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농민을 위한 건강한 약사들 이야기
건강한 농민을 위한 건강한 약사들 이야기 |
약을 사갈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노인은 여직 젊은 약사와 이야기 중이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오래할까 자세히 들어보니 대부분 한평생 땅 파다 망가진 자신의 쇠한 몸 이야기뿐이다. 간혹 동네 어른 소식을 묻는 약사의 말에 노인은 그이도 어느 곳이 자신과 똑같이 아프다며 반색을 하기도 하고, 그제는 허리가 아팠고 어제는 몸 전체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오늘 새벽부터는 또 다른 곳이 아프다는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또 그 말에 일일이 답해주는 약사의 모습이 도시 약국에서는 볼 수 없는 드문 풍경이다. 그리고는 못내 다 하지 못한 듯 아쉬운 표정으로 버스를 타러가야 한다며 노인은 한참 만에 짐 보따리를 들고 일어선다. 오늘은 홍천읍내 오일장이다.
농민을 위해 만든 농민약국
“농민약국이 전국에 여섯 개 있어요. 나주농민약국부터 시작해서 전남의 해남·화순, 경북 상주, 전북의 정읍 그리고 저희 홍천약국까지. 처음 홍천에 약국을 만들 때 장소 때문에 운영위원회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농민약국은 농민들이 드나들기 쉬운 버스터미널이나 장터 근처가 가장 좋거든요. 그런 곳을 물색하기는 했으나 형편상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약국 위치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죠. 그럼에도 오늘같이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일 보시고 일부러 이곳까지 오셔서 약을 사가시거든요.”
홍천약국 조미선(29) 약사는 약국 위치가 일을 보시는 장 근처와 멀어 간혹 농민들이 아쉬움을 토로한다고 말한다.
1980년대 후반, 보건운동을 하던 전남지역의 활동가들은 농촌의 특성상 의료 기관 부족과 농가 경제의 형편상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농민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느끼면서 농민을 위한 약국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후 지역의 농민회 등과 연대의식의 결합으로 농민약국 설립에 대한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러한 내용들은 1990년 전남 나주 영산포, 해남, 화순에 농민(의료소비자)들의 성금을 통해 농민을 위한 약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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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여섯 개 약국 중 다섯 번째로 문을 연 홍천농민약국은 지난해 3월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1년이 넘었다. 취재를 위해 세 명의 약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들의 말씨가 죄다 호남 사투리다.
전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약사들이 강원도 지역으로 파견을 온 것이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발령’ 이라고 했다. 고향이 제주도이지만 대학을 전남에서 다닌 조미선 약사는 남편의 권유로 농민약국에서 일하게 됐고 이들 부부는 이 농민약국을 위해 강원도 홍천에 안착하는 것에 합의를 하고 올라오게 되었다. 또한 둘 다 고향이 전남이라는 정은주(28), 김선영(27) 약사는 낯설고 물 설은 이 곳 강원도 땅에서 활동하는 일에 기꺼이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도 태어나 자라고 살던 남쪽 지방과 비교해 강원도라는 곳이 낯설지 않은지 물었더니 전라도나 강원도나 농민들이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것 같다는 말을 한다. |
단 한 명의 농민이 남더라도
“하루 평균 70여 명의 고객이 오는데 말씀드렸듯이 저희 약국의 위치가 썩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일부러 저희 약국에 찾아오시는 농민들은 이 ‘농민약국’ 이란 간판 하나만 보고도 위안을 삼는 거죠. ‘농민’이라는 자신들의 신분이 ‘약국’과 결합 되어 자신들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시거든요. 지금은 의료분업이 되고 의료서비스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의료진들의 권위나 자상하지 못한 설명 뭐 이런 것들에 소외받던 분들이라 이곳에서 의사들에게 다 못한 나머지 이야기들을 풀어내시죠.
친절하게 상담해 드리니까 단골 분들이 많아요. 물론 주변 상인들, 시민들도 많이 오시죠.”
농민약국에 대한 일은 전국 여섯 개 약국의 지역 책임약사 여섯 명과 대표 한 명, 고문 한 명을 포함하여 총 여덟 명으로 구성한 약국 운영위원에서 인사와 경영 그리고 사업 예산, 수익금 처리 등 전반적인 모든 사업 내용에 대해 결정한다.
농민약국의 약사들은 운영위에서 결정되어 인사 발령이 난 월급쟁이다. 하지만 단순한 급여를 받는 직장인은 아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씩 직접 마을로 들어가 건강 상담을 한다. 또 겨울 농한기에는 농민들을 위해 근골격계 질환(일명 ‘농부증’) 등에 대한 상담을 하거나 건강예방에 대한 설명회 등 봉사활동을 한다. 물론 봉사활동인 경우 의사의 처방없이 약을 제조할 수 있다는 약사법의 개정으로 기본적인 약 제조가 가능하다. 농민약국의 설립 취지 자체가 수익금을 농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므로 당연히 농민을 위한 방법으로 씌어져야 한다는 것이니 이들의 활동이 새롭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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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약사에 건강한 농민
상담을 하다보면 좋은 영양제를 권해 드리고 싶은데 농촌의 현실상 현금이 귀한 것이 사실이고, 노인들 옷 안쪽 깊숙한 곳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 꺼내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다는 것이 그들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성실히 상담을 해 주고 나면 김치도 담아주고 수확한 농산물도 갖다 주는 농민들의 순박한 모습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또 재미난 이야기로 간혹 농민들 중에는 ‘농민약국’ 간판만 보고 들어와서는 제초제나 벼멸구 약을 주문하기도 한단다.
생소한 농민약국이 농민들을 위한 모든 약, 당연히 농민들이 필요로 하는 약이 농사에 필요한 약일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농약상’ 같다며 헛헛하게 웃고 한마디씩 하고 가는 경우가 있다. 제초제 달라고 약국에 뛰어 들어온 농민의 모습을 생각하는지 젊은 약사 세 명이 이 말을 하고는 계속 웃는다.
“농업노동재해보험, 아까 이야기한 이 내용이 법제화가 꼭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희 농민약국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올 9월 국회에 상정할 계획인데 처리가 꼭 됐으면 좋겠고 약국이 조금 넓어서 장날 약국에 오시는 노인들이 좀 편히 쉴 수 있다 갔으면 하는 것 그리고 지금은 많이 없지만 약대 후배들이 건강한 생각을 갖고 이런 일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런 거죠.”
개인의 영리와 맞는 게 없는 바람들로 보이지만 정말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건 이들 약사들의 모습에서 뿐만 아니라 농민약국을 찾은 농민과 노인들의 표정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일하는 사무실에 아끼는 사과나무 분제가 병이 났다. 서울에선 쉽게 살 수 없는 농약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진짜 농약상을 찾으려고 애초부터 다짐했던 터라 농약 파는 주인의 미심쩍은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농약을 구입했다.
오늘은 홍천농민약국이 가장 바쁜 장날이다.
글/사진 황석선 stonesok@kdem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