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큰 스승, 이오덕 2 미군기지 이전을 두고 우리는 지금 평택들에서 아픔을 겪고 있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다른 나라의 군사기지로 내주어야 하는 농민들과 그들의 편에 서서 함께 지켜내려는 이들의 처절한 저항이 정부의 냉정한 공권력과 맞붙어 하늘이 온통 핏빛이다. 또 한쪽에서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문제로 여론이 갈려 소란하다. 그러나 대세는···
1970년대 중반,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주영(51, 송파초등 교사)은 심한 혼란을 겪는다. 눈을 씻고 봐도 학교 안에서 교육현장다운 풍토를 찾을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는 사회뿐 아니라 학교의 교육현장까지 깊게 파고들어 아이들은 병들고 교사는 노예가 되어 있었다. 젊은 이주영은 분노했고 학교의 비민주적인 독재현···
변호사 홍남순은 『함성』지 사건을 각별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박석무와 김남주를 비롯한 전남대 학생들이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을 비난하며 유인물을 뿌린 사건이었다. 학생들을 변호한 홍남순은 무죄판결을 끌어낸다. 하지만 변호사인 그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홍남순은 그 뒤로 시국사건에서 단 한 건도 무죄판결을 받아내지 못한다.“1970년대 공안부 검사들은 ···
역사의 피조물‘민청학련사건’이니 ‘3·1민주구국선언’ 같은 대형 시국 사건들은 이우정이란 이름 석 자를 재야인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기관원들의 감시와 협박에 시달리는 일은 어느덧 그의 일상이 되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여성 노동자들, 철거민들, 동아·조선투위, 원폭 피해자들, 재일동포들, 양심수 가족···
낮은 이들의 작은 처소, 이우정 1 301호실의 기억왜 자꾸만기도가 하늘에서 쏟아질까이 작은 방에쓰리고 아픈 눈물에 젖은 기도들이뼈 마디 마디 울리는 기도들이하늘로 되돌려주는 기도들이늦봄 문익환이 1975년 한국기독교장로회여신도회전국연합회 회보에 기고한 이 시의 제목은 「삼백일 호실」.긴급조치란 망령이 멀쩡한 이들의 손발을 묶던 시절, ···
1961년 5월 16일, 젊은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남한 내 진보세력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쟁과 자유당 정권을 거치면서 교살 직전에 이른 진보적 논의들은 4·19혁명의 열린 공간 속에서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활로를 찾고 있던 참이었다. 사회당을 비롯한 혁신세력들은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과 통일민주청년동맹(통민청, 사회당 외곽조직), 민···
민족경제론 쓰러지다뇌졸중 환자들은 별다른 계기 없이도 괜히 웃거나 우는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감정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긴 탓이다. 박현채는 우는 쪽이었다. 그가 쓰러진 1993년 여름부터 세상을 떠난 1995년까지 약 2년 동안 그가 흘린 눈물은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흘리기에도 벅찬 분량이었다. 울음은 그의 말이었고 실천이었으며, 박현채가 아직 살아 있···
1976년 3월 1일 오후 6시 명동성당에서는 3·1절 57주년 기념 미사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20여 명의 사제단 신부들이 공동 집전한 이 날 미사의 분위기는 여느 때처럼 경건하고 장중했다. 가톨릭 신자로서 미사에 참석한 공화당 국회의장 서리 이효상은 잠시 장내를 둘러보았다. 신자석에 앉은 700여 명의 사람들 중에는 더러 개···
1963년 9월 25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였다. 서울 신당동성당 보좌신부 김승훈은 이날도 많은 사람을 만나며 분주히 돌아다니다 저녁 무렵 성당으로 돌아왔다.비를 맞은 탓인지 몸이 으슬으슬 춥고 떨려서, 그는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식사며 청소며 사제관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식복사 아주머니는 몸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