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정신, 나눔의 실천 - 함세웅
전태일 정신, 나눔의 실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가 지난 10월 12일(화) 서울 청계천 6가 전태일 다리위에서 출범했습니다. 기획위원회는 오래 전부터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첫째 현재: 주체로서는 소외된 노동과 청년, 그 현실의 직시, 둘째 기억: 국민 속에 다시 서는 전태일 정신의 재조명, 셋째 연대: 손을 잡는 우리들, 국민들, 다짐과 반성이라는 3대 목표와 기조를 설정했습니다.
저는 전태일 분신항거 40주년인 11월 13일이 2010년을 결산하고 종합하는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월 26일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2·28, 3·15, 4·19민주혁명 50주년, 5·18광주항쟁 30주년, 6·15남북공동선언 10주년, 6·25민족상잔의 비극 60주년, 8·29경술국치 100주년 등 참으로 묘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11월에 우리는 전태일 40주년을 맞이하여 이 모든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하고 전태일과 같은 결단을 다짐하는 진지한 순간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그는 노동자의 당연한 기본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 바친 청년입니다. 목숨을 건 증언과 주장은 그 자체가 증거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태일의 삶이며 정신입니다. 이날 출범식에서 박형규 목사님은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스러져간 청년학생들, 1970년 불의한 법체제에 항거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청년 전태일, 이 두 사건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근원적 전환의 계기였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두 사건 안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실존적 삶과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고 계십니다. 그는 또한 십자가 죽음을 통해 부활을 이룩하신 그리스도를 재현한 아름다운 청년이 바로 전태일임을 확신하며 선언했습니다.
저는 오늘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평등과 평화 실현을 위해 숨져간 모든 분들의 희생과 열정을 기억합니다. 특히 아름다운 강산, 생명의 원천인 우리의 4대강을 지키기 위해 지난 5월 31일 소신공양하신 문수스님을 죄스럽고 아픈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목숨을 바친 분들 앞에서 저는 또한 신앙인으로서, 시대적 반성과 함께 속죄의 기도를 드립니다.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너무 말을 많이 하고 또 많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초월과 만남, 온갖 탐욕을 떨쳐버리는 철저한 수행과 극기의 극치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죽음 앞에서 여전히 소유욕에 종속되어 있으니, 산다는 것 자체가 한계이며 죄라는 신학적 명제를 새삼 깊이 묵상합니다.
저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각자 자신의 몫에서 일부를 떼어 비정규직 동료들을 위하여 나누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상상하곤 합니다.
우리 기념사업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전문요원들에게 두어 차례 나눔을 실천한 적은 있지만 계속하지 못한 우리의 한계를 겸허하게 고백하면서 전태일 40주년을 맞아 실천의 화두로, 감히 급여나누기실천운동을 제안해 봅니다.
만일 우리가 솔선수범 한다면 그것이 바로 제2의 전태일이 되는 구체적 방안이며 나아가 정치인들과 기업인, 기득권층을 이끌고 가르치는 가장 힘 있는 웅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태일은 자신의 몸을 바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몫의 일부를 나누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전태일은 바로 나눔의 표본입니다. 비록 우리가 목숨을 바치지는 못할망정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전태일 40주년을 기리는 아름다운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기록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여성을 경시하고 홀대하는 주역의 다수가 남성이라는 지적과 고발내용입니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오히려 박해하는 장본인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라는 더욱 가슴 아픈 지적이 있습니다. 같은 처지에서 기득권을 지키고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현실을 깊게 고민합니다. 그런데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는 더욱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여성이기에 남성으로부터 받는 차등과 차별, 비정규직이기에 정규직 그것도 같은 여성 정규직 여성들로부터 받는 소외와 무관심, 이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는 처절한 내용이었습니다. 만일 전태일이 살아있다면 오늘의 이 현실에 대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출범 선언문이 그 답입니다.
"전태일이 목숨 바쳐 이룩한 민주노조운동도 신자유주의 세계에 끌려다니며 자본주의의 근본을 혁파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시달리며 지칠 대로 지쳐버렸습니다. 암담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다시 전태일을 생각하며, 우리 스스로 다시 전태일이 되려고 하는 것은 40년 전 그랬던 것처럼 전태일만이 이 어려움을 뚫고 다시 일어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청년실업자, 최저임금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이 어깨걸고 나서 40년 전의 전태일이 되고자 합니다."
전태일 정신은 바로 나눔의 실천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