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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생존을 향한 팔레스타인인의 인티파다

 


‘팔레스타인’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를까? 이스라엘? 테러? 하마스? 아라파트?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근에 있었던 KBS의 용태영 기자 납치 사건으로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납치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사건과 배경을 차분히 짚기 보다는 자극적이고 정확하지 않는 내용들을 쏟아 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희망세상』을 통해 짧게라도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민주주의를 향한 목소리를 담아 보려 한다.

 

팔레스타인의 현대사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은 오스만 투르크와 싸우면서 아랍인들과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오니스트들에게 각각 자신을 지원하면 전쟁 뒤에 독립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팔레스타인이라는 하나의 지역을 놓고 서로 다른 두 집단에게 같은 약속을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패배시킨 뒤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직접 지배하게 된다. 1948년 영국의 지배가 끝날 때까지 아랍인들은 독립을 얻기 위해 싸움을 하고 시오니스트들도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영국을 상대로 각종 로비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국가, 아랍국가, 국제관리지역으로 나누는 분할안을 채택하게 된다. 영국이 유엔이라는 기구를 통해 중동·아랍 지역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충실히 실현할 수 있는 국가를 하나 세워가는 순간이었다. 유엔의 분할안에 대해서 아랍인들은 반대하고 시오니스트들은 찬성을 한다. 유대인들은 20세기에 들어와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규모 이주를 시작했으나, 분할안 결정 당시 유대인들이 소유한 땅은 전체 팔레스타인 지역의 6.6%에 불과했다. 아랍인들 입장에서는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87.5%를 소유하고 있었으니 전체 땅을 절반가량씩 나누라는 분할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정치적·군사적 힘은 영국과 시오니스트들에게 있었고, 1948년 시오니스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오니스트들은 부당한 국가를 건설하고, 아랍인들은 ‘대재앙(나크바)’의 순간을 맞게 된다.

 

인티파다와 오슬로 협정

‘인티파다’ 라는 말을 해석하자면 ‘봉기’, ‘각성’ 등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하지만,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민중)‘항쟁’이라는 말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1980년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광주 민중들이 항쟁을 벌였던 것처럼 팔레스타인 민중들도 1948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해방을 얻기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한 이후 한동안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은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보다는 요르단과 레바논 등 외부에서 진행되었고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이 투쟁을 주도하였다. 하지만 점령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3차 중동전쟁을 통해 가자와 서안 지구마저 이스라엘의 식민지가 되었다. 게다가 3차 중동전쟁을 통해 드러난 것은 주변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기에는 힘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또 1967년 이후 가자와 서안 지구에서 태어나 날 때부터 식민통치를 겪으며 자란 사람들에게는 해외에서의 투쟁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직접적인 투쟁과 상황 변화가 절실했다.
이러한 요구에 1987년 12월에 1차 인티파다가 시작되었다.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이스라엘인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었지만 구조적인 원인은 팔레스타인 깃발을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 시켰던 이스라엘의 강력한 식민통치 때문이었다.

 

 

인티파다라고 하면 돌을 던지거나 집회를 하는 모습을 쉽게 떠올리지만 1차 인티파다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투쟁과 운동 방법들이 등장했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노동을 하던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고, 팔레스타인 상점들은 철시를 하거나 특정 시간에만 문을 열며 이스라엘산 상품에 대한 광범위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인티파다가 시작되자 이스라엘은 군대를 보내 진압하려 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자주 보게 되는 장면 중 탱크에 돌을 던지는 모습도 1차 인티파다 때 많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소년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이스라엘 군인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팔레스타인이라는 존재와 이스라엘의 식민통치 상황이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알려지기 시작했고, 세계 각지에서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려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진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난에도 이스라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아 집회 현장에 총과 최루탄을 쏘고, 활동가들과 시민들을 대량 체포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1차 인티파다 시작 이후 5년 여 동안 1천 명이 넘게 사망하고 1만 6천 명 가량이 구속되었다. 게다가 장기간 지속되는 투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경제도 점점 어려워졌다.
이런 과정에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1990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PLO 지도부가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쿠웨이트에서 노동을 하며 팔레스타인으로 송금을 하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 일은 야세르 아라파트PLO 의장에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되었다. 게다가 아라파트 의장이 해외에서 계속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인티파다 과정을 통해 하마스 등의 조직이 계속 성장하여 PLO 지도부의 위치를 위협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그러자 PLO는 어떻게든 인티파다를 멈추게 하려는 이스라엘과 비밀협상을 벌여 ‘오슬로 협정’을 맺는다. 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일부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얻고 아라파트를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알 아크사 인티파다

오슬로 협정에 대한 입장은 평화를 위한 선택이라는 입장과 이스라엘의 점령을 팔레스타인인 스스로가 합법화시킨 굴욕적인 협정이라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젠 무언가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기대감은 점점 실망감을 넘어 분노로 이어지게 되었다. 자치정부가 들어서고 아라파트가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자치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압박은 더욱 강해져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 사이의 통행을 제한하고, 그 전에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던 체크 포인트(검문소)가 여기저기에 들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괴롭혔다. 이런 과정에서 2000년 9월 28일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군인들을 동원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성지라고 여기는 알 아크사 사원에 들어가는 일이 벌어진다. 수 십 년 동안 군인 생활을 하면서 곳곳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 했던 인물이 무슬림들의 성지에 군인을 데리고 들어간 것이다. 그러자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가 다시 폭발하고 알 아크사 인티파다(2차 인티파다)가 시작된다. 가자와 서안 지구에서 대규모의 투쟁이 벌어지고 이스라엘은 언제나처럼 무력을 동원해 진압하게 된다. 알 아크사 인티파다가 시작된 뒤 5년 여 동안 4천 여 명 가까운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하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

인티파다는 이스라엘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은 지금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정당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이 파타(Fatah)와 하마스(HAMAS)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도 파타나 하마스 말고 PFLP(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 DFLP(Democratic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 PPP(Palestinian People’s Party, 팔레스타인 민중당) 등 여러 정당이 있다. 사회 운동도 마찬가지여서 정치, 경제, 인권, 여성,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이스라엘은 콘크리트와 철조망 등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서안 지구 주변과 안에 장벽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장벽 공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팔레스타인인들은 땅과 이동의 자유를 빼앗기고 집들은 파괴 되고 미래는 어둠 속에 갇히고 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미 건설된 장벽의 철거, 장벽 건설 과정에서 파괴된 토지와 주택 등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사용하는 도로 곳곳을 봉쇄해 버려 학생과 교사들이 학교를 갈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1990년대 말에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 기관을 아예 폐쇄해 버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서는 학생과 학교 측이 나서서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평화연대

팔레스타인인들은 지난 1948년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에서 벗어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무던히 싸우고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해방이 쉬운 길만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워낙 강력한 무력을 기반으로 식민 통치를 유지하고 있고, 전 세계에게 있는 보수적인 유대인들과 미국 

 

 

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원한다고 말은 하지만 대부분 독재나 왕정 체제에다 미국의 통제 아래에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과 이것을 지원하는 국제 연대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크게 바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진실을 알려 달라는 것이다. 과연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그리고 진짜 테러리스트가 누구인지 그 진실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외부에서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실천하는 가장 우선적인 일은 바로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압박, 불매나 투자철수 운동과 같은 것들도 우리가 함께 해볼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해방이 아직 멀어 보이지만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다 보면 언젠가 희망 가득한 세상이 찾아올 것이다.
 


글 미니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인생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찾으며 실천하고 있는 미니. 길지 않은 인생 ‘어~ 어~’하면서 세월 다 보내느니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연대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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