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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을 조금 지나서 탄 마을버스가 안국선원 앞에 멈추자 꽤 많은 사람들이 와라락 내린다. 함께 내린 이들 모두 안국선원 안으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문이 활짝 열린 정갈한 낮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두레문화기행, 두레생태기행, 보리방송모니터회라고 씌어진 초록색 간판이 풀처럼 싱싱하다. 그렇게 열린 문은 아무 사람이나 반긴다는 듯이 환하고 따뜻하다.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마자 책이 빼곡히 꽂힌 책꽂이와 낮은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두레는 우리네 안방처럼 포근했다. 오후에 있을 회의 준비로 바쁜 조채희 사무국장은 동그란 눈에 웃는 얼굴을 가졌다. 명함이라고 내미는데 보니 그냥 소박한 누런 종이에 까만 글자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저희 김재일 대표님이 드라마 작가세요. 처음에는 작가들이랑 드라마 현장을 찾아다니다 보니까 우리나라에 좋은 곳이 너무 많은 거예요. 드라마 작가들만 모여서 다니기에는 아까워서 시민들이랑 같이 다니기 시작한 거죠. 그러다가 시민단체로 ‘두레’가 발족을 했죠. 그러니까 처음에는 문화운동으로 시작을 한 거예요.”
두레는 91년 3월에 문화운동을 하는 문화기행을, 94년에는 환경운동을 하는 생태기행을 만들었다. 해외답사는 맨 처음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70명 정도가 백두산을 갔었다. 이를 시발점으로 삼아 발해 유적지, 인도, 티벳, 네팔, 대마도 또 일본의 백제 유적을 찾는 답사를 꾸려왔다. 오는 7월에 있을 실크로드 답사는 벌써 정원 25명이 다 찬 상태란다.
이 풍부한 인적 자원들을 어떻게 꾸리세요 “답사에 참여하시는 분들을 앞에서 꾸리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두레는 이사회에 연구위원들이 많이 계세요. 문화기행과 생태기행이 따로 구분되어 있어요. 문화기행은 서울기행, 어린이역사교실, 지방답사 이렇게 세 분야로 나뉘어져 있구요. 생태기행도 어류, 조류, 민물고기, 갯벌, 야생화, 나무 등으로 그 분야를 전공하신 전문가들이 동행을 하세요. 문화기행도 각 분야의 연구위원들이 다 인솔해서 합니다.”
외부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두레는 삼천 원부터 시작되는 후원회원의 회비와 이사 회비로 사무실을 꾸려나가고 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장소는 안국선원에서 무상으로 임대해준 지 3년이 다 되간다. 조용한 이곳에 정착하기 전에는 마포에 있는 불교방송국 옆에서 10년, 공덕동에서 2년, 그런 식으로 이사를 다녔다. “이 풍부한 인적 자원들을 어떻게 다 모으셨어요?” “단체 발기할 때부터 공문을 띄웠어요.
문화기행 같은 경우에는 문인들 중심으로 했었구요. 참여하는 회원들이 많아서 회원들 중에서 조직이 자연스럽게 구성됐어요. 생태기행은 각 학교에 생태와 관련된 전공을 하시는 분들에게 공문을 다 보냈죠. 그때 발기인으로 참여하신 분들이 지금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3년이 지나면 간사가 되고, 간사들이 10년 동안 열심히 활동하면 연구 간사가 된다. 이렇게 10년이 넘은 사람들이 두레에는 많다. 조채희 사무국장도 두레에 몸담은 지 15년이 되었다. 어떤 힘이 그녀를 15년씩이나 묶어둘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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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를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두레 안에는 언론감시운동을 하는 ‘보리방송모니터’도 있다. 조채희 사무국장도 처음에는 보리방송모니터 요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삶 자체를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오랜 세월 한곳에서 버틸 수 없었을 거라고 그녀는 말한다. 보리방송모니터는 일주일에 한번씩 전통문화, 환경, 생명에 관련된 방송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뒤에 각 방송사 심의실로 시정을 요구한다. 종교와 전혀 상관없는 두레와는 좀 다르게 보리방송모니터는 불교적 색채를 가지고 있다. 그제서야 책상 위에 얌전하게 놓인 월간 『두레』가 눈에 띈다. 코팅을 한 흔적이 전혀 없는 흑백의 작은 책자다.
“몇 부나 찍으세요?” “93년 10월부터 발행했는데, 처음에는 천 부 가까이 찍었어요. IMF 후에 여건이 별로 안 좋아져서 지금은 후원회원들에게만 오백 부 정도 배포하고 있어요.” “그럼 편집은 누가 하세요?” “시간 있는 사람이 해요. 저희 홈페이지 같은 경우에도 예전에 계시던 분이 만든 거예요. 그래서 좀 소박하죠?” 그녀가 소리 내서 웃는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보다도 쓰기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아서 지금의 홈페이지를 개편할 생각이란다. 나는 보기에도 좋고 쓰기도 편리한 두레의 새 홈페이지를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94년부터 시작했다는 어린이자연문화교실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동그란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막 시작할 때 참여했던 아이들은 지금 대학생들이 다 됐어요. 요즘 여기저기에서 시작하는 체험학습을 저희는 십 년 전부터 했던 거죠. 어린이 체험학습으로는 저희 단체가 아마 처음이었을 거예요. 요즘 체험학습은 이미 갖추어진 데서 많이들 하잖아요. 두레는 정말 인간이 필요로 해서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로 존재하는 자연에서 체험학습을 해요. 아이들이 얼마나 재밌어 하는지 한번 봐야 하는데…….” 조채희 사무국장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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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를 끌고 가는 힘은 바로 ‘건강함’이에요
많은 후원회원들이나 연구위원들, 이렇게 풍부한 인적 자원들을 하나로 끌고 가는 힘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조채희 사무국장에게 물었다. “건강하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외골수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두레는 외부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외부 지원에 집중하다 보면 자체 행사가 부실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별로 지원받을 생각을 안 하죠. 순수하고 건강하고 이익이 개입되지 않은 건강함, 그것이 두레를 여기까지 끌고 오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두레 처음 시작하면서 ‘두레는 고향 같은 곳이다, 대가족 같은 것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분홍색 보퉁이를 든 남자가 불쑥 들어선다. 십 년 만에 두레를 찾아왔다는 남자는 이른 낮술 탓인지 얼굴이 불콰했다. 조채희 사무국장은 남자를 타박한다. 그 타박조차도 정답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참 다정해 보인다. 그녀는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을 위해서 얼른 일어서더니 차를 내온다. 그녀는 조용하고 민첩하다. “지난 일요일 서울답사는 어땠나요?” ‘서울 경강상인들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제목이 붙어있던 서울답사에 대해 물었다. “대부분 열 명에서 스무 명 정도 참여했는데 다른 답사와는 다르게 서울답사는 거의 하루 종일 걷거든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서울 구석구석을 다녀요. 하루에 2만보 정도 걸어요. 우리 대부분이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을 잘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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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칠십이 넘으신 어르신들도 참여한다는 서울답사는 93년부터 시작됐다. 으레 여행하면 늘 지방여행이나 해외여행만 생각했었는데 그런 서울답사가 벌써 십 년이 넘었다니 서울에는 정말 갈 곳이 많은 모양이다.
뒷줄에 설 줄 아는 지혜 근래에 부쩍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김재일 대표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방금 전 분홍색 보퉁이를 들고 온 남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남자에게 연신 앉으라며 웃는 그의 얼굴에 걸린 동그란 안경이 썩 잘 어울린다. 이야기가 자연스레 조채희 사무국장에서 김재일 대표로 옮겨간다. 그에게 두레의 전망에 대해 물었다. “세상에는 자신을 절제하고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두레는 친환경, 친생명을 실천하면서 살고 싶어요. 생명이라는 것이 자연, 환경, 생태뿐 아니라 인간의 인권문제와 생명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인권이 있다면 물고기에게는 어권이 있는 거지요. 모든 생명체들이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두레가 할 일이지요.” |
자연을 정복과 도전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서구의 기계중심 문화를 혐오한다는 김재일 대표는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이 지나치게 서구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환경문제는 우리의 지혜로 풀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 김재일 대표는 10년 계획을 진행 중이다. 한 달에 한 군데씩 우리나라의 자연생태를 답사해서, 10년 후에는 우리나라 108곳의 자연생태를 담은 책을 낼 예정이다. 백 년 전 우리나라의 자연생태를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게 안타까워서 이 일을 시작했다는 그는 이백 년 뒤, 삼백 년 뒤에 오는 사람들이 읽을 책을 준비 중이다. 지난 4년 동안 답사를 다닌 곳이 47군데라고 하니 이제 6년 뒤에는 김재일 대표의 꿈이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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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자 뒷목덜미에 감기는 한낮의 여름햇살이 제법 따갑다. 건강하게 지켜서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어찌 자연뿐이겠는가. 뒷줄에 서서 묵묵히 자연과 환경과 인간 본연의 심성들을 올곧게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두레에게 응원을 보낸다. <류인숙>
글 / 류인숙
사진 /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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