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시] 이 무거운 물음에 답할 수 있겠는가 -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이 무거운 물음에 답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안타깝지 아니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 한창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게다가 젊은 시인을 <시대와 시>에 소개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처참하고 비루하다. 쓰디쓴 통탄으로 감히 시인에 대해서 말한다.
시인은 지금 수감 중이고, 얼마 전 그에 대한 구속적부심은 기각되었다. 그는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고, 도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사법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 된다. 그는 희망버스를 기획했고, 희망버스에 같이 탔다. 시민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를 썼고, 올해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그의 이름은 송경동이다. 그의 별명은 울보다. 그는 아마도 말도 안 되는 세상이 참으로 서러웠나보다. 그를 안다는 사람은 모두 그의 눈물에 대해 농을 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연후에 시인에 대해 말한다. 시인의 행적이 단단하고 올곧기 때문이다. 단단함과 올곧음을 바로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시인이 시인이라는 명찰을 달고 골방에 앉아 자기의 세계에 골몰할 때 송경동은 분연히 타인의 세계로 갔다. 자본의 폭격 앞에서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그들을 타인이 아니라 우리라고 송경동은 말했다. 송경동에게는 폭격의 자국이 선명한 그곳이 진정한 세계였다. 그곳에서 그는 맘껏 울 수 있었고, 대답할 수 있었으며, 그것들은 모두 다시 시가 되었다.
혜화경찰서에서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체증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송경동은 `꿀잠`에 이은 두 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으로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이른바 주류문단과 거리를 두어온 그에게 귀엣말을 던진 신동엽의 목소리는 다시 시인으로서 송경동을 호출하는 목소리였을 것이다. 왕성한 활동가이자 양심적 시민인 송경동,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는 시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상식 현장에 시인은 자리할 수 없었다. 그를 위해 준비되었지만 텅 비어있을 수밖에 없었던 의자에 시상식을 찾아온 문인들의 눈길이 한 번 쯤 머물렀다 사라졌다.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송경동은 잡혀갔다.
한진중공업 85번 크레인에서 사투를 벌였던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우리가 눈길을 돌린 것은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였다. 송경동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현장에 있다. 그는 부당한 정리해고에 항거하면서 중장비에 몸을 싣고, 거기에서 떨어지고, 몸을 다치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 갔다. 그곳은 쌍용자동차였고, 콜트콜텍이었고, 재능교육이었다. 그 중 하나가 한진중공업이다.
한진 청문회 때 국회의원은 사주에게 물었다. 죽은 사람의 얼굴과 장례식 영상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을 아느냐고, 그는 모른다고 했다. 그가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잡아떼고 시력이 흐려진 것 마냥 인상을 구기며 모른다 말했을 때, 우리가 이 땅의 자본에게 던지는 근엄한 물음은 무참히 구겨졌다. 1%는 99%를 모른다고 답했고, 또 다른 99%의 각 1%를 차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안다고 눈빛으로 답하며 버스에 올랐다. 우리가 서로를 안다고 말하며 반갑게 손을 흔들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희망이 모이고 쌓여 김진숙 씨는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내려오는 그 장면을 본 후 얼마 있지 않아, 희망버스 기획자라는 명목으로 송경동 시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이다. 희망버스에 기획자는 없다. 희망버스를 기획했고, 다음 희망버스 행선지로 쌍용자동차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그를 잡아가려면, 시민 모두를 잡아가야 한다. 시민들에게 배후가 있다면 그것은 시인의 양심적 상상력이다. 추체험으로 완성된 상식적 결의를 어떤 방식으로 재단하고 판결한단 말인가. 우리가 왜 이러는지 알고 싶은가? 그럼 먼저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학생이 아니다
졸업한 지 오래됐다
당신은 노동자다 주민이다
시민이다 국민이다 아버지다
가정에서 존경받는 남편이고
학부모며 집주인이다
환자가 아니고 죄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모두다
이참이면 건강쎈터로 달려가 호흡을 측정하고
저녁이면 영어강습을 받으러 나간다
노동자가 아니기에 구조조정엔 찬성하지만
임금인상투쟁엔 머리띠 묶고 참석한다
집주인이기에 쓰레기매각장 건립엔 반대하지만
국가 경제를 위한 원전과 운하 건설은 찬성이다
한 사람의 시민이기에 광우병 소는 안되지만
농수산물 시장개방과 한미FTA는 찬성이다 학부모로서
학교폭력은 안되지만, 한 남성으로
원조교제는 싫지 않다 사람이기에
소말리아 아이들을 보면 눈물 나고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에 보내는 쌀은 상호주의에 어긋나고
미군은 절대 철수하면 안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사랑의 대상이 애인이거나, 가족이거나, 동문 혹은 동향사람이거나 혹은 직장동료 정도인 것 같다. 가까운 사람들과 각별한 사랑을 나누는 우리는 대체 누군가? 기업의 이익이 국가의 발전과 직결되고, 그런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 몇 정도는 사지로 내몰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측은하기는 하지만, 나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기에 깊게 생각할 여지는 없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니까. 나는 소시민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99%의 소시민은 작은 알갱이로, 모래보다 더 작은 분자와 원자로 분열되어 현대사회를 살아간다. 어느 순간 개별체에게 자본의 폭격이 내리면, 그는 숨을 참호도, 기댈 동지도 없다. 공동체의 울타리는 없어지고,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손 내밀어주는 이 없다. 우리 모두 위기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계속해서 손을 내민다. 타인을 위해 울고, 타인이 곧 우리라고 말한다. 송경동 시인,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시인 속에 있는 작은 정부는 지금도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다른 정부와 협상에 한창일 것이다. 그의 정부를 믿는다. 그리고 나는 내 속에 다른 정부를 세워본다. 불의한 폭력에 맞서는 시인의 자세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취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금 반성할 것이다. 모든 물음은 반성에서 시작된다. 이 거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송경동의 시집을 다시 천천히 읽는다. 시집을 덮고 대답할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면, 거기에서 또 다른 희망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