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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한 길에서 시대를 이끌어 온 [이승환]



고 문익환 목사님이 정부의 허가 없이 방북을 결심했던 1989년 즈음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시의 일부이다. 이렇듯 북한을 방문하는 일이 잠꼬대같이 들리던 그리고 이를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남북간의 완고한 대결과 냉전체제는 불과 4년 전 6·15공동선언 이후에 결정적으로 이완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적인 교류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시대정신을 먼저 호흡하고 온갖 어려움을 헤치며 이를 우리 사회의 도도한 흐름으로 만들어 온 사람들이 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에서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승환(46) 씨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를 만날 기회를 가졌다.
‘룡천역 폭발사고’를 둘러싸고 나타난 우리 사회의 변화를 화제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룡천역 폭발참사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 돕기에 민간단체 활동 역사 상 가장 많은 단체들이 나섰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대북지원을 둘러싼 ‘퍼주기’ 논란도 정치적 대북논란 제기도 이번에는 없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건을 신속하게 보도하고 남한에 발 빠르게 지원을 요청하는 등 북한이 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 내부의 변화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가 지속될 수 있을 지에 대해 묻자 “이번 사고로 민족 화해와 단결의 기운이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런 변화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입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도록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보다 많은 노력이 요구” 된다고 대답했다. 

룡천역 사고로 크게 변한 우리 사회

통일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일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통일운동 자체에 관심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1978년에 처음으로 감옥에 갔을 때, 대구교도소에서의 경험이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장기수 선생들과 함께 특별사동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이나 북한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북한 사회와 분단현실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소 후에 이에 대한 고민이나 활동이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도 다른 학생운동 출신자들처럼 노동운동과 청년운동을 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1986년경에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필명으로 『한국 근현대 민족해방운동사』를 출판했다. “그 책으로 인해 다시 구속 되었지요. 책의 주요 내용이 만주 항일무장투쟁이어서,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저를 민족문제와 통일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더군요. 저 역시 그 후부터 통일운동과 인연을 맺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장기수 선생들과의 만남

그의 이러한 활동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북한에 경도되어 있거나 호의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 있었을 것 같았다. “91년 이후부터 우리 사회 일부에서나마 통일운동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특히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과 관련하여 논의가 무성했지요.
저는 남북과 해외동포의 민족대단결에 있어서, 각자의 처지가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단결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한의 대중운동에 바탕을 둔 통일운동을 해야지, 북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우리 사회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91년 이후에 다양한 통일운동에 관여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던 그가 공식적으로 통일운동 조직에서 일하게 된 것은 1998년부터라고 한다. “이때 ‘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통일맞이)’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일맞이’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2000년 6·15공동선언을 맞게 되었다. 그때의 감회가 어떠했는지 물었다. “남다른 느낌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6·15공동선언이 문 목사님의 유지가 계승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북한 정부 사이의 정상회담에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자고 합의한 것은 그분의 노력이 뒤늦게나마 실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목사님의 유지가 계승된 6·15공동선언


6·15공동선언 이후의 다양한 남북공동행사에 대한 그의 소회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6·15와 8·15 공동행사는 기본이 되었고, 3·1절과 개천절 행사로 확대되고 있습니다.”고 말을 잇는 그의 표정에서 분단된 민족의 현실을 자신의 인생의 화두로 삼아온 한 통일운동가의 고뇌와 뿌듯함 그리고 결의 등 다양한 감정의 편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도 함께 준비하고 있는 올해의 6·15공동선언 기념행사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인천에서 ‘6·15공동선언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라는 명칭으로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남북과 해외동포 모두가 참여하는 거족적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간차원에서 지방에서 갖는 최초의 행사입니다.” 보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공동행사가 되도록 체육오락경기, 남북공동문화공연 그리고 마라톤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며 덧붙인다.
“6·15 공동행사가 민간단체에게만 맡겨지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차원에서도 6·15 선언 계승에 대한 보다 확고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날씨가 좋을 때 장마에 대비해야 하듯이 지금이야말로 평화통일로 가는 기틀을 공고히 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한 그는 이런 작업을 소홀히 하다가는 냉전적 대결 흐름이 다시 득세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평화통일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것들에 대해 “중요한 몇 가지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북한의 고립 또는 배제라는 방식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남북 화해 협력에 대한 보다 확고한 국민적 동의와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또한 북핵이 현재 큰 문제인데, 평화적인 해결 원칙을 갖고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핵과 연계된 남북관계 개선이 아니라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의 병행 발전이 더욱더 요구되는 시점” 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남북공동행사 하나하나에 만족하기 보다는 수많은 단체들이 이러한 국민적 합의를 목표로 행사를 좀더 체계적이고 보다 큰 안목에서 바라보고 진행시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을 보탰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이 궁금했다. “진정성을 가지고 장기적인 평화통일 운동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주로 반북단체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대북 제제 내지 봉쇄라는 대결적 의식과 이것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은 진정성을 갖고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성을 갖고 북한 인권문제 바라봐야


또한 한미관계도 통일운동과 관련해서 인화성이 강한 문제이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장래와 연관된 핵심적인 의제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에 한미관계를 비롯한 국제관계에 대해서도 그의 의견을 구했다. “남북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나가리라 생각합니다. 한미관계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발전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극단적 친미나 극단적 반미 모두를 경계합니다.”  



양비론이 아니라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며 그는 말을 이었다.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력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한미관계를 호혜평등의 원칙 하에 발전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현실적인 균형감각과 외교적 통찰력입니다. 지나치게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구한말에 우리 민족이 처했던 불운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국제관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와의 만남 뒤에 해방 후부터 현재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새겨 보았다. 우리의 현대사에 대해 많은 해석과 입장이 있지만, 해방 이후의 역사가 대립과 분열로 점철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극단적인 경험을 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여 배제하고 억압하는 극단주의에서 벗어나서 다양성 속에서의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지혜와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다양성 속에서의 평화로운 공존

이 힘은 결코 나약함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대립과 분열을 극단의 형태로 표출하지 않고 순치시켜 창조적 혁신의 자양분으로 삼을 줄 아는 진정한 강인함의 표현일 것이다. 지나간 우리의 불행했던 역사로부터 이런 참다운 힘과 지혜를 길러낼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지나간 고행은 부질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 우리는 과거에 무참히 희생되었고 우리 역사를 올바로 돌려놓기 위해 헌신한 모든 사람들을 진정으로 기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희망해 본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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