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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 노동자와 하나된 노동문화예술단 일터

붉은 조명이 들어오고 막이 올라가면 그들은 노동자가 된다. 노동자의 슬픔, 한, 애틋함을 담아 춤추고 노래하는 노동자가 된다. 한편으로 그들은 사장님, 자본가가 되어 있기도 한다. 노동자의 조롱과 비웃음을 받는, 그래서 관객에게 웃음과 잠깐의 위안이 되어주는 역할 또한 기꺼이 되어준다.
무대 위는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로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무대에서 뛰어나와 함께 싸우러 나갈 것 같은 힘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노동문화예술단 일터’가 뿜어내는 열정으로 그들은 노동자와 하나가 된다.

부산 범어사역에 위치한 지하 연습실. 직접 대패질을 해서 마루바닥을 깔고 계란 판으로 방음장치를 한 투박한 모습이지만 훈훈한 사람냄새와 그들의 열기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곧 다가올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던 단원들의 목소리가 여간 힘차지 않다. 노동 극이라는 특성 때문일까. 잔잔하고 세밀한 표현에 앞서 먼저 소리로 제압한다. 노래와 춤, 극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메시지가 강한 연극. 그것이 ‘노동문화예술단 일터’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십수 년간 ‘일터’와 동락해온 윤순심 대표는 “예전에 비해 노동 집행문화가 대규모로 바뀌었죠. 천 단위, 만 단위 관객의 시선을 잡기 위해서는 촌발 날리지만(?) 크고, 강한 것 그리고 현장의 요구사항이 정확하게 표현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고 말한다.
‘일터’가 ‘촌발 날리는’ 순수 창작 노동 극만을 고집해 온지 벌써 17년이다.

노동자문화운동이라는 개념조차 설익었던 80년대 중반, 대학에서 문화패 공연을 하던 학생들이 야학에서 노동자들에게 풍물이나 연극, 탈춤 등을 가르치면서 ‘일터’가 싹트게 되었다고 한다. 87년, 이석규 열사가 수류탄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일터의 초기 선배들이 풍물을 메고 장례식을 함께 했다는 이유로 수배를 받은 적도 있고 공연을 위해 준비했던 여러 소도구들이 검문에 걸려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리기도 하는 등 사회적으로 힘든 시기를 건너 왔다.


“공연을 하다보면 소도구를 많이 써야 하는데. 국가보안법 때문에 탄압을 많이 받았죠. 몇 번은 잡혀가기도 했고요.”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마냥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다.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화려한 문화에 밀려 굵직굵직했던 노동문화 패들이 하나 둘 씩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아직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주축세력들의 초심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여기에 부산이라는 지역적인 조건도 뒷받침 되었죠. 늘 변화무쌍한 서울의 문화에 영향을 덜 받기도 하거니와 창원, 울산, 거제도 등 중공업 중심 주변 도시를 많이 끼고 있으니까요.”

 

맨 몸으로 부딪히다

점차 사라지는 노동문화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지킴을 해왔다지만 이들에게도 예외 없이 연극은 배고픈 직업이다. 93년 ‘민족극 한마당’ 우수상, 2001년 ‘민족예술상’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는 하나 알콩달콩한 연애물도, 웃기는 코미디도 아닌 노동 극의 ‘일터’는 기아(飢餓)와의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초기에는 연습실이 없어 학교며 노동조합 등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밤새 연습했고 제대로 된 분장도구도 없었기에 신문지를 태운 숯으로 시꺼멓게 명암처리만 했다. 그 많은 소품들을 메고 지고 버스를 타고 또 지하철을 타면서 공연장을 찾아 헤맸다고 하니 그야말로 몸뚱이 하나로 버텨온 것이다.
“그때는 곤로에 밥을 해먹었는데 주식이 라면이었죠. 라면에 계란 넣으면 아주 좋은 식단이 됐고요. 단원들에게 예전에는 한달에 3만 원씩 줬는데, 그나마도 줬다가 못 줬다가 했습니다. 옛날 활동일지를 찾아보면 누구 5백 원 빌려가, 3백 원 빌려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그때 총무한테 얼마씩 빌려간 내용을 적어놓은 거지요.”



이런 와중에서도 어렵게 받은 공연비를 파업기금으로 몽땅 기부하고 겨우 차비만 남겨서 달랑달랑 돌아올 때가 많았다며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인데, 그때 선배들이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라며 윤 대표는 웃음 짓는다.
공연비로 조금씩 받는 돈은 ‘일터’ 유지비며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스튜디오에 투자되기 때문에 개인들이 지급받는 활동비는 여전히 최저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친다. 그나마도 건너뛰는 일이 비일비재. “여기서는 농담처럼 돈버는 아내나 남편을 얻지 못 하면 결혼하지 말라고 합니다. 생활 유지를 못 하니까요. 그러니 내부에서 커플이 생기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불러다가 ‘헤어지지~~’하고 압력을 넣어도 사람 감정이 어디 그럽니까. 그러다가 결혼하면 사무실에서 쌀도 좀 퍼가고, 김치도 얻어가고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안쓰럽죠. 아이가 생겨나면 더 감당하기 힘들죠. 그럼 또 직장을 찾아 떠나가고…… 떠나보내야지 어쩝니까.”


결국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후원회를 좀 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후원회 가입을 부탁하는 일이 그리도 어려울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단돈 몇 천원을 부탁하는데 도저히 입이 안 떨어지고 등에서 식은땀이 다 흘렀다고. “차라리 우리가 도움을 요청받는다면 쌀이라도 좀 보태주고 얼마든지 밤새서 일 할 수 있겠는데 말이죠.”

 

노동이라는 화두의 의미

몇 번의 세대교체와 위기를 겪으면서도 이들은 ‘노동’을 놓지 않는다. ‘노동’이라는 화두는 그들에게 언제나 고민해야 할 대상이다. “노동운동은 인간적인 삶의 쟁취를 목표로 합니다. 예전의 인간적인 삶의 쟁취가 먹고 사는 것, 노동의 고통과 굴레의 극복이라면 지금의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동정하고 아픔을 나누며 함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를 떠나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애정, 동정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보태는 쪽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노동 세력은 자기 근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박성진 예술 감독의 이러한 신념은 <아빠, 힘내세요>, <아름다운 연대>, <철로 역정> 등의 작품에 고스란히 배어들었고, 이는 곧 거대자본과 공권력과의 싸움에서 지치고 힘든 노동자들의 어깨를 토닥이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청소부 이야기도 연극이 되나요?

지금까지 노동 분야 하나만을 다뤄왔기에 이제는 다른 분야도 욕심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아직도 못 해본 것이 너무나 많다고. 그리고 이는 너무나 소중한 우리의 ‘할 일’ 이라고 윤 대표는 힘 있게 이야기 한다.
“저는 어렸을 때 가끔씩 장날이나 명절 때 오는 연극단의 공연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했었죠. 왜 주인공들은 꼭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뿐인가. 다 재벌이고 백작부인이고 하잖아요. 왜 노동자들이 연극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가 하고 의아했었습니다.” 


사실 그렇다. 영화를 보고 연속극을 봐도 노동자가 주인공인 경우는 거의 없다. 설사 직업이 노동자로 설정된 경우가 있더라도 그 안에서 노동의 실제 모습이 다루어지는 경우는 얼마나 드문 일인지. 2년 전, <야간 인생>이라는 청소부의 삶을 연극으로 꾸미면서 청소부들을 인터뷰 했을 때 그들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청소부 이야기도 연극이 되나요?”였다고 한다. 이 물음에 ‘일터’는 연극으로써 시원한 답을 던져 주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무대에서 펼쳐지면 눈물도 많이 흘리십니다. 공감이 되니까요. 또 사람들은 주로 자신들의 문제가 전부인 줄 알잖아요.

그 애환을 보면서 일반 관객이나 다른 노동자들도 함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술의 주인공은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연극이 됩니다. 왜 안 되겠습니까?”
그들의 공연이 많은 노동자들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이유, 그것은 허구가 아닌 노동자들의 진실한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노동’과 ‘일터’를 고집하는 이유를 물어보기도 새삼스럽다. “그러게…… 이상하네……”하며 머리를 갸웃거리는 윤 대표와 “그래도 집에서 노는 사람도 많은데 우리는 좋은 일 하면서 바쁘지 않나”하면서 허허 웃어버리는 박 감독. 결국에는 “하는 일을 더 잘할 생각을 해야겠죠.”라며 앞을 향해 시선을 내뻗는다.


이제 그들은 그동안 담아온 노동자의 소리를 일반 시민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노동의 현실과 가치, 전망을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만 맴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아우를 수 있어야 노동문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서로를 이어주는 건강한 매개체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일터’는 거친 숨을 내쉰다. 이제는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놓을 차례이다. 


 

글 / 서민숙

사진 /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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