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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에서 교육을 품다 쌀보리 공부방

공부방에서 교육을 품다 쌀보리 공부방

 

지루한 장맛비가 도대체 앞으로의 날씨를 가늠하지 못하게 한다. 횡성 가는 중앙고속도로는 2킬로미터에 한 번씩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비가 내린다. 그리고는 또 젖은 해가 뜬다. 취재 일정에 맞춰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인터넷 기상청 홈페이지를 수시로 드나들며 얻어낸 그나마 나은 날인데도 하늘은 도움을 주지 않을 모양이다.
강원도 횡성, ‘쌀보리 공부방’에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땀 흘리며 벌겋게 달아 오른 채로 공부방에 들어온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보자 넙죽 인사를 한다. 들어오자마자 주방을 기웃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은 마냥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선생님, 오늘 간식 뭐예요?”
“오늘은 수박하고 주먹밥”

 

농촌의 교육 현실

이 곳 ‘쌀보리 공부방’은 지난 2002년 처음 문을 열어 횟수로 다섯 해를 맞고 있다. 상근하는 전담교사와 자원봉사를 포함한 예닐곱 명의 교사가 미술과 사물놀이, 수학, 만들기, 영어 과목을 가르친다. 과목이나 교사를 본다면야 여느 도시 공부방과 다를 게 없지만 농촌지역 공부방의 모습은 교과 과정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처음 공부방을 운영하게 된 건 주민의 60%가 농업을 하고 있는 횡성이라는 지역에 여성농업인센터를 만들면서 보육사업과 방과 후 아동지도에 대한 사업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였습니다. 어찌 보면 여성 농민들의 가장 큰 고충이 아이들 교육문제인데 시골 읍내에 도시처럼 학원이 활발히 운영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치더라도 경제적으로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에 내 놓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질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농촌형 공부방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한영미(40) 횡성여성농업인센터 소장은 공부방을 만들게 된 농촌의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이 26명이지만 초기에는 50명이 넘기도 했다는 말을 덧붙인다.

 


  

 

횡성에는 총 9개의 읍, 면이 있는데 ‘쌀보리 공부방’에서는 읍에 사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부방에서 운영하는 차로 이동시키는 일까지 하고 있다. 시골 공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공부방이 끝난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는 데 차로만 30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실제 사용되는 기름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 지원금 중에 항목별로 사용해야하는 적정 예산이 있다.

 

물론 그러다보니 기름값은 항상 초과하고 때로는 교사들의 자발적 부담이 되기도 한다.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에게 월 3만 원 씩 받는 수업료는 명분일 뿐이다. 아이들을 위한 보육이 함께 운영되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재정 능력도 차량 운행비의 한도를 초과하기 일쑤다. 보육과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공부방 전담 교사이며 아이들의 글쓰기를 지도하는 오숙민(41) 씨는 공부방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털어놓는다. “학원도 아니고 대안교육도 아닌 공부방은 학습 중심이 아닌 활동 중심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저희 공부방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 중에는 왜 공부를 안 가르치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부모들의 시각과 공부방 교사들의 시각이 다르니까 처음에는 농사를 지으며 부족한 아이들의 학습 지도만 생각하고 맡기는 경우에는 종종 싫은 내색을 하기도 했습니다. 공부방이 학원과는 다르다는 걸 말씀드리고 인성 교육이나 다양한 활동과 체험 그리고 지역에서의 활동에 참가하곤 합니다.”
처음엔 불만족해하던 부모들이 ‘쌀보리 공부방’에 보내는 동안 아이의 변한 모습을 보고는 교육내용이나 방법에 대해 오히려 고마워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육과 교육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니 교육적인 내용도 충실하다. 월별로 성교육, 통일교육, 환경교육 등 월주제를 정해 학습을 하는 계획은 짜여진 틀에서만 할 수 없기 때문에 늘 고민이 필요하다.


“농촌에 사는 아이들은 자신을 계발하는 기회가 참 적어요. 도시 같은 경우 미술관에 간다던지 전시회에 간다던지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닌데 시골은 그 환경이 되어 있질 않잖아요. 당연히 도시 아이들보다 자신감도 없고 닫혀 있고 위축 되는 게 사실이죠. 그래서 저희는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서 전시를 하죠. 그림이나 만들기를 해서 전시를 하면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감이 생기고 활발해지니까.”

 

저학년을 담당하고 있는 이숙자(42) 씨는 이렇듯 교육 기회가 부족한 시골 아이들을 ‘순수함’으로 포장해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쌀보리 공부방’에는 자원봉사를 하는 전직교사 김의자(70) 할머니가 있다. 사물놀이와 그림을 지도해 주는 이 어른의 분위기가 ‘쌀보리 공부방’의 인성교육에 많은 부분 영향을 주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방학만 되면 중·고등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온다. 바로 이 ‘쌀보리 공부방’에서 공부를 했던 아이들이 커서 동생들을 위해 책 정리도 해 주고 청소도 해 준다. 교사들이 가장 흐뭇해하는 순간이란다.


농촌형 공부방, 장기적으로 이들은 면 단위 별로 생기는 공부방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집이 산골짜기에 있어도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작은 학교를 없애는 게 아니라 작은 학교를 살려야 지역 사회가 살 수 있다는 말이 ‘쌀보리 공부방’을 운영하는 이들의 한 목소리이다. 

 

 

“저는 솔직히 농촌의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노동자나 농민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교육 현실을 본다면, 하지만 그런 거죠. 현실적으로 아이들이 건강한 노동자 혹은 건강한 농민이 되는 일에 부끄러워하거나 그것이 안 되는 것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고의 다양한 인식을 갖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오숙민 교사의 말에 일정 부분 동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년 대학 입학 시기가 되면 이른바 서울대학교 입학생 부모들의 학력과 직업, 출신 지역의 통계가 점점 한 쪽으로 몰려가는 모습을 보며 그 밖의 부모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하는 것이다.

 



과연 농촌에 희망이 있는가

‘쌀보리 공부방’ 교사들에게 힘든 점이 없을까마는 그때마다 김의자 씨는 교사들에게 말한다.
“아이들한테 너무 많은 것을 전달해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느낌만 줘, 그리고 기다려봐. 아이들은 단번에 변하지 않아. 옆에서 지켜봐주고 기다리면 돼.”
힘들고 지칠 때 교사들의 힘이 되는 선배 교사의 조언이다. 교육이 농촌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가는 결국 농촌에서 우리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느냐는 말과 같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찾아야하는 건 아이들이 바로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럼 해결방법은? “무상교육이죠.” 교사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글/사진 황석선 stonesok@kdem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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