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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에 살러 오세요,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반지

지난달 3일,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인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 트랙터를 앞세우고 팽성읍 주민들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평택대책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트랙터에는 ‘식량주권 사수’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라고 적힌 깃발이 펄럭였다. 이들은 ‘토지 강제수용 절대 반대’와 ‘미군기지 확장 결사 반대’를 위해 11박 12일의 전국 순례를 떠나는 <팽성주민 트랙터 전국평화순례단>이었다. 농사짓는 일밖에 모르던 농민들이 농기계인 트랙터를 몰고 논두렁이 아닌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길을 나선 것이다.
평택에서는 땅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힘든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lobal Posture Review, GPR)’에 따라 한강 이북의 서울 용산 주한미군 사령부와 의정부 일대의 미 2사단을 후방인 평택으로 이전하고 평택의 349만 평(팽성 285만 평, 송탄 64만 평)에 추가로 미군 기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으로 인해 시작된 싸움이다.
특히 미군기지 예정지역에 편입된 팽성읍 주민들은 2004년 9월 1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땅 지키기 촛불행사’를 개최하여 지난달 14일에는 500일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지금 팽성읍 대추리에는 평화유랑단 ‘평화바람’(단장 문정현 신부)이 들어와 주민으로 살고 있다. 평화바람은 2003년 11월 한반도를 전쟁이 없는 땅, 평화의 숲으로 가꾸기 위해 발족한 연대체로, 이라크 파병 저지와 평택미군기지 총집결 저지를 위한 전국 유랑을 마치고 작년 2월부터 대추리에서 살기 시작했다. 작년 4월부터 대추리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평화바람 단원 반지(26) 씨를 만났다.

 


‘들이 운다’

“처음부터 평화바람이 아니어서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연령도, 하던 일도 가지각색이잖아요. 60대인 신부님부터 10대인 친구까지. 그런데 예명을 부르면 ‘신부님’ 안 그러고 ‘대심’ 이렇게 부르게 되고. 예명을 부르면 평등성도 보장되고 부르기도 편하고 기억하기도 쉽고. 그래서 예명을 쓰는 거 같아요.”
인터뷰 할 단원 이름이 ‘반지’라고 해서 들었던 의문점 하나가 풀렸다. 반지는 예명이 아닌 본명이라고 한다. 예명으로 ‘춘희’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사람들은 그게 본명이고 반지는 예명일 거라고 생각한단다.
“여기 있으면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다른 게 없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민분 인터뷰를 하나씩 다 땄어요. 인터뷰 작업한 걸로 책도 내고, 현장의 이야기를 저희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 알리고. 저 같은 경우는 영상을 하니까 주민들 인터뷰 영상을 찍어서 필요한 영상을 만들어요.
여기 현장을 기록하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어서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어떤 일이든 다 찍어서 테이프를 모으고 있어요. 필요할 때마다 사람들이 만들어 달라는 거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이후에는 영상들을 다 모아서 대추리 투쟁을 기록한 영상을 하나 만들 거예요.”
평화바람은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팽성읍 대추리, 도두2리 주민 28명과 가진 인터뷰 27편을 모아서 11월에 『들이 운다』를 발간했다. 책이 나온 후에도 주민들에 대한 인터뷰는 계속 진행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평화바람은 이 외에도 솔부엉이 도서관, 솔부엉이 라디오 방송 같은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있다. 반지는 솔부엉이 라디오에서 동료 여름과 함께 기획과 대본을 맡고 있으며 편집을 도맡아 하고 있다.
“책이 나오고 나서 주민들이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다 한 권 씩 나눠드렸거든요. 저는 받기만 하고 잘 안 읽을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다음날 얘기를 해주시더라구요. 자기들 이야기, 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니까 좋아하시고 많이 읽으셨어요.”


대추리에서 살기
“아무래도 도시에 살다가 여기 들어와서 사니까, 시골하고 도시는 다르잖아요. 도시에서는 혼자 살았는데 여기에서는 단원들과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까 좀 힘든 점이 있어요. 그리고 여기는 항상 좋은 일이 아니고 나쁜 일이 있는 거잖아요. 한 달에 한 번 꼴로 경찰하고 싸우지, 집회하지, 농성해야지, 경찰 들어오면 할머니들 우시는 모습도 보고. 이런 걸 내가 주민으로 살면서 직접 겪으니까 좀 힘들기도 하고 가끔 좀 그냥 울적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주민분들께서 너무 잘해주셔서 좋아요.

저희가 여기 들어와서 쌀이나 부식을 사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좋은 거 생기면 먼저 갖다 주시고.” 

전체 120여 가구 중 20가구가 이사를 갔고, 절반 정도는 아예 협의매수도 안 했으며 협의매수를 하고 이사만 안 간 가구도 20~30여 가구가 된다고 한다. 마을 안에 토지수용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것 같았다.

“협의매수를 하신 분들도 문제는 뭐냐하면, 이분들은 지금까지 계속 억눌려 살아왔고 국가가 하는 거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알고 살아오신 분들이어서 그냥 자연스럽게 체념하거나 아니면 자기는 하기 싫지만 자식의 강요 때문에 협의매수를 하신 분들이 있어요. 협의매수 하고 보상금까지 다 받고 이사를 가야 하는데 앞으로 삶이 막막한 거죠. 도시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데 농사라는 직업은 잃어버렸고. 사실 이분들은 도시 나가서는 못 사세요.
협의매수를 하신 몇몇 분들은 싫어라 하시죠. 협의매수를 했는데 국방부에서 더 많이 협의매수에 동참해야 3천 억을 집행할 수 있다면서 집행을 안 하니까. 이걸 사람들을 매수하고 분열시키고 이간질시키는 용도로 이용하고 있는 거죠. 그런 분들은 우선 대세가 아니니까 내색은 안 하시지만……. 복잡해요.”

미군기지에 땅을 내줄 수 없다
“촛불집회를 하면 평소에는 한 50명 정도씩 모이세요. 한 가구에 한 명 꼴로. 주민들이 이런 말씀들을 하세요. 우리가 이길 테지만 혹시나 저 사람들한테 지더라도 나중에 권력이나 정부 이런데 동조하지 않거나 아니면 선거에서 저 사람들 찍지 않거나 하는 식으로 우리 권리를 행사할 거다. 이기면 정말 이기는 거고 지더라도 이기는 거다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추수 끝나고 새해 되면서 한 집 두 집 이웃들이 협의매수 하고, 이사가고, 빈집이 생기고 하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큰 거 같아요. 더 심란해하시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데 나중에 주민들 다 떠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곤 하는데,
 

저희들은 마지막 결정적일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주민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믿어요.” 
정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작년 12월 23일 협의매수를 거부한 300여 명 농민들의 땅 90여 만 평에 대한 수용을 의결하고 토지 강제수용과 강제철거 준비에 돌입했다. 이에 맞서 주민들과 평택대책위, 평화바람, 팽성대책위 등은 국방부의 토지 강제수용을 막기 위해 황새울 벌판에 천막을 치고 대추리와 도두리의 빈집 입주자를 모집하는 ‘대추리 평화촌 만들기’를 펼치고 있다.
“지금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겠지만, 새만금 조개들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리기 너무 힘들고 여기 농민들도 떠나고 미군기지가 들어서면 다시 이 땅을 돌릴 수 없는 거잖아요. 다른 것 보다 주민이 필요해요. 빈집에 살러 많이 와줬으면 좋겠어요. 현재 4분이 들어와 살고 계시고, 개인적으로 들어오기로 하신 분이 몇 분 있어요. 민변에서는 주말법률사무소를 열겠다고 하시고, 여러 인권단체들이 일주일에 하루씩이라도 꼭 와서 지내겠다고 그러세요. 제가 대추리 비 공인중개사니까 빈집 물색해서 소개해 드릴께요.”

올해도 농사짓자
인터뷰를 진행한 ‘우리 동네 지킴이 안내소’ 찻집 담벼락에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막아내고 올해도 농사짓자’
지금껏 도시에서만 살았기에 저 말의 깊이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농사짓는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농사짓자’는 말이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굳은 다짐처럼 들렸다.
국방부에서는 아마도 수로에 물을 끊고, 협의매수한 땅을 갈아엎는 등 농사를 못 짓게 하는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한다.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피땀 흘려 일궈온 농토를 빼앗고 그 땅에서 농민들을 몰아내야 하는가?
도두2리 원정옥(61세) 씨의 얘기가 내내 마음을 짓누른다.
“미군기지 들어온다던 작년 그러께부터는 진짜 이 땅을 쳐다 보면은, 내 논을 가서 쳐다 보면은, 이렇게 내가 장만한 땅을 이렇게 뺏기는구나 생각하면은, 땅만 쳐다봐도 눈물이 나와. 섰으면은. 땅만 쳐다봐도. 너무나도 고생을 많이 해서 장만한 땅이기 때문에.”(『들이 운다』 중에서)


 

<글 / 이수원> <사진 / 황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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