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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글쓰기 삶이 보이는 창 르포 문학모임

살아있는 글쓰기 삶이 보이는 창 르포 문학모임

 

‘구로’라는 지명은 서울의 한 자치구다. 그럼에도 ‘구로구’라는 지명보다는 ‘구로공단’이란 명칭으로 더 빨리 인식하는 것은 지난 85년 구로동맹파업과 87년 노동자대투쟁 등 활발한 노동활동의 근거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전히 저소득층이 많이 살고 ‘코리안 드림’을 안고 온 이주노동자들의 생활 터전이 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지역의 역사와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진보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삶창)이 구로에 있다는 것이 그다지 낫설지가 않다.
삶창에서 진행하는 르포 문학모임에 오늘 강사는 소설가 이인휘 씨다. 대 여섯 평 됨직한 작은 강의실에 앳된 대학생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얼굴들이 속속 자리를 차지한다.
저녁 7시 40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낮에 일하느라 이 시간이면 지칠 법도한데 수강생들에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 수인사를 하며 지난번 취재 나갔을 때 어땠는지 혹은 그간 안 본 사이의 사연을 듣느라 서로 바쁜 모습이다.

진실을 기록하다
“르포 문학모임은 전문 작가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대부분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글쓰기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있는 ‘르포’라는 분야에서 글쓰기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3기 과정의 담임 강사를 맡고 있는 최영환(32) 씨도 1기 수료를 마치고 현재까지 꾸준히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참고로 최영환 씨는 지난해 『희망세상』의 ‘다시 보는 역사의 현장’ 필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인간성 회복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문학’이 사람들의 정서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전달을 해야 하는 것임에도 지금 우리 시대의 문학은 자본에 영합하면서 일부 소수의 정서와 사고만을 전달하고 또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획일화 시키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문학모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김순천(41) 씨는 단순히 한국문학에 대한 비판이 아닌 현 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렇듯 ‘문학’이 거대 자본 권력에 의해 획일화되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던 삶창의 몇몇 활동가들은 깊은 고민 끝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문학모임’을 준비하게 된다. 수개월 동안의 준비 과정과 치열한 고민을 거쳐 지난 2003년 9월에 1기 첫 르포 문학 강의를 시작한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는 강의 할 장소가 없어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을 빌려서 했어요.” 당시 모임을 함께 준비했던 류인숙(37) 씨는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한 격’이라며 지난한 첫 출발의 의미를 부여한다.
강사 섭외부터 강의 내용, 수강생들의 고민과 참여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하는 깊은 고민까지 내부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 가기 시작한 르포 문학모임에는 그래서 더 자부심과 애정이 녹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놓아버린 것들, 그러니까 남들이 이미 모두 손놓아 버린 ‘동아리 모임’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참 힘들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이 모임에 참여하고 애정을 가진 사람들 때문이죠. 그만큼 소중한 모임입니다.”
르포 문학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수료과정을 마치고 난 이들이 다음 기수의 모임을 위해 함께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수료가 끝났다고 그대로 끝이 아니다.
새로 시작한 수강생들과 함께 글쓰기 공동 작업을 함께 하는데 그야말로 이것은 공동체적인 모습일 수밖에 없다. 서로에게 끈을 두고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는 것은 사람과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해 가는 과정을 함꼐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단 3회의 교육과정만 치러냈을 뿐인데도 이들 수강생들은 학교 선후배 이상의 살가운 모습처럼 보인다. 참고로 1년에 한번만 교육을 한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여느 문화센터처럼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교육과정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희망입니다 
그렇게 교육과정을 거쳐 제작한 것 중 하나가 청계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르포집 『마지막 공간』이다. 청계천에 사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본 그들의 삶터인 ‘청계천’을 취재, 기록한 이 책은 르포 문학모임의 첫 공동 작품집이라는 의미보다 모임에 참여한 수강생들과 강사들이 함께 작업을 한 것에 더 의미가 있다.


 

“작업에 참여했던 선배들하고 청계천을 취재할 때 참 많은 걸 느꼈어요. 다방 아줌마, 노점상 아저씨, 봉제공장 부부, 붕어빵 파는 아저씨, 이들은 한번도 우리 사회에서 중심에도 서지 못했고 언론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는 분들이었어요. 그럼에도 이 분들의 팍팍한 삶 속에는 저마다 품고 있는 ‘희망’이 있어요.
처음엔 그들을 취재하고 기록해서 우리가 얻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서 우리가 용기를 얻은 거죠.” 최영환 씨의 말이다.
이들의 인터뷰가 처음부터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 와서 뭔가를 말해 달라 하고 사진 찍고 인터뷰하자니 그들이 쉽게 마음을 열리가 없었다. 이렇듯 닫힌 그들의 마음을 열기까지 그야말로 이들의 눈물겨운 ‘진정성’이 없었다면 『마지막 공간』이 나올 수 있었을까.

작가의 의도를 줄이고 사실을 늘려라
“소설가 김하경 선생님의 ‘르포 문학작품 읽기와 창작이야기’는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보는 듯한 재미있는 강의였어요. 선생님들 강의가 대부분 재미있었지만 가장 유쾌하고 흥미로웠어요.”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 영등포 북부지사에서 일하는 박동자(39) 씨는 현재 노동조합에서 문학패장을 맡고 있고 현장 활동가 모임에서 선전 글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강의를 하셨던 한 분이 ‘사실이라는 게 참 복잡하다. 백 번을 써도 진실이 나오지 않는다. 작가의 의도를 줄이고 사실을 늘려라’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다시 말해 르포 문학의 기본이 되는 ‘진실’을 나타내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거죠.” 라고 말한다.
요즘 온통 신문과 방송의 메인 뉴스를 장식하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란도 아마 이 ‘진실’이란 측면에서 볼 때 그 의미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을 여러 번 인터뷰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사실도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박동자 씨. 글쓰기 모임을 통해 한 가지 현상을 단면적으로만 보지 않고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겼다고 한다. 다시 말해 다양한 표현 방법이 생겨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물었더니 현장노동자의 일상과 투쟁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더불어 ‘소설’도 꼭 쓰고 싶다는 속내를 비춘다.

“우선 르포 문학모임에 많은 이들이 참여했으면 좋겠고 지금 모임이 더욱 활발히 활동해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계층의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기를 바라는거죠. 더 바라는 일은 청년, 학생들에게 건강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르포 작품을 많이 생산하고 싶고 뭐 이런저런 일, 하고 싶은 일 많죠!”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최영환 씨의 얼굴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이들은 르포문학으로 이 사회를 비춰볼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삶의 창을 여는 사람들
그들은 ‘살아있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이 말하는 글쟁이의 수준은 아니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준비 훈련을 고단하게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준비과정은 좋은 문학잡지를 읽는 것도 대단한 문장가의 강의를 듣는 일도 혹은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읽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이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기층 민중들에 시선을 둔다. 그들을 보고 느끼고 고민하고 가슴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그 이후에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는 힘든 시대이고, 그 시대를 문장으로 축소할 만큼 충분히 이해해야 글은 쓰여지는 것이다.”

소설가 조세희 선생의 말이다.
문학의 힘은, 그래서 존재한다.

 

 

글/사진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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