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평등의 땅에>
<저 평등의 땅에>
글 이은진/ jini0501@gmail.com
봄입니다. 이제 앙상하던 산과 들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개나리며 진달래가 이 강산을 물들이겠지요. 1970, 80년대에는 ‘봄’이라고 하면 계절의 봄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과 ‘인간다운 세상’ 이런 의미들로 쓰여 지곤 했습니다. 민주화, 평등,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봄으로 표현했었던 거지요. 혹은 새벽으로 상징되기도 했었지요. 그래서 그 시대 노래나 책, 행사 제목에 봄, 새벽 등이 자주 쓰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저 평등의 땅에>입니다. 노래모임 ‘새벽’의 노래이고, 새벽의 대표적인 가수였던 윤선애가 불렀습니다. 아마도 80년대 민중가요를 즐겨 부르고, 함께 하셨던 분들 중에는 윤선애의 <저 평등의 땅에>를 애창곡으로 꼽는 분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윤선애의 <그날이 오면>, <벗이여 해방이 온다>, <저 평등의 땅에>는 노래로서도 명곡이고 오래오래 사랑받은 노래이지만, 아마도 윤선애란 가수를 빼고는 좀처럼 생각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노래는 1988년 즈음에 발표되었습니다. 1984년에 결성된 ‘민중문화운동협의회’(민문협)는 1987년 초 ‘민중문화운동연합’(민문연)으로 발전을 합니다. 결속력과 활동이 엄청나게 고양되고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였습니다. 민문협의 노래분과였던 새벽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조직적 발전에 따라 많은 창작곡과 공연, 음반 제작 등을 이루어 내고, 그 시기 노래운동을 이끌어 갔습니다.
1988년 ‘제2회 민중문화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6월민주항쟁 1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종합공연인 [저 평등의 땅에]를 기획하고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발표하였습니다. 이 공연은 일회적 공연으로 끝난 게 아니라 몇 차례 순회공연을 하였는데, 88년 12월에는 ‘악법철폐 기금마련 공연’으로, 89년 3월에는 ‘민주언론 실천 특별공연’ 등으로 올려 지기도 했습니다.
단순 노래공연이 아니라 집체극의 형식으로 노래와 독백, 대화, 효과음, 다큐멘터리, 슬라이드가 결합된 총체적인 노래극으로 엮어졌습니다. 내용적으로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1부 ‘사랑하는 조국’, 전태일 분신자살 이후 노동자 투쟁을 그린 2부 ‘투쟁의 물결’, 민주화된 세상, 통일과 해방의 세상에 대한 전망을 담은 3부 ‘저 평등의 땅에’ 이렇게 모두 3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선언 1>, <선언 2> <노동자의 노래>, <저 평등의 땅에>,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유월의 노래>, <오월의 노래 3>, <연대의 노래> 등이 새로 창작되었는데,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듯 노동자 정서와 노동자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은 노래들을 대거 발표했습니다. 이는 과거 새벽이 지식인의 입장에서 노동자나 민중의 삶을 연민적 시각으로 그렸던 것에 비해, 노동자의 관점으로 노동자의 희망과 정서를 그려냈다는 점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민문연 12집 [저 평등의 땅에] 공연 실황과 민문연 15집 [현장의 소리]에 수록되었다가 89년 이후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2집에 당시 노찾사 멤버였던 권진원 씨의 노래로 불려 지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노찾사 2집은 약 50만장이 넘게 팔리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니, 이 노래를 듣고 불렀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되실 겁니다. 여기서는 윤선애씨의 노래를 들어 보실 텐데요, 노찾사 2집에 수록된 권진원 씨의 노래도 일품이지만, 초기 발표되었을 당시의 정서를 살려 들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윤선애 씨의 노래로 선택해봤습니다. 윤선애 씨는 여전히 솔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대체로 그렇듯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이는 본인의 의지보다는 현재 우리의 조건 때문이겠지요.
네이버에 윤선애 씨 후원카페가 있는데, 카페지기께서 몇 년 전에 이 노래에 대한 몇 가지 글을 써놓은 게 있었습니다. 이 보다 더 잘 이 노래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어 그 중 일부를 양해 없이 옮겨봤습니다. 읽어보시고 의미를 생각하며 노래를 감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 삶에 진정한 봄이 오길 소망해 봅니다.
파업투쟁 80일째, 강경입장을 고수하던 회사는 농성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농성장으로 우유와 빵을 조금씩 넣어준다.
배고픔과 피로에 지친 농성자들은 빵을 보고 달려들지만 일부 조합원과 충돌이 일어난다.
여기서 싸움은 커지면서 일부는 회사에서 성의를 보이기 시작한 이상, 더 이상은 의미가 없는 싸움이라고 하면서 농성을 풀 것을 주장한다.
또 한 부류는 우리가 여기까지 왜 고생하면서 왔는지를 망각하고 이깟 몇 개의 빵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 하냐면서 다른 쪽을 질책한다.
이 때 조금 나이든 노동자가 둘을 만류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진정들 하시게, 이 늙은이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싸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어쩌면 우리는 긴 세월동안 부평초처럼 살아왔지.
어쩌면 우리는 별이었을 거야. 하지만 어떤 이유로 미움을 받고 이 지상으로 떨어졌지.
어쩌면 우리는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였을 거야.
하지만 모든 비늘을 잃고 말았지.
이 상처 뒤에는 더 하얀 살로 우리가 피어나듯이,
우리가 겪은 모든 아픔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살과 피가 되어 우리를 살아가게 할 거라네.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긍지마저 잃지는 말게.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눈물마저 잃지는 말게.
그것이 우리 노동자들이 가진 마지막 재산이니까‘
*음원 출처: 민문연 15집 [현장의 소리] 중 윤선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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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평등의 땅에>
작사, 작곡 류형수
저 하늘 아래 미움을 받은 별처럼
저 바다 깊이 비늘 잃은 물고기처럼
큰 상처 입어 더욱 하얀살로
갓 피어나는 내일을 위해
그 낡고 낡은 허물을 벗고
잠 깨어나는 그 꿈을 위해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
저 넓디 넓은 평등의 땅 위에 뿌리리
우리의 긍지 우리의 눈물
평등의 땅에 맘껏 뿌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