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꽃>, 용서를 쉽게 말하지 마세요
<할매꽃>, 용서를 쉽게 말하지 마세요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온 나라가 편을 갈라 싸우고 있다. 같은 장면을 보고서 저마다 뱉어내는 말도 다르다. (특정한 이슈나 이름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비단 그 일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갈등이 첨예해지니 저마다 해법도 내놓는다. 용서나 화해, 힐링 같은 말들이 가장 많이 구천을 떠돈다. 그렇다 그건 단지 말이 구천을 떠도는 것과 같다.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의 유령들이 이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용서와 화해가 어찌 그리 쉬울까.
# 미시(微視)의 역사
<할매꽃>은 ‘임종 직전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라’는 문정현 감독 어머니의 성화에서 시작했다. ‘외할머니의 효행’같은 감독으로선 별반 흥미롭지 않은 주제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성화를 이기지 못해 전라남도 어느 시골, 외할머니의 고향을 찾은 감독은 제 집안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씩 알게된다.
문정현 감독이 아는 외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셨다. 남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고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길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옛날 시골 마을에서 한학을 배운 양갓집 규수였고 8남매를 혼자서 키워낸 굳센 엄마였다.
하지만 감독이 몰랐던 외할머니의 삶이 있었다. 외할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감독의 외할아버지는 전쟁 직후 빨치산이 되어 산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자식은 물론 남겨둔 채였다. 외할머니는 남편을 찾기 위해 지리산을 헤맸다. 겨우 찾은 남편을 경찰서에 자수시켰지만 외할머니는 평생 남편의 원망을 견뎌야했다.
외할머니의 큰 오빠는 인민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좌익 활동에 열심이었지만 결국 자수를 결심했다. 어려서부터 동네 친구인 경찰에게 자수를 했고 함께 파출소를 향하던 길에서 그 친구에게 총살당했다. 감독의 어머니는 당신의 외삼촌을 죽인 경찰의 딸과 소꿉친구로 자랐다. 어머니는 친구의 아버지가 자신의 외삼촌을 죽인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남동생은 일본 유학 중에 형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형이 그렇게 죽어버린 걸 알고 일본에 남기로 결정한 그는 조총련 동경 지부장까지 지낼만큼 좌익 이념에 충실한 사람이 됐다. 그는 자신의 딸을 북한으로 보냈다. 역시 이념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아들은 여동생을 일가붙이 하나 없는 북으로 보내고서 편지 한 통 쓰지 않은 아버지를 증오하며 평생을 보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이건 모두 사실이다. 감독이 어머니를 통해 전해들은 감독 집안의 가정사다. 인민위원회, 빨치산, 조총련, 북송선, 즉결, 총살. 시대극을 하나 만들어도 될 법한 기구한 낱말들이 감독의 가정사엔 모두 들어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이 이야기가 감독 집안만의 특수함은 아니다. 감독이 찾은 그 시골마을에 사는 노인들에게 이런 사연 한 두 개쯤은 길가의 돌맹이처럼 흔하다. 그리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런 사연이 만든 세상에 살고 있다.
<할매꽃>에 담긴 역사는 감독의 가정사고 감독은 외할머니의 수고스러웠던 삶을 톺아보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어쩌면 그건 남의 집 가정사나 수고스럽고 한 많은 삶을 견뎌온 어느 노파를 위무하기 위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남의 집 가정사는 곧 나와 당신의 집 이야기일 수도 있고(감독도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제 집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속사정일 수도 있다. 수고스러웠던 삶을 견뎌낸 건 감독의 외할머니만이 아니다. 그 삶의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사연을 모르거나 혹은 외면하고 살아왔던 것도 감독만이 아니다.
‘작은 것의 역사’ 혹은 ‘작은 것을 통해 보는 역사’. <할매꽃>은 개인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통찰한다. 역사책에 큰 글씨로 새겨진 역사가 아닌 그 이면의 역사.
# 맹목적 적대
외할머니의 고향 시골마을은 여전히 갈등하고 있다. 그 시절을 살아왔던 노인들은 아직 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와 하대라는 윗마을, 아랫마을로 나뉜 그 곳엔 우익에게 밥을 해줬다고 산에서 내려온 빨치산들에게 죽임을 당했던 기억과 집안의 누군가 좌익이었다고 일생을 연좌제에 묶여 핍박 받아온 기억이 공존한다. 노인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재 넘어 이웃마을을 욕한다. 우익이나 좌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적대의 기억은 남아있다. 이념의 갈등 보다는 삶의 적대. 총성이 울리던 전쟁은 60여 년 전에 끝났지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외할머니의 고향 시골마을의 노인들이 아니어도 여전히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빨치산과 토벌대 같은 말은 들어본 적도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갈등하고 적대하고 있다. 종북, 일베, 수꼴, 좌좀 같은 말들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그 때와 마찬가지로 모른다. 다만 이념은 그 때보다 더 희미해졌지만 적대는 더욱 또렷해졌다. 맹목적 증오와 분노. 누가 먼저인지 선후를 따질 수도 없는.
어린 시절의 친구를 길가에서 총으로 쏴 죽이고 적에게 밥을 줬다고 인민재판을 열던 인간성의 말살은 지금도 여전하다. 맹목적 거세는 인간을 삭제한다. 약자를 비웃고 짓밟고 죽어간 이를 조롱하는 일이 친구를 총살해버린 일과 뭐가 다를까.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무조건 꼴통이고 '알바'라 들어줄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내치는 일이 그 시절의 인민재판과는 또 뭐가 다를까.
문득 들었던 생각은 그 맹목적 적대를 심어줬던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시대의 모습이다. 인간성이 말살될 만큼 서로를 적대하게 만들었던 이들을 떠올려보니 그들은 정작 그렇게 적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그 적개심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이용해 권좌에 올랐고 그 자리를 지켜냈다.(어느 한쪽을 굳이 지칭하는 게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아직 그 알 수 없는 적대심이 남아있다면 그 적대의 에너지가 보위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여전히, 어쩌면.
# “옳고 그른 것은 없는 것 같어”
<할매꽃>의 이야기는 가슴 아픈 한국 근현대사지만 사실 영화 자체는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놀랍게도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 밝은 영화다.(특히 상대 마을, 하대 마을로 나뉜 채 아직도 할아버지들이 비릿한 앙금으로 서로를 비판하며 사용하는 언어의 신랄함이 압권.) 그 웃음의 근간엔 감독의 어머니가 있는데 가장 인상깊은 장면도 영화 말미에서 감독과 그의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다.
감독은 어머니에게 외삼촌을 총살한 경찰의 딸을 만날 것을 종용한다.(가해자 집안은 자신의 아버지가 친구를 총살했고 그 친구의 딸이 자신의 소꿉친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평생을 두고 쌓아온 앙금을 해소할 수 있겠냐는 물음, 그보다는 모르고 살아 이미 가라앉은 앙금을 다시 들춰내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겠냐는 물음, 그리고 그 고통의 끝에 화해와 용서를 둘 수 있겠냐는 물음. 감독은 이 잔인한 물음을 던져놓고 정작 친구를 만나러 가는 어머니의 뒤를 따르지는 못한다.
카메라는 친구의 집을 향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 집 안에서 어머니와 친구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감독의 어머니가 말하길, “너는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려고 하지만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다봉게, 세상에 옳고 그른 것은 없는 것 같어. 사람에게는 모순이라는 것이 있잖여”.
상처를 들춰내고 서로 부둥켜 울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은 사실 클리셰에 불과하다. 용서와 화해란 쉽지 않고 이미 가진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려는 강박. 앞에서 맹목적 적대를 이야기 했지만 이는 사실 옳고 그름을 단정하려는 강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과 제가 멋대로 정한 그름을 제거하려는 아집.
감독의 어머니가 친구를 만나 용서와 화해를 이야기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할매꽃>이 안일하게 어느 하나를 결론짓지 않아 좋다. 사람에겐 모순이라는 것이 있으니.
# 용서를 쉽게 말하지 말아요
그래서 난 요즘 가장 첨예한 세월호나 여야, 종북, 수꼴, 남녀, 빈부 같은 말이 주로 대변하는 이 사회의 맹목적 적대가 가슴 아프지만 쉽게 봉합과 화해, 용서 같은 걸 말하진 못하겠다. 여전히 우리는 전쟁 중이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입고 있다.
상처를 입지 않을 순 없고 갈등과 다툼이 없을 수는 없다. 그 다름 때문에 사람이 죽기도 하고 평생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기도 한다. 사람에겐 모순이라는 게 있으니 그렇다. 그러니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옳고 그른 게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품고 사는 것 뿐이겠다.
용서와 화해를 강변하고 봉합이니 통합이니 하는 말이 나오기에 앞서 그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섣불리 말을 보태는 것보다 그저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