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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공간 - 해(解)


당신은 지금 누군가에 의해 혹은 어떤 체제나 조직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그런 생각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힘겨워 하고 있다면 이런 연극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97년 한국을 방문한 브라질의 연극 이론가이자 참여적 실천가인 아우구스또 보알은 사회에서 억압받는 계층을 위해 자신의 연극 이론과 방법론을 적용하기 위한 워크숍을 가졌다. 그가 주장하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에서는 ‘관객이 극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억압을 인

식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현실을 바꾸어 볼 수 있다. 연극은 현실의 모사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이며, 관객은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당시 함께 참여했던 노지향(극단 ‘해’ 대표) 씨를 비롯한 몇몇 이들이 보알의 연극이론에 영향을 받아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공간- 해>를 만들었다.
극단 <해>는 여느 연극 집단과는 좀 다르다.
이들은 자신들이 연극을 제작해 관객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함께 만들 관객들을 찾아다닌다. 우리의 일상이나 삶에서 부딪히는 장애와 상처를 받고 있는 모두를 무대 위의 배우라 여기기 때문이다.
“여성들과 공연을 한다면 그런 거죠. 여성으로서 현실에서 느끼는 억압들, 예를 들면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는 여성도 있고 시댁과의 갈등이 있는 경우도 있고, 육아문제, 남녀 차별 등 이런 일상에서 느낀 것들을 솔직히 털어놓고 이것을 실제 모델을 설정해서 연극 장면으로 만들어요. 무대 위에 나온 주인공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으면 객석에서 보던 이가 나와 그 주인공의 역할을 바꿔 여러 가지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 주는 거죠. 그 곳에서 저희가 하는 일은 연출자로서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함께 그들과 똑같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람자의 하나가 되는 거예요.” 모미나 씨는 그래서 자신은 이 곳의 단원이 아닌 보조자 역할의 애니메이터(Animateur)로 부려지길 바라고 있다.
그들은 그저 관객들이 무대에서 개인의 내면에 잠재된 억압을 찾아낼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어찌 보면 흔히 알고 있는 사이코드라마(심리극)와 비슷할 수도 있지만 사이코드라마보다는 연출자의 개입 없이 참여자가 자발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연극에 해당된다.

연극 치료 ‘욕망의 무지개’

개개인이 살아 온 생활이 즉흥적인 대본의 바탕이 되는 다시 말해 생활 속에서 그들이 겪고 있는 억압들, 수많은 내면적·외면적 억압들을 연극을 통해 드러내는 방식. 그리고 이같은 과정을 통해 능동적인 사회 참여를 이루려고 하는 이들의 연극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자신이 받고 있는 고통과 자신을 누르는 억압을 어떻게 연극으로 표출할 수 있을까?
이들이 이용하는 연극치료 방법 중 ‘욕망의 무지개’의 진행 과정을 통해 그 모습을 들여다보자.
초반에는 신체적, 정신적 긴장을 이완시키기 위해 게임도 하고 뛰어놀기도 하고 자신의 몸의 세포를 모두 다 깨워 몸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머리로만 생각하게 되면 자신의 몸에 갇혀 지내는 부분이 있어서 솔직해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사회생활이란 게 늘 남 앞에서 자신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긴장으로 뭉쳐 있잖아요. 우선 그런 것을 벗어 버릴 필요가 있거든요.


가장 원초적인 나로 돌아가서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솔직해지고 또 달리 볼 수도 있는 준비작업을 합니다. 그러면 특히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참가자들은 꼭 물어요. ‘이건 어디에 좋아요?’ 혹은 이걸 하는 목적이 뭐예요? 그렇게 묻거든요. 그러면 저희가 그래요. 그냥 편안하게 느껴보세요. 내가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 하더라도 그것들이 어느 순간 내 감성에 들어오거든요.”


신체적, 정신적 긴장을 이완시키기 위해서 몸으로 느끼게 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고 한다.
과거에 자신이 받은 억압, 현재도 받고 있는 억압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잊었다면 다행일 수 있지만 대부분이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깔려서 현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숨겨져 있는 욕망들을 찾아내는 작업이 극단 <해>를 꾸려가는 이들의 역할이다.
 

무대 위에서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장면으로 짜서 즉흥적으로 보여주면 참가자들은 주인공에게 다른 어떤 숨겨진 욕망이 있는지를 관찰한다.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당시에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가를 말하고 또 다른 문제를 풀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낸다. 문제 해결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다 끌어내서 여러 가지 설정들을 관찰자를 통해 예시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뒤로 빠지고 자신을 대신해 주는 욕망의 화신들이 반대자와 싸움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여러 가지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쌓였던 고민과 스트레스가 풀려 속이 후련해지기도 하고, 이제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대안을 찾을 수도 있고, 더 중요한 것은 주인공은 그 이후로 현장에 가서 스스로 살아갈 과제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현실을 찾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매 맞는 여성들로 연극을 한 경우가 그렇다.
“대부분 남편의 폭력문제이거나 가정불화거든요. 연극이 끝나고 나면 남편의 폭력에 대해 당장 어떻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까지는 이 문제에 대해 해결 방법이 없이 지고 있었다면 자신의 억압을 깨닫고 내일은 저항을 시작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죠. 이게 바로 가장 큰 성과고 의미죠. 늘 억압에 익숙해져 있는 순종적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욕망을 꺼내 준다는 거죠.” 모미나 씨는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연극은 개인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을 찾아내고 이를 풀어내 주는 좋은 연극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또한 연속적인 프로그램으로 연극을 하기 때문에 자기 치부에 대한 것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콤플렉스도 없애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과 동료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해>가 추구하는 연극의 대상은 억압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장애인, 방황하는 학교 안팎의 청소년, 노동자, 노숙자, 탈북 청소년, 매 맞는 여성, 실직자, 이주 노동자, 빈곤 계층 등 어렵게 살아가며 소외 받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탈북 청소년 같은 경우는 또 다른 느낌이죠. 북한을 탈출하다 부모를 잃은 경우도 있고 또 밀고자에 의해서 죽다 살아난 경우도 있고, 그 나이에 아이들이 받은 상처를 들어 보면 이 연극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미 생과 사의 기로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쉽게 치유되는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죠. 남한에 있는 사람들이 겪은 것 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그 아이들에겐 사실 저흰 할 말이 없어요.”

연극은 삶의 리허설이다

일반적인 연극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나 대리만족, 정서적 순화, 예술적 충족감을 주기도 하고 전문화된 배우의 공연을 보며 감동은 하겠지만 거리는 더 멀어질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물론 보는 연극이 갖는 장점 내지는 유의미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극단 <해>의 연극은 하는 연극과 보는 연극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이 연극의 주제라면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없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들은 공간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연극이라는 것이다.
“연극은 원래 우리 모두의 놀이였으니까 우리가 하는 연극은 그 재미를 다시 돌려받자는 거죠. 축제성, 치유성, 놀이성 모두 다 말이예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한쪽의 부가가치가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다른 어느 구석에는 소외받고 고통 받는 이가 생겨날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생리이며 경쟁에서 뒤쳐지는 자가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한번쯤 극단 <해>의 배우가 되어 상처받은 이들의 역할을 해보라고 권해 주고 싶다.

 

글 · 사진 황석선 stonesok@kd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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