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김대중을 생각한다.
8월, 김대중을 생각한다.
글 한종수/ wiking@hanmail.net
민주화의 거인 김대중 대통령에게 8월은 아주 특별한 달이 아닐 수 없다. 1973년 8월 8일, 동경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납치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고, 2009년 8월 18일에는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동경에 가면 필수코스처럼 일본 국왕이 사는 왕궁에 간다. 하지만 옆에 있는 그랜드 팔레스 호텔을 찾는 이는 거의 없다. 왕궁에서 가까워서 그랜드 팔레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이는 이 호텔은 야스쿠니 신사와도 아주 가깝다. 지금의 이 호텔은 리모델링을 해서 당시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일본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설도 있으므로 호텔에는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어떤 흔적도 없다. 이젠 납치 담당자의 아들이 미국인이 되고 한국 대사로 올 정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일본에 갈 때마다 늘 안타까운 것이 있다. 의열단의 김지섭 의사가 폭탄을 던진 안경다리 이중교(二重橋)도,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한 맥아더 사령부도 왕궁에서 지척인데 아무도 가지 않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역사의식 말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의식을 비난하기 전에 일본에 있는 한국 역사의 현장을 기념하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김대중 납치사건은 2002년에 영화화되었는데, 한일공동 합작영화로 제목은 `케이티(KT)`였다. 목표물 제거(killing the target)라는 뜻으로 당연히 목표물은 김대중이다. 제작사는 일본 씨네콰논으로 한국영화의 일본수입․상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재일 동포 이봉우가 운영하는 영화회사이다. 씨네콰논은 재일 동포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뜨는가`를 제작했다.
감독을 맡은 사카모토 준지는 `케이티`를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한․일 양국의 깊은 상처를 남기지 않는 범위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납치 대기, 토막살인 장면에서 보듯 `케이티`는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김차운 역의 김갑수, 김대중 역의 최일화, 김준권 역의 김병세 등 개성 있고 연극적 분위기를 소화해낼 수 있는 캐스트로 채워져 있다. 그들의 연기는 토미타 역의 사토 코이치를 비롯한 일본 연기자들과 조화를 이룬다. ‘케이티`는 오락영화와는 거리가 멀어 밋밋한 감도 없지 않다. 제작시기도 좀 늦었지만, 한․일간의 역사를 음미하도록 김대중의 1970년부터 4년간을 재현해낸 영화이다. 올해에는 ’헤이, 미스터 디제이‘라는 뮤지컬 작품이 나왔다. 김대중 납치사건이 있었던 1973년과 2009년을 오가며 청년 김대중과 대통령 김대중을 만날 수 있다.
이제 김대중 대통령이 영면한 곳으로 가보자. 정식 명칭은 ‘국립서울현충원’이지만 다들 동작동 국립묘지라고 부르는 곳에 그가 묻혀있다.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큰 선거를 앞두고 반드시 가는 장소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가본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제복을 입은 이들에게 이곳에 묻힌다는 것은 그야말로 ‘로망’이다. 영화 <실미도>에서 특수부대원들은 정부의 배신을 알고 치를 떤다. 그러면서 “죽더라도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다는 ‘영광’에 그 고된 훈련을 견디어 냈는데…”라며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김대중, 이승만, 박정희 세 대통령의 묘소는 현충원에서 가장 깊숙하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가 가장 넓다. 김대중 대통령 묘소의 10배에 가까운 300평에 달하는데 씁쓸하지만 이제 와서 왈가왈부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는 계단도 여러 개 있을 정도로 왕릉을 방불케 하지만 어쨌든 그 곳에서 바라보는 서울 풍경은 제법 볼 만하다.
일설에 의하면 풍수에 일가견이 있던 이승만 대통령이 기존의 장충단이 포화상태가 되자 이곳을 국립묘지로 지정했다고 한다.
사실 동작동 국립묘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포화상태여서 대전 현충원을 조성했다. 동작동 국립묘지에 30평의 공간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는 가장 작지만 오히려 고인의 유지에 맞는 적당한 규모라는 생각도 든다. 입구에는 방명록이 비치되어 있는데 방문객의 기록이 제법 많아 기분이 좋았다.
세 대통령의 묘역 옆에는 장군 묘역이 3개나 조성되어 있다. 몇 년 전 전두환의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가 이곳에 묻혀 말이 많았다. 묘역 조성에서 꼭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일반 사병이나 장교는 봉분이 없고 묘비만 있으며 1평 밖에 안 되는 데 비해 장군의 묘는 봉분도 있고 묘비도 크며 면적도 8평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그 장군들이 그토록 모범으로 삼고자 하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인근의 알링턴 국립묘지나 샌프란시스코 인근 골든게이트 국립묘지에 가보면 묘의 크기가 모두 같다. 심지어 미 해군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종신원수인 체스터 윌리엄 니미츠 제독의 무덤도 일반 병사들 무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다른 게 있다면 남달리 많이 새겨진 별의 숫자다. 니미츠의 이름은 오늘날 미 해군 주력항모의 네임쉽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정도의 공헌을 이룬 군인이라면 모두가 선망하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충분히 묻히고도 남았지만 제독은 태평양에서 전사한 수병과 해병들이 가장 많이 묻혀 있는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골든게이트 국립묘지를 선택했다. 최후에는 자신의 지휘 하에서 전사했던 부하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독의 뜻을 받들어, 생전에 제독의 수하로 명성을 날렸던 많은 부하 제독들, 레이먼드 스푸르언스 대장과 홀랜드 스미스, 터너와 록우드 등 명장들도 니미츠 주변에 함께 잠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 제독들 모두 별의 수가 많을 뿐, 묘비의 크기나 묘지의 면적은 다른 보통 수병들이나 일반 장교들과 같다.
가보면 알겠지만 현충원의 분위기는 ‘조국이 부르면 나가 싸워 죽어라’ 그러면 ‘이곳에 묻히는 영광을 주겠다.’이다. 대통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장군과 사병을 이렇게 차별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묘지에는 대한민국 역사에 딱 두 번 있었던 국장의 당사자 김대중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같이 묻혀 있는 공간이다. 다시 말하면 민주화와 독재, 후자를 좋게 말하면 ‘산업화’의 상징적 인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어쩔 수 없는 우리 역사의 모순은 이곳에서도 피할 길이 없다.
하기야 이곳에는 이인영, 이회영, 김상옥, 강우규 등 쟁쟁한 독립투사들의 묘소가 있지만, 백낙준, 이종욱, 김석범 등 친일 경력자들도 묻혀있어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온 몸의 짜증은 더위와 습기 탓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