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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인농(仁農) 박재일 회장을 기리며 - 함세웅

고 인농(仁農) 박재일 회장을 기리며

생명농업의 선구자 박재일 회장이 지난 8월 19일에 선종했습니다. 신앙과 사회적 관점에서 저는 고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기립니다. 경북 영덕에서 10남매 중 5남으로 태어난 그는 대학 재학 중인 1964~65년 한일협정반대 시위 주도로 옥고를 치르면서 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65년 이옥련 님과 결혼한 그는 옥중에서 첫 딸의 아버지가 됩니다. 졸업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서울에 간 남편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인은 전혀 놀라지 않은 채 남편이 선택한 길과 삶은 언제나 옳다고 확신했으며 이 신뢰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한결 같았습니다. 박재일 회장은 딸 다섯을 낳아 아름답게 키운 아버지이며 부인을 사랑하고 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실천적 페미니스트이기도 합니다. 그는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룩한 신심 깊은 가장입니다.
동료 그리고 후배들과 어울려 시대를 고민하며 술 마시고 자주 늦게 귀가하여 잠자던 어린 딸들을 꼭 깨워 밤 인사를 했기에 주변을 번거롭게 하곤 했지만 그것은 순박함의 한 면이었습니다. 45년간의 결혼생활을 회고한 부인은 남편이 오직 삶의 중심이고 모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적 정치·사회 종교문화에서 여성의 가치가 보완되어야 할 우리 시대에 그는 참으로 아내와 철저한 사랑과 존경을 나누고 무엇보다도 자녀들의 의견을 존중했던 이상인 이기도 합니다.
그는 스승 장일순 선생으로부터 인농(仁農)이라는 호를 받았습니다. 어진 농부,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누가 어진 아내를 얻을까?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다."(잠언31,10) 라는 아내 예찬가는 이제 "누가 어진 남편을 맞이할까? 그 값은 그 어떤 보물보다 더 값지다"라는 남편예찬가로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농부는 성서문학에서 하느님의 표상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요한15,1-2)
사실 농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땅과 함께 지내는 농부는 또한 이상적 그리스도인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힘들여 일한 농부가 소출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2티모2,6) "농부는 땅의 귀중한 소출을 낼 때까지 끈기 있게 가을비와 봄비를 기다립니다."(야고보5,7)
농부는 하늘의 권리를 보장받는 사람이며 하느님의 섭리에 겸허하게 승복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암울했던 70년대 초 구속된 지학순 주교와 학생들의 석방을 위한 기도 모임에서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분의 겸손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는 늘 미소 중에 과묵하며 이웃의 말을 귀담아 듣고 실천적 지혜를 제시하여 언제나 모든 이에게 아름다운 향기를 남긴 분입니다.
그는 학생운동에서 출발하여 재해 대책, 농민운동, 한살림운동 그리고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의 핵심인 생명의 가치를 직시했습니다. 1979년 가톨릭 농민회의 새로운 위상 정립과 진로모색의 갑론을박 토론과정에서 그는 아름다운 미래를 실현키 위해 농민회의 방향이 모름지기 "생명공동체운동"으로 나아가야 함을 주창하여 오늘의 생명농업문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반독재 민주화라는 목숨을 건 투쟁의 현장에서 그는 바로 초월의 가치인 생명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는 우직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예언자적 직관과 한길만을 걸어온 충직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이치와 상통하여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가장 지혜롭고 아름다운 가치입니다.(1코린1, 18이하 참조)
그는 생명의 등불입니다. 이제 그 불꽃은 후배, 동지들을 통해 더욱 강하게 타오를 것입니다. 그는 또한 많은 열매, 생명의 결실을 남긴 한 알의 밀알이며 하느님께 바쳐진 향기로운 제물입니다.(에페5,2)
저는 그분의 잔잔한, 그러나 생명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칭송합니다. 아내에게 절대적 신뢰와 사랑, 그리고 자녀들에게 존경받았던 아버지, 사제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신앙인, 선후배 동료들에게 신의, 우의, 공정, 겸손, 연대의 표본이 되었던 분, 그는 참으로 우리 농민을 사랑하고 지킨 우리 민중의 든든한 뿌리이며 버팀목입니다.
병상에서 부인에게 남긴 그의 마지막 말을 되새깁니다. "나를 만나서 고생 많이 했소. 미안하오. 꼭 일어나겠소."
일어난다는 것은 바로 부활을 뜻합니다. 물론 그는 일어서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우리 앞에 생명농업의 선구자로 우뚝 서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운동은 모름지기 생명에 기초하여 생명을 지향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생명을 지키는 아름다운 제도입니다. 우리 모두 그분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생명의 가치를 지향하고 함께 확인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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