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맥코트 가족은, “자유의 여신상에 헬로’라고 인사하는 대신에, ‘굿바이’ 하고 손을 흔들며” 뉴욕 항을 떠나는 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부루클린에서 태어난 프랭크는 이제 겨우 네 살, 그의 부모는 아이리쉬 이민세대였다. 대공황이 휩쓸던 1930년대, 뉴욕 슬럼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아일랜드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세월이 흐른다. 갖은 고초 끝에 청년으로 성장한 프랭크는 풍운의 꿈을 안고 다시 뉴욕 행 증기선 <아이리쉬 오크(Irish Oak)>호의 갑판 위에 서 있다. 드디어 희망의 횃불을 높이 쳐든 자유의 여신상이 점점 가까워온다.
이 이야기는 가난한 아이리쉬 가톨릭이었던 작가 프랭크 맥코트(Frank McCourt)의 자전적 성장 소설로, 1997년 퓰리처 문학상을 수상한 ‘안젤라의 재(Angela’s Ashes)’의 일부분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이 이야기의 처음과 마지막은 다 같이 뉴욕이 배경이다. 이민 2세인 프랭크가 곡절 끝에 꿈의 땅 미국에 다시 발을 딛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이제 절망은 끝나고 희망이 시작되었을까? 프랭크의 삶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소설은 거기가 끝이다.
자유의 나라 미국은 이처럼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난 세계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의 꿈의 목적지였다. 20세기를 전후하여, 대서양을 건너 이 곳 뉴욕 항으로 들어오던 수많은 ‘프랭크’들은, 한결같이 자유의 여신상을 올려다보며 미래에 대해 숙연하게 다짐했을 것이다. 턱수염의 유태계 러시안, 아일랜드의 농부들, 콧수염을 단 이탈리아인, 갈라베아 차림의 아랍인, 칼을 찬 코사크인 등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묻고 길을 떠난 그들은 가난과 절망과 전통의 족쇄 대신에 크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었다. 바로 엘리스 아일랜드의 이민 사무국이었다.


프랑스의 이지적인 현대예술의 상징

벽 속에 숨어 있어야 할 철근골조와 파이프 등 구조와 설비가 모두 노출되어 있고 외벽은 모두 투명유리로 처리되어 내, 외부를 관통하는 시각적 경험을 하도록 되어 있다. 옥외로 돌출된 유리관(tube) 속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각층을 연결하는 수직이동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내외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콘텐츠가 소통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내부 천장의 모든 기계적 시설도 노출되어 있어 용도에 따라 신축성 있게 내부 구조가 변경될 수 있는 공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마치 미완성된 건물의 외양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비록 철근골조와 도관, 전기배선, 승강기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컬러플하고 짜임새가 있어 기계적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최고의 철수공예품으로 장식된 전시장과도 같다. 지금은 하루 평균 32,000여 명(2002년)이 찾아오는 에펠탑과 더불어 또 하나의 파리명물이 되었지만 설립 당시에는 문화적 자부심이 대단한 프랑스인들에게 짓다만 창고 같은 모양의 파격적인 건축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렌조 삐아노는 이 프로젝트에 관해 “당시 파리는 엄격한 제도에 따라 관습적이고 전형적인 석조건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건물들이 위압해버리는 감각을 부서뜨리고 싶었고 파리 한복판에 기존 제도에 반항하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 우리가 당시 원했던 것은 완전히 새로운 감성, 즉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퐁피두센터가 공장이나 정제소 같다고 비난했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인간과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전통이라는 벽을 깨고 주변 조건에 대립하면서 새로운 문화의 미래지향적 혁신을 구현한 것이다. 파격적인 건축 퐁피두센터는 1997년 임시 폐관하고 27개월의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거쳐 2000년 1월 1일 새 모습으로 다시 개관했다. 1977년 당시 하루 평균 5,000명의 관람객을 예상하여 지어진 퐁피두센터는 개관하자마자 하루 평균 2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입장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 일쑤였다. 또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겉으로 드러난 각종 설비와 구조들이 녹슬고 페인트칠도 벗겨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보, 문화혁명을 담아내기 위해 퐁피두의 개조가 불가피했다. 구조공간 수리비용만으로 5억 7천 600만 프랑(약 870억 원)이 들었다. 처음 건물을 짓는데 부지 매입비를 포함해서 9억 9천 300만 프랑이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프랑스 정부가 ‘리모델링’에 쏟아 부은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겉모습의 변화는 전혀 없었다. 페인트칠만 다시 했고 색깔이 좀더 산뜻해졌을 뿐.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역사적 건축물이 됐다.”
왜 이곳에 사람들이 그렇게 몰려드는 것일까?
퐁피두센터가 대성공을 거둔 데에는 이 건물의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외관이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건물을 구경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문화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데 퐁피두센터의 생명력이 있다.
퐁피두센터는 전시장은 물론 강연회, 교육 프로그램, 이벤트, 도서관 등 대중들이 자유롭게 직접 참여하고 향유할 수 있는 정보·문화공간과 콘텐츠를 갖추고 있다.
우리는 건물 진입로 광장에서부터 문화와 정보의 개방성과 대중성을 목도하게 된다. 이 건물의 진입로는 전면과 후면으로 되어 있는데 시민을 유도하는 후면의 광장에는 자연발생적인 즉흥 신·구 예술문화 행위가 혼재하는 관광명소로서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젊은이들로 언제나 만원이다.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서처럼 거리의 퍼포먼스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으며 하루 종일 학생 예술애호가들과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이 모여 북적거린다.
전통적인 6층 스카이라인이 살아 있는 남면에는 주변 건물과 어우러진 흥미로운 조각공원을 조성하여, 광장과 더불어 도심 속의 휴식공간이자 문화생산기지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갖는 활기찬 외부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대공간은 시각적으로 보면 2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실상 오픈된 동일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즉 도로에 접한 전면에서 건물에 들어서면 지상 1층이지만, 광장이 있는 후면에서 들어서면 지하 1층이다. 사실상 건물 안에 들어서면 입체화된 하나의 큰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확 트인 공간효과가 매우 특징적이다. 주로 전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1층의 오픈된 큰 공간에서는 각종 기획전이 풍부하게 열리고 있고, 자유로운 전시 구성도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 밖에 전시관, 국립현대미술관, 정보도서관, 영화관 등의 관련 부속시설들은 층별로 구분되어 있고 접근로도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각 층으로의 이동이 내,외부로 이원화되어 관별 관람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서로 뒤엉킬 염려가 거의 없다.

현재 진행형 복합문화공간 센터에서는 늘 현대적인 최신 문화, 예술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영화, 연극, 문헌도서관, 레퍼런스 서비스, 멀티미디어 자료 검색 및 열람, 특별전 등이 다채롭게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눈에 띠는 것은 국립정보도서관(BPI)과 어린이 특별활동이다. 예술문화에 대한 신간과 전문서적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곳, 그러나 어떤 출입증도 없이 누구나 줄을 서면 들어갈 수 있는 완전 개가식 도서관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오후만 되면 건물 밖에 항상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퐁피두센터를 두고 세상에 이보다 더 ‘대중적이고 전문적인 곳이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계층과 수준에 관계 없이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열린 문화공간>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예술문화전공자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을 위한 예술강좌와 특별활동 역시 연일 만원이다. 어린이 특별활동의 목표는 미래 세대인 6세에서 12세까지의 어린이들에게 예술적인 깨달음과 표현 기회를 제공하고 놀이를 통해 학교가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을 배우고 발견하게 하는 데 있다.   작가들과의 접촉은 물론 실험과 발명을 경험함으로써 창의성을 실현해 나가는 어린이와 함께 하는 실험, 교사에 대한 재교육을 지원하는 성인 재교육프로그램, 파리지역의 아동들을 위해 센터에서 개발한 교육활동들을 보급하는 문화보급 프로그램 등이 정착되어 널리 퍼지고 있고, 외부의 미술관이나 문화관을 대상으로 구상한 순회 전시만이 아니라 각급 학교에 아동용 교육 기자재를 순회시키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논리, 문화국가의 상은 무엇인가?
최근 문화국가의 진정한 이미지는 동아시아에 불고 있는 한류와 아울러 월드컵과 촛불시위, 민주화운동과 같이 국민들이 추동해 낸 문화적 감수성과 분출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화국가의 상은 단순히 외형적 구조물이나 과거로부터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문화적 가치생산능력에 대한 인정과 그것의 활성화를 위한 문화적 기반을 만들어내는 일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이를 위해 파리 퐁피두센터처럼 이곳에 들어와 각각의 관심사와 세대에 따라 다양한 참여활동이 가능하고 살아있는 공간, 복합적 다기능의 문화공간의 건립이 절실하다 하겠다.

우리 주변을 보면 정부와 지자체들의 수많은 문화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하드웨어 위주의 공간으로서 예식장이나 스포츠센터, 취미생활공간과 같은 상업화된 문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이런 구조, 공간 구성, 콘텐츠로는 새로운 문화적 가치지향을 담아낼 수도 일상적으로 실현해 갈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