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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엔 지치지 않는 배움이 있다 풀무야학

그 곳엔 지치지 않는 배움이 있다 풀무야학

 

 

저녁 6시, 서울 쌍문동 한 주택가 구석진 건물에 가방을 든 아주머니들이 하나 둘 씩 들어가기 시작한다. 젊은 여자부터 중년의 티를 훨씬 넘어 머리 희끗한 노인들까지 그 구성원이 다양하다. 댄스 교습소는 아닐테고…….
건물로 들어가는 이유는 모르지만 외벽에 걸린 나무 현판이 그들의 목적을 짐작케 한다.
‘풀무야학’에 불이 켜진다.
“사! 백! 팔! 십! 만!”
서너 평 되는 칸막이 교실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이들은 아니다.
“자아, 숫자 다시 한번 보시고 따라 읽어 보세요.”
셈을 가르치는 젊은 교사의 목소리 또한 학생들 못지않게 기운차다.
“여기서 하믄 자~알 되드만 집에 가서 혼자 하믄 잘 안돼.” 푸념하듯 아쉬워하듯 고백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깊은 아쉬움이 베어있다.
“그러니까 복습해야지~이” 옆자리에 앉은 다른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친다.

다양해진 교육 형태에서의 ‘야학’
“처음 이 곳에 올 때는 가르친다거나 봉사하러 온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저희가 배워 가는 게 더 많아요. 여기 어머니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오히려 낮에 직장에서 쌓인 것들이 이곳에 오면 활력소로 변해요. 그러니까 저희가 얻어가는 거죠.” 
낮에는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풀무야학’의 손승권(29) 교장은 나이답지 않게 겸손한 말로 대답을 한다. 겸손한 것에 굳이 나이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마는 워낙 당찬(?) 친구들을 많이 봐온 터라 그 ‘겸손’이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손 교장은 ‘투 잡(두 가지 직업)’인 셈인데 피곤하지 않느냐는 내 물음에 오늘은 중간고사가 있어 조금 일찍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 중에는 종일 고된 일을 하고 수업에 오는 분도 있으니 자신은 거기에 비하면 피곤하단 말이 나올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손 교장이 자꾸 입구 쪽을 보며 눈인사를 건넨다. 어머니뻘 되는 학생들에게 속내 사정을 말하기도 하고 안부를 물어보기도 한다.


지난 70~80년대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배울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던 야학, 한때는 노동자들의 의식화 과정이 이 야학에서 이루어졌을 정도로 널리 퍼져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5년 현재 야학은 더 이상 예전 야학의 모습이 아니다.


물론 여전히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배울 기회를 놓친 이들이 많지만 교육의 기회는 야학을 거쳐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이버 교육과정이나 검정고시, 다양한 성격의 대안학교가 있다. 그러니 굳이 밤 시간대에 졸린 눈을 비비며 야학을 찾는 일은 많지 않다. 자연스럽게 야학은 숫적인 규모에서 적어질 수 밖에 없다. 전국야학협의회에 의하면 현재 전국에 약 160여 개 정도의 야학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야학이라는 개념은 지역마다, 혹은 야학을 운영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어찌됐든 야학의 형태를 지닌 학교는 그 정도의 규모다.

 

주민과 함께하는 생활교육
‘풀무야학’이란 이름으로 출발한 건 지난 1991년, 이전 학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현재 학교에 남아있는 기록에 보면 1970년 ‘세종근로청소년 학교’가 ‘풀무야학’의 전신이었다는 것만 남아 있다. 이후 교사들이 바뀌고 학생들이 줄어 든 상황에서 끊어진 공백의 시간이 많은 것으로 보아 어렴풋이나마 야학의 역사를 짐작할 뿐이다.

“2~3년 전만 해도 학교를 그만 둔 청소년들이나 학교에 다니지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학원을 다니지 못한 친구들이 이곳에서 수업을 받았어요. 그런데 교육 받을 수 있는 매체나 기술학교, 대안학교 같은 것이 보편화되면서 학생들이 하나 둘 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교사들도 열의가 없어지고 학교 체계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죠.” 손 교장의 말이다.
‘풀무야학’도 최근 그런 사회 변화에서 일년 정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새롭게 변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름만 유지하던 검정고시반을 폐지하고 생활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과목을 중심으로 개편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글 과목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한글반’, ‘셈반’, ‘영어반’, ‘한자반’, ‘컴퓨터반’을 집중해서 교육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생활교육’을 하겠다는 ‘풀무야학’ 교사들의 의지인 셈이다. 또한 교사들의 질적인 향상을 위한 교사 워크숍과 세미나를 통해 야학 운영에 관한 커리큘럼 개발과 운영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경제적인 이유로 정규 교육의 기회를 잃은 계층에게 교육의 기회를 줘야 하는 일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야학이 국가 대신 그 일을 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재정 지원을 해 줘야 한다.” 라고 말하는 손 교장은 규정상 현재 청소년들이 없어서 이 전에 정부에서 주던 지원금이 언제 끊길지 적지 않은 고민거리다.

“처음 교장으로 부임한 지난 해에 학교가 근처 창동 시장 안쪽 건물 지하에 있었거든요. 냄새도 나고 환풍도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아주머니들이 너무 열심히 나오시더라구요.” 그때부터 ‘풀무야학’ 교사들과 후원회원들은 어떻게든 학교를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후 적극적인 후원회원 모집과 일일주점, 장터 등을 통해 전세 자금을 마련, 하늘이 보이는 현재 건물에 이른 것이다.
현재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는 구청에서 지원을 받은 것이고 컴퓨터는 정보문화진흥원에 기획안이 채택 되어서 당분간 걱정 없이 수업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마저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시 돌려 줘야 하는 상황이니 마음 놓고 있을 입장은 아니다.
“그나마 건물 주인이 월세를 좀 깍아 줘서 다행이죠.”
손 교장이 먼저 번 지하에 있을 당시 학교 모습과 비교라도 하듯 교실을 둘러본다.
 

학생과 교사가 행복해지는 교육
벌써 수 년 째 ‘풀무야학’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한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한글과 셈을 배운 후 은행에 가서 남의 도움을 빌지 않고 스스로 돈을 찾은 일에 실로 감격스러워한다. 한글과 셈을 잘 몰랐을 때에는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돈을 찾았지만 이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는 것이다.
동네에서 아주머니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아름아름 찾게 된다는 ‘풀무야학’에는 현재 30여 명의 학생들이 밤마다 한글이며 셈, 한자를 배우고 있다. 워낙 변동이 많을 수밖에 없는 어머니들이라 배우는 과정에서 끊기는 경우가 많다. 지속적으로 학교 운영이 이어지지 못한 상황도 있지만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신중한 고민을 하고 있다.





“물론 하나 씩 아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학생들에게 어떤 목표를 설정해 주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중이예요. 예를 들어 영어 과목 같은 경우 6개월 과정에 학기제로 하면 어떨까 하는 거죠. 그러면 봉사하는 교사들도 의무감이 생겨 지속적인 활동을 할 것이고 배우는 학생들은 목표가 생겨 성취감을 얻게 할 수도 있게 말이죠.” 손 교장의 교육 철학은 분명하다.


그는 또 “‘풀무야학’은 ‘행복’이란 말이 가장 중요해요. 학생들의 행복과 교사의 행복이 동시에 이뤄지는 거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 모두가 행복해야 야학의 연속성이 생기거든요. 아무리 자원봉사지만 교사가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학생들이 즐겁게 수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수업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교사의 책임을 강조한다.


현재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는 회원들은 손 교장이나 동료 교사들의 선·후배 등을 통한 20여 명이 조금 넘는다. 턱없이 부족한 후원회원을 확대해서 재정적인 안정을 만들어 ‘풀무야학’을 지역에서 평생교육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소망이다. 그렇게 되면 교사가 바뀌어도 학생들의 교육은 지속성을 두고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꿈구는 교육공동체

“‘풀무야학’은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드리고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김장 담그는 법이나 요리 강좌 같은 걸 가르치는 거죠. 상호 교육에 대한 교류죠. 10년 정도면…….” 손 교장의 얼굴에 벌써 그 그림이 그려지며 행복해하는 표정이 가득하다. 
이번 달에 재정 마련하기 위해 일일주점을 하겠다는 손 교장의 말에 꼭 참석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칸막이 교실을 넘겨본다. ‘풀무야학’을 나와 멀어져 가는 길에도 숫자를 읽는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내게만 크게 들리는 건 아닐까?

 



 


글/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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