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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건강 바라던 마음이 우리 농업에 대한 관심으로

[일기 쓰는 아내 훔쳐보는 남편]

내 아이 건강 바라던 마음이 우리 농업에 대한 관심으로


글 최규화/ realdemo@hanmail.net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아내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으로 일하다 2013년 첫째 아이를 임신한 뒤부터 전업주부 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엄마들의 수다나 인터넷 '엄마 카페'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아내. 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만큼 아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세상일'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요, 아이 키우는 일에 매여 지내느라 그 많은 '할 말'들을 풀어놓을 기회가 없습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거리로 나온 '앵그리맘'들의 마음 또한 그랬을 겁니다. 아내의 일기를 통해 그런 '생활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등 여러 문제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려 합니다.  

#1. <아내의 일기>

 오늘 호진이 친구들을 만났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들이 배 속에 담고 만나다가 이 세상에 나와서도 계속 만나는걸 보니 이 아이들 인연인가 보다. 오늘은 온유네 집에서 보기로 했다. 온유가 콧물감기가 심해서 일단 온유네 집으로 갔다. 날씨도 좋고 황사나 미세먼지도 없는 날이라 더욱 기분이 상쾌했다. 전철에서 내려서 호진이를 안고 걸어가다가 오르막길에선 아기띠에서 내려 함께 걸었다. 호진이랑 함께 걸을 수 있다니 꿈만 같다.  

 누워서 젖만 먹고 내가 엄마인지 아빠인지도 모르던 아기가 이젠 “엄마, 아빠”를 말하고, 젖만 먹던 아기가 쌀죽을 먹고 이유식을 먹다가 이젠 밥을 먹으며 “맘마”를 말한다. 누워서 딸랑이만 흔들다가 이젠 걷는 것도 모자라 달리기까지 하고 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 알고, 어른들이 하는 일을 봐두었다가 따라한다. 호진이가 자라는 건 경이로움 그 자체다.  

이유식은 맛이 없다며 엄마아빠의 밥그릇을 호시탐탐 노리는 호진이.

 

 아무튼 호진이와 함께 걸어서 온유네 도착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둘은 서로 경계와 탐색을 했다. ‘얘들아, 너희들 오늘 처음 만난 거 아니거든?’ 경계와 탐색을 끝낸 아이들은 서로 놀기 시작한다. 같이 책도 넘기고 놀다가 우르르 달려가 텐트도 들여다본다.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징징거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온유 엄마와 나는 걱정을 나눈다. 밥을 잘 안 먹어서 걱정, 아파서 걱정, 돈 걱정 등 아이가 생기기 전까진 몰라도 됐을 걱정들을 한다. 호진이는 돌 전까진 그래도 이유식도 과일도 잘 먹었다. 그런데 돌 즈음해서 식성이 바뀌었나 보다. 과일도 사과보단 배를 좋아하고, 이유식도 잘 먹더니 이젠 죽 형태의 이유식을 안 먹는다. 그래서 또 우리가 먹는 밥을 먹였는데 그것도 너무 된지 안 먹었다. 이유식 책에는 국에 말아 먹이면 안 되고 간도 안 하는 게 좋다지만, 중요한 건 아이가 안 먹는다는 거다.

  밥 먹이려 씨름하는 건 호진이와 나에게 좋지 않은 것 같아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냥 즐겁게 한 끼 먹기로 목표설정. 가끔은 밥 대신 빵도 먹고 국수도 먹는다. 이유식을 떼고 나니 이건 참 좋다. 오늘 점심엔 호진이가 내가 먹는 반찬까지 탐을 냈다. 간이 좀 된 가지무침이었지만 먹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선심 썼다. 면봉만큼 잘라줬더니 성에 안 차는지 한 주먹 쥔다.

  밥 한 그릇 뚝딱 먹게 하는 것도 잘 먹이는 것이지만, 또 다른 의미의 ‘잘 먹는다’에 대해 고민이 많다. 농약, 중금속, 환경호르몬, GMO, 수입농산물 등 우리 딸이 ‘잘 먹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 때문이다. 남편 덕에 생협에 가입했는데 생협에 가도 늘 같은 것만 사오고, 그나마도 집에서 좀 멀어서 무거운 건 사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언니네 꾸러미’를 받기 시작했다. 

  텃밭에서 재배된 작물들을 유정란, 두부, 반찬과 함께 2주에 한 번 배달해주는 것이다. 호진이는 언니네 텃밭에서 온 박스를 뜯을 때마다 항상 옆에서 거든다. 채소들을 꺼내기도 하고 두부를 콕콕 찔러보기도 한다. 물론 단단하게 포장돼 있어서 많이 찔러도 두부에 흠집 나지 않는다.  

  호진이는 오늘 아침엔 밥이 없어서 흑미빵에 과일, 요거트를 먹었고 점심엔 시금치나물 반찬에 시금치와 양파를 넣은 된장국과 함께 밥을 먹었다. 간식으론 온유네서 찐 고구마와 사과를 먹었다. 그 덕인지 호진이는 오늘 ‘방귀대장 뿡뿡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한숨 자고 있는 저 녀석이 일어나면 저녁을 차려줘야지. 에고, 근데 뭘 또 차려야 하나. 밥 차리는 건 가사노동자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끝나지 않을 숙제이기도 하다. 

 다행히 내일은 언니네 텃밭에서 식재료들이 온다. 내일은 또 어떤 채소와 어떤 반찬이 오려나. 봄이니까 봄나물도 하나 보내주시겠지? 이렇게 꾸러미를 몇 번 받다보니 말만 ‘언니네’가 아니라 정말 2주마다 날 챙겨주는 친정언니 같다.   


4월 셋째 주에 온 제철 꾸러미. 호진이가 먼저 찔러본다. 

#2. <남편의 반성문>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현관문을 열면 거실에서 호진이가 현관 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밉니다. 제 얼굴을 보고는 “아빠”(사실은 아직 “빠빠”에 가깝습니다) 하고 거푸 소리를 지르면서 동동동동 달려옵니다. 이제 세상에 태어난 지 13개월 된 제 딸 호진이. 호진이가 웃고 놀고 먹고 자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고맙지만, 그중에 제일 고마운 것은 아직 병치레를 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아내는 같은 조산원에서 출산을 준비하며 만난 친구들과 지금도 가까이 지내며 자주 만납니다(아내는 병원이 아닌 조산원에서 의료개입 없이 자연주의 출산을 했습니다). 그중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가 아파서 걱정을 늘어놓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아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아토피! 아직 말도 못하는 그 어린 것들이 가려워서 울고, 피가 나도록 긁다가 아파서 또 울고, 엄마들도 안쓰러워서 같이 운다고 합니다.

  아토피는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을 다닌다고 다 나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겨울의 끝자락, 호진이가 돌을 앞두고 이유식도 먹고 우리 밥상의 밥도 조금씩 먹기 시작할 때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먹는 음식이 호진이의 입으로 직접 들어가게 됐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생각난 것이 ‘언니네 텃밭 제철 꾸러미’였습니다.

  꾸러미 공동체 여성농민들이 생산한 건강한 제철 먹을거리를 ‘알아서’ 보내주는 꾸러미. 집에 가만히 앉아서 매주 또는 2주에 한 번 택배로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에서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소통과 협력을 통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생산소비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2009년 시작한 사업입니다.

  소비자가 꾸러미를 신청하면 전국에 있는 17개 꾸러미 공동체 중 한 곳에 배정(?)을 받습니다. 소비자는 그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그것을 가지고 만든 반찬이나 떡 같은 간단한 음식을 받을 수 있고, 직접 그곳으로 체험활동을 하러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집에 꾸러미를 보내주는 곳은 전남 무안에 있는 공동체입니다. 언니네 텃밭 누리집에 들어가 보니 정말 그 ‘언니’들의 얼굴이 다 나와 있습니다.

  2주에 한 번 꾸러미가 올 때마다 아내는 ‘이번에는 어떤 반찬이 들어 있을까’ 기대하며 뜯어보고, 호진이는 뭔진 몰라도 엄마보다 자기가 먼저 만져보겠다고 덩달아 신이 납니다. 하지만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편지’. 매번 꾸러미가 올 때마다 그곳 공동체의 소식과 꾸러미에 담긴 농산물을 생산한 언니들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가 함께 오거든요. 농산물에 대해 잘 모르는 저는, 솔직히 제 눈에는 다 그게 그거 같은 나물(?)들을 구경하는 것보다 그 편지를 읽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해독작용이 뛰어난 돈나물을 뜯어온 선숙 언니는 팔순노모 모셔다가 밤늦도록 일하고, 새벽부터 꾸러미 작업 전까지 다듬어 오셨답니다. 묽은 초장에 초무침, 샐러드, 물김치, 우유에 갈아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드세요.” - 4월 세째 주 꾸러미 편지 가운데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 호진이에 대한 걱정으로 꾸러미를 받아먹기 시작했는데, 그 안에는 그냥 농산물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생산과 나의 소비가 그들이 만든 먹을거리만큼 ‘건강하게’ 만나고 있다는 것. 자본주의 세상에서 흔하게 쓰고 마는 ‘돈’을 통해서 멀리 무안의 농민 언니들과 여기 부천의 우리 세 식구가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 그런 연대감이 꾸러미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들리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니, FTA니 하는 소식들을 들으며 느낀 무력감이 떠오릅니다. ‘이대로 우리 농업은 망하겠구나’, ‘이제 우리 땅에서 난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고 살지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때마다 거리로 나와 ‘아스팔트 농사’를 열심히 지으며 우리 농업 지키는 일에 늘 앞장서온 이들이 바로 전여농의 ‘언니’들입니다. 오늘도 우리 땅을 지키고 우리 농업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건강한 사람들을 알게 되고 이렇게 하나로 이어지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호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겠다는 우리 부부의 작고 이기적인(?) 마음이, 우리 농업을 지키겠다는 여성농민들의 소중하고 큰 꿈과 이렇게 만났습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의 뜻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 꾸러미사업이란?

 

마을 단위 또는 시·군 단위에서 꾸러미사업에 참여하는 농가가 생산한 제철농산물을 박스에 담아 정기적으로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형태의 농산물 직거래를 말합니다. 꾸러미 사업체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개 꾸러미에 7~10여 품목(주로 채소, 과일 등의 신선 농산물)으로 구성되고. 소비자의 선호에 따라 매주 또는 격주 단위로 꾸러미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 꾸러미사업 운영주체

 

- 생산자조직 주도형: 언니네텃밭(전여농), 게으른 농부, 지리산구례공동체 등
- 생산자·소비자 공동 주도: 공생공소, 콩세알나눔마을, 한살림, 충주제천 등
- 지자체 주도형: 완주 건강한 밥상
- 농협주도형: 오창농협, 제주지역본부 등 

※  이외에도 현재 60개소 이상에서 꾸러미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포털사이트에서 원하는 꾸러미 사이트를 검색해 둘러본 뒤 직거래 매장을 선택해서 이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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