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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시대읽기 - 굿 셰퍼드

 

굿 셰퍼드


- The Good Shepherd


글·김봉석 영화평론가/lotusidnaver.com



얼마 전 국정원 요원들이 인도네시아 사절단의 숙소에 침입해서 정보를 빼내려다가 들킨 사건이 있었다. 흥신소 직원들도 하지 않았을 초보적인 실수를 반복하고 결국은 국가 망신으로 전락했다. 정보기관은 일종의 필요악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정보기관은 있다. 한국에는 국가정보원, 미국은 CIA와 NSA, 영국은 MI6, 이스라엘은 모사드 등등. 정보기관의 목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등 대외 비밀공작을 행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스파이, 즉 첩보원도양성한다. 전 세계에 파견된 첩보원들은 자국 이익이 되는 정보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경쟁국이나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나라의 정보만 모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서로 유리한 정보를 수집하고 비밀스러운 공작을 수행하는 것에는 예외가 없다. 최근에는 경제적 이득을 위한 정보활동도 치열하다. 스파이의 활약을 다룬 영화를 흔히 첩보영화라고 한다.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007 영화도 첩보영화라고 부르지만 007 영화는 대개 픽션과 과장으로 꾸며져 있다. 진짜 첩보원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스파이 게임>이나 <본 아이덴티티> 등에서 꽤 근접하게 만날 수 있다. 혹은 한국영화 <이중간첩>이나. 스파이는 비밀리에 정보를 캐내는 임무를 맡기 때문에, 고독하고 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에 집중하기는 힘들다. 사랑에 빠져도 자신의 임무를 털어놓을 수가 없고, 때로는 연인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스파이의 세계는 007 영화처럼 낭만적이지가 않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언제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살벌한 세계다.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연출한 <굿 셰퍼드>는 미국 CIA가 무대인 첩보영화다. 주인공의 활약상을 그리기보다는 CIA의 창설과정에 깊숙하게 개입한 핵심인물의 삶을 통해서 첩보기관의 내면을 탐구하는 진지한 영화다. 1939년. 예일대 학생 에드워드 윌슨은 비밀 서클인 Skull and Bones 에 가입한다. Skull and Bones는 1832년 윌리암 러셀이 유럽의 신비주의 단체를 본 떠 만들었다고 알려진 예일대학의 비밀서클이다. 매년 15명의 멤버를 선발하고, 그들은 철저한 복종과 신뢰를 약속하며 평생을 함께 한다. 윌리엄 태프트와 부시 부자등 3명의 대통령을 배출했고 빌 게이츠의 할아버지와 타임지의 설립자 헨리 루스 등 미국 정계와 재계를 흔드는 주요 인사들이 단체의 일원이었다. 일부에서는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키워내는 엘리트 단체라고도 말하지만,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미국을 쥐락펴락하는 음모 단체라고도 한다. Skull and Bones에 가입한 에드워드 윌슨은 정부 요원의 부탁을 받고 독일의 나치즘에 동조하는 교수를 몰아내는데 일조한다. 이 과정에서 신임을 받은 윌슨은 2차대전이 시작되면서 조직된 정보기관 OSS 에서 일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온 윌슨은 1947년 트루먼 대통령지시 하에 국가안전보장법에 의하여 설립된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기관 CIA의 핵심인물이 된다. 윌슨은 첩보요원으로서 탁월한 공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하지만, 정반대로 가정에서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간다. 1961년 4월 윌슨이 주도한 쿠바의 피그스만 침공작전이 실패한다. 미국 정부는 CIA 내부 첩자가 정보를 유출시켰다고 판단하고 비밀리에 용의자를 색출한다. 그런데 에드워드 윌슨 에게 출처를 알 수 없는 흑백사진과 녹음 테이프가 배달된다. 사진과 테이프는 내부첩자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 였다. ‘굿 셰퍼드’는 양들을 돌보는 선한 목자라는 뜻이다. 즉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정부기관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굿 셰퍼드>를 보고 있으면 의심이 든다. 그들이 말끝마다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라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국가는, 단지 소수를 위한 국가다. 그들은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첩보전 속에서 모든 것을 파괴한다. CIA는 해외업무만 담당하기로 된 규정을 어기고 야당을 도청하는 등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고, 1970년대에는 칠레와 과테말라 등 중남미의 내정에 개입하여 군부 쿠데타 등을 지원했다. 비밀작전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위해 마약 판매에도 손을 대는 등 CIA가 저 지른 협잡과 음모는 부지기수다.


 


그 중 쿠바의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해 계획한 피그스만 공격은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꼽힌다.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승인하고 케네디 행정부하에서 실행한 피그스만 작전은 1400명이 침공했다가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실패로 끝났고, 불법적인 공격을 시도한 미국의 대외적 위신이 크게 실추하면서 CIA에 대한 여론도 최악이 되었다.<굿 셰퍼드>는 1954년부터 1974년까지 CIA 요원이었던 제임스 앤젤톤의 삶에 기초를 두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첩보공작을 보여주기보다는, 에드워드 윌슨의 삶에 비쳐진 첩보전의 비정하고 잔인한 음모에 역점을 두고 있다. 윌슨은 결코 악한 인간이 아니다. 아름다운 시에 재능이 있고, 자식을 사랑하는 보통 사람이다. 하지만 스파이로 일하면서, 윌슨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데 협력한다. 또는 자신이 직접 명령을 내린다. 자신이 안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족이 평안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나라를 짓밟는다. 그러나 그가‘선한 목자’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첩보전을 펼치는 동안 의도와는 반대로 가족도, 친구도 멀어져만 간다. 그것은 <대부> 에서 마피아 조직이‘패밀리’를 지키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동안, 오히려 그들이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이 파괴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싸웠던‘폭력조직’이다. 진정한 행복, 진정한 자유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고.<굿 셰퍼드>는 <스파이 게임>처럼 재기가 넘치는 첩보영화는 아니다. <본 아이 덴티티>처럼 액션을 앞세운 스릴러영화도 아니다. <굿 셰퍼드>는 윌슨이란 첩보원의 삶을 통해, 첩보기관의 야비하고 냉정한 이면을 예리하고도 진지하게 그려낸 드라마다. <굿 셰퍼드>를 보고 나면 스파이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은 물론, 정보기관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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