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소녀들의 어머니, 정대협 윤미향 대표
나이 든 소녀들의 어머니, 정대협 윤미향 대표
글 정영심/ zeromind96@naver.com
검은 벽의 철창에 나비가 나는 박물관으로 가는 길목
햇살이 고운 가을날 서울 성산동 언덕을 넘어 찾아간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고운 햇살 때문일 것이다. 벽 높은 박물관을 올려다보던 내 눈엔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검은 벽에 철창을 두른 침울한 분위기. 그러나 밖에서 보던 이미지와 다르게 박물관 문을 열면 희미한 호롱 불 밝힌 창이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이내 불빛은 나비가 되어 박물관을 들어서는 관람자의 마음을 가볍게 면죄해준다.
박물관을 들어서면 관람자를 맞아주는 나비가 나는 창
그곳에 웃음이 맑은 윤미향 대표가 있다. 그녀는 박물관을 열면서 관장을 역임하고 있다. 올해로 22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함께 했다. 그녀는 너무 아파 나이 들 수 없는 영원한 소녀들의 어머니였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영원히 할머니가 될 수 없는 소녀들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냈다. 빙산처럼 굳게 얼어있었을 할머니들의 마음을 봄눈처럼 녹였으니 그녀는 분명 따뜻한 봄바람이다. 담담하게 22년 정대협 활동을 이야기하는 그녀는 비오는 날 벌판에 아무렇지 않게 조요히 서서 비를 피할 품을 내주는 나무 같았다. 정대협 홈페이지에 가면 그녀와 동료들 그리고 할머니들의 삶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에게 영상교육을 하고 있는 윤미향 관장
정대협은 할머니들이 쉼터를 함께 꾸리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전세로 얻은 쉼터 ‘우리집’에서 할머니들이 함께 살아오다 재개발 등의 이유로 마포구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셋방이 아니다. 할머니들이 이 땅을 나비 되어 떠나시는 날까지 살 수 있도록 귀한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또한 할머니들의 삶을 널리 알리고 지구상에 이러한 잔혹하고 비참한 일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하기 위해 2012년 5월 5일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을 개관했다. 지금도 멈추지 않는 전쟁에 비참하게 노출 되는 여성과 어린이 문제를 우리의 아픔을 넘어 함께 보듬어 가고 있다. `나비기금`을 마련해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돕는 일에 나서고도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마땅히 받을 보상을 받으면 전 세계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한 ‘나비기금’ 으로 쓰신다한다.
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용 되는 곳이다. 두 손 꼭쥐고 맨발의 소녀.
그 옆엔 함께 박물관을 찾은 박지선이 앉아있다. 너무도 아름다운 과거와 현재의 우리 딸들이 앉아있다.
흔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발적 죄를 묻는 말이다. 정신대 문제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반인륜적인 행위다. 우발적이 아닌 고의성과 계획성, 조직성을 갖춘 용서 할 없는 범죄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온 인류가 바로 잡아야 할 무서운 범죄다. 정대협은 유엔 인권 이사회에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도록 촉구해 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지금 유엔총회 건의안 통과를 위한 위안부 할머니 문제 청원서 서명을 받고 있다. 유엔총회에 건의안으로 통과 되어 인류가 해결해야 할 하나의 큰 숙제를 풀 수 있길 바란다.
1992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시위를 시작한 수요 집회는 1,000회 차를 훨씬 넘어버렸다. ‘내가 조금만 아팠다면 집에서 쉴 텐데 너무 아파서 나왔다.’ ‘내가 입을 다물고 과거와 아픔을 말하지 않았더니, 과거도 없어지지 않고 아픔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들은 이제 여성 인권 운동가가 되어 계신다. 이 땅에 또는 이 지구상에 여성이라는 약자로서 더는 피해 받고 억울한 이가 없도록 매주 수요일마다 할머니들은 외치고 있다.
수요 시위에 참여하고 계시는 아름다운 할머니들. (윤미향 대표 페이스북에서 )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아온다.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윤미향 관장은 영상을 함께 보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차분히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잊지 않고 안내해준다. 박물관을 들어서면 노랑과 보라색이 많이 보인다. 노랑은 희망과 연대를, 보라는 부활과 고귀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전쟁 피해 여성들이 평화와 자유를 찾아 해방 나비가 되기를 바란다. 이날 박물관을 찾은 조찬희 학생(중학교 2학년)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나비기금도 내고 서명도 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윤미향 관장이 이야기 하는 도중 계속 눈물을 흘리던 여학생 진예지(중3) 학생은 ‘기도하고 싶다.’라는 짧은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의 얼굴에서 같은 여성으로서의 깊은 공감과 아픔을 이해하는 마음을 볼 수 있었다. 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는 사실 자료를 보면 많은 것을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박물관엔 작은 정원도 있다.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쉴 수 있다.
윤미향 대표는 우리에게 이야기 한다. ‘책임감’..... 어쩌면 우리는 무서워서 외면하고 사는지 모른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에서는 목요일과 금요일 강좌를 열고 있다. 목요일에는 평화와 성폭력, 위안부 문제. 금요일엔 자원봉사자 교육이 있다고 한다. 강좌는 개념을 넘어 실생활 속에서 전쟁과 평화에 관련한 우리 주변 돌아보기에서 일상의 폭력을 찾는 것이 목적인 듯하다.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않고 하는 일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많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정대협’과 씩씩한 그녀 윤미향 대표가 있어 고맙고 다행이다. 전 세계로 일본의 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문제의식이 퍼져나가길 바란다. 젊고 여린 맨발로 시작하여 중년의 넓은 품과 품위를 지닌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대협과 함께한 윤미향 그녀에게 사랑과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