이 생전에 ‘못다 이룬 일’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이소선은 그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장례식을 치를 수 없다고 버텼다.

“영혼은 이미 죽어 여기를 떠났는데 그까짓 고깃덩어리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시체를) 동강동강 내서 내 치마에 싸가지고 이 산에다 한 덩어리 묻고 저 산에다 한 덩어리 묻는 한이 있어도, 당신들 보고 장례식 해 달라는 소리 안 할 테니까 다 꺼지라고 했어.”

이소선은 운동권 학생을 비롯한 재야 민주 세력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의심은 커녕 처음 만난 장기표를 부둥켜안고 ‘왜 이제야 왔느냐. 태일이가 그렇게 대학생 친구를 찾았는데’ 하며 눈물을 쏟았다. 이소선이 아들의 장례식을 학생장으로 치르기 위해 서울대 학생들에게 시신을 인계할 뜻을 밝히자, 노동청에서는 이소선을 회유하기 위해 당시 ‘빌딩 한 채를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소선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돈 좋아하는 놈들 이 돈 다 가져가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그 돈의 일부를 영안실 바닥에 뿌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이 나라 노동운동사에 굵은 자취를 남긴 청계피복 노조가 서게 된 것이다.

평생을 가난 속에 살아온 빈민가의 여성이 남은 자식들과 한 평생 편안히 살 수 있는 돈을 거절한다는 것. 어떤 사람들에겐 아예 불가능한 그 일이 이소선에게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그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는 양심에 거리낌 없는 일을 한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말로 그 일을 설명했다. 지금도 그이는 지난 35년 동안 자신이 해 온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로 당국의 끈질긴 회유를 단호히 물리친 것을 꼽는다.

‘맹장(猛將)’으로서 다시 시작하다

장례식이 끝난 후 이소선은 마치 ‘준비된 투사’처럼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1970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그이의 삶은 한결같았다. 노동자와 고난 받는 이들에게는 자애로운 어머니였고, 독재 정권의 탄압에는 두려움 없는 투쟁으로 맞섰다.

 

박정희 유신 정권에서 전두환·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그 깜깜한 암흑기에 노동운동·인권운동의 앞자리에 서 있는 동안 말 못할 곡절은 얼마나 많았겠으며, 그 작은 몸뚱이에 멍과 피딱지가 가실 날은 있었겠는가. 지난 세월, 그이가 얼마나 전투적으로 살았는지는 180번이나 법을 어겼고 세 차례에 걸쳐 3년여의 옥살이를 했다고 기록돼 있는 ‘법무부 문서’가 증명해 줄 것이다.
판단력과 직관, 추진력, 리더십을 두루 갖춘 맹장으로서 이소선의 면모는 오랜 세월 민주화운동에 몸담아 온 재야인사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한 이소선의 변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데가 있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보통은 애처롭고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일 수밖에 없잖아요. 어머니는 그것을 뛰어넘어 아들의 뜻을 이루는 것이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셨어요. 지금이야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의식이 있지만 초기에 아무것도 없었을 때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었다는 게 굉장히 불가사의한 거죠.” 민종덕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의 말이다.

“참 특이하고 대단한 힘을 가진 분이에요. 불의에 맞서는 불도저 같은 성격이 있어요. 한번 결단 내리면 그냥 몸을 던지고 마는, 그런 점에서 태일이하고 굉장히 비슷해요. 그런 개성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할 수 있고 올바르게 살 수가 있구나 …….” 특별한 사상적 지식이나 사회적 경력이 전무한 이소선의 충격적인 변화를 해석해 보려는 시도도 많았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아들의 죽음이라는 ‘극한의 좌절이 그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잠재능력을 외부적으로 극대화시킨 것’(『김종호와 이소선』, 정혜신의 인물탐구, 2001년 5월)이라 했고, 장기표는 ‘스스로 고난에 찬 삶을 살아왔고, 그리고 고난에 찬 삶을 살고 있는 이웃을 지극히 사랑하는 데서 얻어진 것’이라 설명했다. 이소선 역시 고난의 삶 자체가 바로 자신의 변화를 이끈 동력이라고 말했다. “우리 아버지 대부터 그런 걸 갖고 살았어. 우리 아버지는 독립운동 하다가 왜놈한테 대칼을 맞아 돌아가셨고, (노동운동을 했던) 남편은 작년에 죽고, 태일이는 옳게 죽었으니까 내가 어찌 살겄어. 한 맺히는 평생을 지금까지 살았어. 내가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았어.”

남이 안 해 주면 누가 할 것인가

어머니와 아들은 끔찍이 서로를 아끼며 사랑했다. 모자가 사랑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그들은 마치 친구처럼 기탄없이 하루의 생활과 생각을 털어놓았고, 서로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교정해 주었다.

“너무너무 아들하고 엄마하고 사랑했어. 우리 큰집에서 태일이 죽으면 저 엄만 못살 거다 그랬어. 저녁에 오면 지가 오늘 했는 거 다 말해. ‘엄마는 오늘 어떻게 했어? 나 이런 거 이런 거 했다.’ 내가 했던 일 중에 잘못된 거 있으면 지가 고쳐 주고, 지가 어디서 말하고 행동했던 게 잘못됐으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가 고쳐 주고. ‘내일은 절대 오늘같이 잘못된 일을 하지 말자. 양심은 항상 지키야 되는 거다’ 항상 그렇게 살았지.”

태일은 평화시장에서 도봉동까지 걸어 다니며 아낀 교통비 30원으로 풀빵 30개를 사서 어린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그이가 큰 맘 먹고 사준 스웨터며 운동화까지 벗어주었다. 때로 그런 아들이 야속했지만 원망할 수 없었다. 그건 바로 그이가 물려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허가촌에서 가장 못사는 사람이 아파서 죽게 생기면 고기 꼬랑지라도 삶아다 주고, 누가 끼니도 못 잇고 자식 학교를 못 보내면 동회 가서 싸워 갖고 구호양식 타다줬어. 또, 결핵으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염을 안 할라고 그래. 그럼 내가 마스크 쓰고 가서 내 돈 들여서 염했다고. 남이 안 해 주면 누가 할 것인가, 가장 약자를 도와주지.”

그러나 이소선은 그 선한 마음이 노동운동에 쓰이는 것만큼은 한사코 반대했다. 자신이 믿고 의지해 온 장남 태일의 관심이 ‘나’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하루 15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과 질병 속에 신음하는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 개선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이는 본능적으로 어떤 ‘위기감’을 느낀 듯했다. 태일에게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귀띔해 준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의 노동운동을 말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그이는 남편의 말에 순순히 따를 수가 없었다. 큰딸 순옥은 자신의 박사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소선은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노동운동에 관심조차 가질 수 없었다. 오히려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전태일을 심하게 꾸짖을 때가 많았다. 그녀는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그런 일을 하면 그나마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심하게 나무랐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다섯 식구가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에, 경제를 책임진 장남이 노동운동을 하느라 자주 일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힘든 상황을 가중시키는 것이었다. (전순옥, 『끝나지 않는 시다의 노래』, 한겨레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