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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뿌려대던 장맛비는 오후가 되자 말끔하게 갰다. 습기가 유난히 많아 후텁지근한 날씨에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연신 손부채를 부쳐댄다. 원폭 관련 60주년 행사 ‘서울-히로시마 평화의 종이학 대장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 위한 첫 촬영이 광화문에서 있다는 <다큐이야기>의 김환태 감독을 만났다. 진한 감색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멘 그는 씩씩해 보였다. 아직 점심식사 전이라는 그와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토요일 서울 광화문의 한낮은 어디를 가나 시끌벅적하다. 결국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은 스파게티 집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지금 제작 중인 영화 ‘받들어 총!’으로 시작되었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찍으면서 많이 변했어요
작년 5월 인권영화제에 상영됐던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의 후속편인 ‘받들어 총!’은 내년 말까지 완성해서 2007년쯤에나 선보일 예정이다. 스텝도 다 꾸려지고 영화 작업은 벌써 시작된 상태다. <다큐이야기>는 김환태 감독과 김형남 감독, 이렇게 두 사람이 꾸려나가고 있다. 작년 인디다큐페스티발에 상영됐던 영화 ‘짬’을 만든 김형남 감독은 ‘받들어 총!’의 조연출로 함께 작업 중이다. ‘짬’은 예비역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관한 영화다. 우리 사회에서 병역 거부 이야기를 다룬 첫 영화라서 사회적인 의미는 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영화라고 김환태 감독은 덧붙였다. 이미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을 만들면서 후속편 ‘받들어 총!’을 준비했다고 한다. 군대를 갔다 온 김환태 감독은 병역 거부에 관한 영화를 찍으면서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2002년 <다큐이야기>에 같이 있던 친구가 신년회 계획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2001년 12월에 오태양이라는 친구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야기를 한 그 친구는 오태양의 학교 친구였구요. 한국 사회에서 군대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에 일단 기록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나면 군대는 당연히 가야하는 걸로 생각해 왔던 그는 영화를 기록해 나가면서 자신이 많이 변했다고 고백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변했어요. 그 사람들의 평화적인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들을 보면서 많이 깨달았어요. 그리고 한국 사회가 ‘안보’ 하나를 가지고 얼마나 많이 개인의 권리를 억압해 왔는지 고민하게 됐어요.”
영화 속에서 오태양과 그의 어머니는 2002년 겨울, 서울동부지원에 있다. 어머니는 법정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보고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법정 문이 닫히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글자만 또렷하다. 어머니가 돌아가고 수갑이 채워지는 오태양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7년을 복역한 정춘국 씨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영화는 2003년 8월 15일 현재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수감된 802명을 일일이 자막으로 올리면서 끝난다. 전보다 더욱 깊이 있는 고민을 담아내고 싶다는 ‘받들어 총!’은 전편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여준 사람들의 큰 관심들 때문에라도 조금은 더 부담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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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학년’ 찍을 때 제일 힘들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홍보물이나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프로덕션에서 일을 하던 김환태 감독은 2000년 5월에 독립했다. 그리고 그해 6월에 <다큐이야기>를 만들었다. 첫 작품은 ‘평화의 시대’ 라는 주한 미군 관련 영화였다. 처음에는 남의 카메라를 빌려서 영화를 찍었다. 그러다가 2000년 9월에 거금 319만 원을 주고 카메라를 샀다. 아직도 그때 산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다는 그는 스파게티를 먹다 말고 옆자리에 놔둔 카메라 가방을 다정하게 바라본다.
“제 애마예요.” 카메라 가방을 쓰다듬는 그의 얼굴이 환하다. 91학번인 김환태 감독은 강경대 열사와 같은 학교 같은 학번이다. 그 인연으로 그는 28분짜리 단편 ‘내 친구 경대’를 만들었다. “열사로사의 경대가 아니라, 그냥 인간적인 친구로서의 경대를 ‘내 친구 경대’에서는 그리고 싶었어요.” 그러고 나서 2001년 5월, 강경대 열사를 비롯해 많은 젊은이들이 스러져 갔던 1991년 5월투쟁 10주년을 기리기 위해 91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해에 대학 1학년이었던 10명의 친구들을 카메라 속에 담았다. 그렇게 만든 영화가 ‘1991년 1학년’이다. “그 친구들이 1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었어요. 또 91년 투쟁의 역사성 등을 다시 되짚어보고 싶기도 했어요.”
‘1991년 1학년’을 찍으면서 그는 그동안 별 내공 없이 그저 얕은 고민으로 영화를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에 무척 괴로웠다고 말한다. 이제는 교사로, 주부로, 시민단체 활동가로, 노조 간부로, 취업 준비생으로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된, 1991년에 대학 1학년이었던 친구들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긴 시간 영화를 편집하면서 마음이 힘들기는 했지만 앞으로 <다큐이야기>가 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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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는 창조적 발언이다
그들은 돈이 안 되는 영화를 찍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로 촬영과 편집을 하고 홍보물도 가끔 만든다.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거 괜찮으세요?” “괜찮은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괜찮음은 아니겠죠?” 그가 웃는다. “영화 후반 작업은 어떻게 하세요?” “그냥 자체적으로 다 해결합니다. 영화 한 편 찍는 데 대략 1년 6개월쯤 걸리거든요. 이것저것 다하면 제작비가 편당 1,500만 원 정도는 들어요. 객관적으로 큰 돈은 아니지만 우리가 충당하기에는 큰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작비를 줄이려다 보니 기획, 편집, 촬영, 다 스스로 하게 되죠. 가끔 녹음이나 음악은 다른 데서 하기도 해요.” 영화 후반작업을 자체적으로 다 해결한다는 <다큐이야기> 사무실은 마치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그들의 보물창고는 한성대 입구에 있다. 이라크 파병 반대를 내걸고 병역 거부를 선언했던 강철민 이병의 농성을 다룬 ‘708호, 이등병의 편지’를 찍을 때는 아예 카메라를 들고 8일 동안 강철민 이병과 생활을 하면서 찍었다. <다큐이야기>는 편집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는 ‘708호, 이등병의 편지’로 ‘2004 서울독립영화제상’을 받기도 했다. “그냥 우리끼리 하는 말이 있어요.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 다 모아놓으면 백 명이나 될까 하고 말이에요. 사실 한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백 명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것만 보더라도 독립영화 하는 게 참 힘들다는 뜻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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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독립영화 작업을 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가 않단다. “얼마 전에 같이 영화 작업했던 이와 나눈 이야기가 있어요. 공영방송국의 다큐멘터리들은 그 감독이 속한 방송국 것이지 개인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작업하는 영화는 자기 이름을 걸고, 혹은 단체 이름을 걸고 세상에 유통시키는 창조적인 발언이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반전과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지금 <다큐이야기>는 단편영화 ‘평화Q’(가제)도 준비 중이다. ‘평화Q’는 평화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평화’라는 말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서 이야기를 풀고 싶었다. 그래서 일반인들부터 평화운동가, 아주 보수적인 사람들까지 다양한 인터뷰를 많이 시도했다. “이를테면 전혀 모르는 이에게 카메라를 드리는 거예요. 그러면 그분이 주위 사람들에게 평화가 뭔지를 물어보는 거죠. 여러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늦어도 오는 10월에는 지금 찍고 있는 단편을 완성할 생각이란다. “그럼 배급은 어떤 식으로 하실 생각인가요?”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요. 사실 영화를 만들면 늘 배급이 문제예요. 영화제를 통해서 상영을 하거나, 그래도 작은 상영관들이 더러는 있어요. 영화를 완성하면 그런 곳들에서 상영 의뢰가 들어와요.”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인 영화의 특성상 배급문제는 독립영화를 하는 이들이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는 변수가 많아서 그게 가장 힘들다. 미리 생각하고 철저하게 기획하고 접근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변수가 있게 마련이어서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늘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며 그는 환하게 말한다. 장기적으로는 반전과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다는 <다큐이야기>는 운동으로써의 영화를 생각한다. 늘 농부의 마음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는 어느 선배의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단다. 그들은 다큐멘터리에서 ‘못다 한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극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다. 치열하게 살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든 우리 사회에서 갈팡질팡하는 30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다큐이야기>의 두 감독은 아직 충분히 젊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가 아닌 창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오롯이 담겨있는 독립영화판에서 <다큐이야기>의 건강한 영화들을 많이 만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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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류인숙
사진 /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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