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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운동을 아이들과 함께 그이가 걷는 길, 탈춤

지역문화운동을 아이들과 함께 그이가 걷는 길, 탈춤


봄 날씨가 요란하다. 바람 불다 비 내리고 다시 황사바람이 일고……. 계절상으로 보면 아이들이 야외에서 뛰어 놀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지만 이런 변덕스런 날씨엔 노는 거 좋아하는 아이들도 난감할 것이다.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 마을에는 바깥의 날씨와 상관없이 아이들의 춤사위가 한창이다.


“낙양~동천 이화~정” 덩더쿵 쿵덕!
장구를 치며 실내의 훈기로 얼굴이 상기된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아이들의 입 모양이 곧 따라붙는다.
“낙양~동천 이화~정” 덩더쿵 쿵덕!


목소리를 너무 크게 내서 그런가 가까이서 지켜보던 아이 하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 목에 잔뜩 핏대가 섰다. 그래도 저희들끼리 경쟁이라도 하듯 추임새를 넣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요즘 아이들이 탈춤을 정말 재미있어서 배울까? 한 아이에게 물었더니 얼굴 가득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재미있단 말을 연신 해대며 한삼(탈춤을 출 때 소맷부리에 끼우는 흰 천)을 휘저으며 뛰어다닌다.
 

 

 

아이들 30여 명이 모여 탈춤을 배우고 있는 이곳 경기도 과천의 무지개 대안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탈춤을 가르치는 심길섭(45) 씨는 그야말로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정돈시키느라 장구의 박자를 재빨리 서두른다. 또한 그는 탈춤이란 장르 자체가 단순히 우리 문화예술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익히는 교육뿐만이 아닌 또 다른 인관 관계의 과정이 생긴다고 말한다.


한 예로 무지개 학교 몇몇 아이들이 그이와 한 동네에 산다는 핑계로 한달에 한번 정도 그이의 집에 맥주병을 달라고 온단다. 아마도 열병 정도 모아진 병을 들고 구멍가게로 가 환전을 하고 군것질을 하는 모양이다. 그이는 그 아이들이 돈이 없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 준다. 처음에는 한명이 오더니 대 여섯 명이 올 때도 있단다.


이렇듯 탈춤은 아이들과 그이를 이어주는 끈끈한 매개의 역할을 해 준다. 아마도 아이들이 그를 무척이나 따르는 듯 보인다. 인간관계는 상대적이다. 아이들이라고 그 관계를 모를까? 아이의 시선과 아이다운 마음으로 탈춤을 가르치는 그이의 성품이 통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설 곳 없는 전통예술에 대한 애정

 

현재 그는 과천에서 <짓패 21>이란 극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에서 극단을 운영하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비정기적으로 1~2년에 한번 씩은 공연을 한다. 청소년 통일마당 <꿈꾸는 경의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날아라 나비야> 같은 작품은 지역의 청소년과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것이라 더 의미가 있다.

 

 

 

 

“인구 10만이 넘지 않는 이 과천이란 지역에서 ‘문화적 갈증’이란 게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인력을 키워내지 못하고 지역적 특성을 담아 낼 수 있는 공통분모를 뽑아내지 못하는 일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통예술이 자리를 잡지 못하기도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지역민들의 다양한 고민을 통해서 이런 교육들이 만들어지니 그나마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심길섭 씨는 전통예술에 대한 우리 교육 제도의 부족함을 안타까워한다.
“요즘은 전통예술이 홍보나 관광상품이란 포장을 통해 대중화는 됐지만 특화되어 있질 않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지역 특성에 따라 전통예술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중요한데 예를 들어 초·중등과정에 탈춤 수업을 정식 교육과정으로 넣어 공부하게 하고 또 대학에 가서도 전공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하다못해 연극을 가르치는 대학에서조차도 수업에 탈춤 과목이 없습니다. 커리큘럼 자체가 서양문화 중심으로 되어 있으니 우리 문화가 교육적 제도의 틀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에게 탈춤을 가르칠 때만큼 우렁찬 목소리는 아니지만 그의 말은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자존심이 담겨 있는 듯 하다.
그가 이토록 탈춤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에서 마당극 수업을 들을 때 함께 수업을 듣던 이 중에 인상 깊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인 이 여자는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그곳 사람과 결혼을 해서 살고 있었는데 그 곳 대학에 마당극학과가 개설이 된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당극학과를 개설한 장본인은 한국 사람이 아닌 캐나다 사람이었다. 캐나다 교수가 직접 한국에 와서 봉산탈춤을 배우고 지역에 다니며 공부하고 가서 자신의 나라인 캐나다에 학과를 개설한 것이다.


이때 심길섭 씨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전통예술을 외국인도 저만큼 노력해서 배우는데 정작 주인인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하는 일종의 부끄러움 같은 것이었다. 이후 탈춤을 통한 그만의 ‘길’을 만들어 지금 이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탈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심길섭 씨의 ‘마이 웨이’

 

하지만 그이는 막연히 우리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전통을 말하지는 않는다.
“전통이란 변화를 전제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변하지 않고 움켜쥐고 유지하라는 건 아니죠. 시대와 현실의 변화에 맞춰 형식적이든 내용적이든 전통에 새로운 것을 하나 더 보태서 더 빛이 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전통의 보존과 현대화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물었다.
“지금 당장은 이번 달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아~ 심청! 하룻밤이 천년이어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짠지패>라는 과천어린이청소년전통예술단이 7년 동안 활동해 오고 있는데 이들의 활동은 지역의 크고 작은 여러 행사에 초청되기도 하고 지난해에는 우토로 문학축전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들의 활동은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단순 습득의 한계를 넘어 현장 공연의 적극적 참여로 다양한 사회교류와 현장학습을 통해 폭 넓은 사회성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짠지패>를 위해 어쩌면 내 자식 같은 이 곳 아이들과 함께 작은 여력이나마 보태 함께 가고 싶습니다.”
한때 유행처럼 ‘우리 것’, ‘우리 문화’를 목청 높여 외치던 이들이 떠난 자리에 고집스레 홀로 남아 자신의 길을 가는 심길섭 씨를 보고 있노라니 미국의 팝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란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글/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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