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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같은 그 아이, 왜 모르고 살았을까

 [일기 쓰는 아내 훔쳐보는 남편]

해바라기 같은 그 아이, 왜 모르고 살았을까


글 최규화/ realdemo@hanmail.net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아내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으로 일하다 첫째 아이를 임신한 뒤로 전업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관심만큼 아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요, 아이 키우는 일에 매여, 그 많은 '할 말'들을 풀어놓을 기회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거리로 나온 '앵그리맘'들의 마음 또한 그랬을 겁니다. 아내의 일기를 통해 그런 엄마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려 합니다.  

#1. <아내의 일기>



  오늘은 아침부터 치과에 다녀왔다. 몇 년 동안 괜찮던 사랑니 쪽이 부어서 어제 잠을 잘 못 잤다. 안고 가기엔 좀 먼 길이라 유모차를 끌고 갔는데 치과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2층. 호진이를 들쳐 안고 한 손엔 가방도 들고 유모차는 접어 메고 2층으로 올라갔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인데 땀이 줄줄 흘렀다. 

  한참 기다리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호진이를 간호사 선생님에게 맡길까 하다가 더 크게 난리가 날 것 같아 배 위에 앉혀놓고 진료를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이 다가오자마자 호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난 아픈 와중에도 호진이를 토닥거렸다. 처치가 끝나고 내가 바로 앉자마자 호진이는 울음을 딱 멈췄다.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아픈 건 난데 왜 니가 그렇게 운 거냐. 

  저녁엔 옥상 텃밭에 올라갔다. 나는 잡초를 뽑고 호진이는 덜 익은 방울토마토 따기에 여념이 없는데, 누군가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5층에 사는 여자아이가 그동안 몇 번 봤다고 먼저 인사를 해준다. 호진이의 눈에서 번쩍 빛이 난다. 그 길로 ‘언니네 밭’으로 간다. ‘도도도도도’ 발걸음도 가볍다. 그런데 그 언니는 “저는 동생이 무서워요”라면서 호진이를 피한다. 호진이가 말을 못 알아들어 다행이지, 알아들었으면 섭섭할 뻔했다. 그 아이는 동생이 없는 것 같던데, 어쩌다가 동생이 무서워졌을까. 

  그 아이의 아버지가 방울토마토를 따는 동안 그 아이는 이 집 저 집 밭을 둘러보고, 호진이와 나는 그 아이를 쫓아다녔다. 나는 호진이를 예뻐해달란 의미로 우리 집 밭에 핀 해바라기 꽃을 꺾어 줬다. 꽃이 마음에 들었는지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해바라기 꽃이 샤워기 같다며 재잘재잘 신이 났다. 집에 가는 길에는 방울토마토를 양손 가득 퍼준다. 하나 따서 호진이 입에도 쏙 넣어준다.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이 활짝 핀 해바라기 같았다.  

  해바라기 같은 아이는 같은 빌라에 사는데도 얼굴 보기 힘들다. 같은 빌라에 살면서 얼굴 익힌 집은 열여섯 집 중에 반도 채 안 된다.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언니도 낮에는 일하느라 얼굴 보기 힘들다.

  예전 나 어렸을 때엔 아파트 한 동 사람들이 다 친하게 지냈다. 잔치할 때면 서로 도와 잔치음식 하고, 김장 때에도 함께 모여 김장하고 그랬다.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얘기 같지만, 친구네서 밥 먹고 라면도 끓여먹고, 어른들끼리 술 한잔씩 하고 같이 여행도 갔다. 언니, 오빠, 동생 함께 모여 담 넘으며 놀고 송충이 잡고 화단에 앉아서 시덥잖은 걸 하면서도 즐거워했었다. 그리고 그때 같이 놀던 코찔찔이 친구는 지금도 연락하며 만나기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라면 오늘 같은 날 호진이를 잠깐 다른 집에 맡기고 얼른 치과에 다녀와도 됐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이웃과 애 맡길 만큼 친해지기도 어렵거니와 낮에 집에 있는 사람도 드물다. 어쩌다가 집을 비우면 우리 빌라 안에는 택배를 대신 받아줄 사람도 없다. 게다가 하도 세상이 흉흉해서 맘 놓고 남에게 아이를 맡기기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어쩌면 육아가 더 힘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곳에서 서로 의지하고 살 만한 이웃이나 가족 없이, 육아가 오롯이 혼자 해내야 하는 과제가 돼버려서 말이다. 

  호진이 친구 엄마들 채팅창에 ‘오늘 치과 다녀와서 힘들다’고 했다. 그랬더니 5분 거리에 사는 친구가 연락이 왔다. 왜 자기네 집에 맡기지 않았냐며 다음에 또 그런 일 있으면 꼭 맡기라고 한다. 고민이다. 호진이보다 4개월 어린 아기가 있는 집에 호진이를 맡겨도 되려나.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니 참 고맙다. 이번 주 중에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했다. 함께 해바라기 꽃을 보러 옥상에 가자고. 방울토마토도 좀 따서 주고, 날이 더우니 대야 큰 걸 갖고 올라가서 물놀이도 해봐야겠다.

 

#2. <남편의 반성문>

  아내에게 해바라기를 닮은 예쁜 어린이 친구가 생겼나 봅니다. 호진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이 빌라에 이사 왔으니, 이 집에 산 지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아내는 이 빌라 열여섯 집 중 얼굴 익힌 집이 반도 안 된다고 하는데, 저는 아마 반의반도 안 될 겁니다. 안다고 해도 대충 우리 빌라 사람인가보다 하고 아는 정도지, 몇 호에 사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은 솔직히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닐 겁니다. 2013년에 저처럼 공동주택에 사는 직장인 600명을 대상으로 '위층과 아래층, 같은 층 이웃의 얼굴을 알고 있나'라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대답을 한 사람이 36.5%였다고 합니다. 20대는 절반에 가까운 49.6%가 이웃의 얼굴을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네요. 아파트나 빌라에서는 벽 하나 천장 하나 사이에 두고 이웃들이 살아갑니다. 예전보다 더 다닥다닥 붙어 살면서도, 정서적인 거리는 예전보다 훨씬 멀어진 겁니다.  

  이웃과의 정(情) 대신 갈등을 확인하게 될 때가 더 많습니다. 저 역시 주차장에서 제 차 앞을 가로막은 차를 빼달라고 전화할 때에나 이웃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요. 주차문제뿐만 아니라 층간소음, 담배연기, 애완동물, 관리비 등 이웃들과 갈등을 겪는 이유도 참 다양합니다. 이웃 간의 갈등 때문에 사람을 해치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듣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돼버렸습니다.

  제가 사는 부천에서도 지난겨울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적 있습니다. 40대 남성이 평소에 주차문제로 다툼을 벌인 이웃집 자매를 살해한 것입니다. 5월 26일 발표된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이웃 상대 범죄자 수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특히 아이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내 이웃에도 어떤 무서운 사람이 살지 몰라’ 하고 경계심만 높이게 됩니다.

  어쩌다 우리가 사는 마을이 이렇게 변했을까요? 도시에 마을공동체를 다시 만들기 위해서 지방자치단체나 시민사회단체들도 참 노력을 많이 하죠. 하지만 마을축제 행사 몇 번 열고, 마을 경로당 벽에 벽화만 그린다고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든 공동체는 공동의 목적이 있어야 성립됩니다. 과거의 농촌을 생각해보면, 특정 시기에 집중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사일에서 ‘이웃의 일손을 빌려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곧 ‘농사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웃과의 관계, 공동체의 유지가 모두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공동의 목적이 아주 뚜렷한 공동체죠. 그리고 ‘땅’을 중심으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마을의 질서를 어지럽혀서 마을에서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그건 곧 생존수단에서 멀어진다는 대단한 위기를 의미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만들어진 전통들이 우리의 ‘이웃사촌’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일을 하고, 이웃과의 관계가 내 생존과는 무관해진 지금의 도시 사람들은 공동의 목적이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 삐딱하게 말하자면, 우리 아파트 집값을 올리는 것 말고는 공동의 목적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마을에 지하철역을 유치하거나, 장애인학교가 못 들어서게 막는 일에만 도시 사람들의 공동체는 힘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도시 사람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하죠. 한국의 연간노동시간이 OECD 국가 가운데 최고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생활은 집이 아니라 직장을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집에서는 잠만 자기 바쁘고, 눈을 뜨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생활과 출퇴근길에 써버립니다. 해 뜨자마자 나가서 깜깜한 밤이 돼서야 들어오니, 이웃들 마주칠 일도 없습니다. 직장을 중심으로 생활이 이뤄지는 만큼 직장 선후배나 동료들과의 관계는 점점 더 중요해지지만, 이웃과의 관계는 별로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또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집을 사서 한 지역에 정착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이야기가 됐습니다. ‘평생직장’이란 말이 사라진 시대에, 일터에 따라 집을 옮기는 일도 흔해졌습니다. 그리고 월급보다 집값이 더 빨리 오르기 때문에, 지금 사는 집에서 언제 쫓겨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주거 불안정성이 너무 높고 언제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게 될지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웃이나 마을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 힘듭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요즘 도시 사람들, 이웃쯤이야 ‘안 봐도 그만’입니다. 괜히 어설프게 알고 지내다가 험한 꼴이나 당하지 않을까, 차라리 마음의 문을 닫고 살죠. ‘요즘 사람들은 너무 각박해졌어’ 하고 사람들의 마음만 탓할 문제는 아닙니다. 서울에서 일은 하지만 일터 근처의 집은 구할 수 없는 현실, 내년에는 이 집 전세금을 얼마나 올려줘야 할지 알 수 없는 현실. 집에서 생활은 못하고 수면만 하는 현실. 사람들이 내 이웃과 내 마을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이런 현실들이 함께 고민돼야 하지 않을까요?

  아내가 ‘해바라기 소녀’라도 알게 돼서 다행입니다. 또 ‘5분 거리’에 사는 친구에게 놀러오라고 했다는데, 주말에 삼겹살이라도 같이 구워먹을까 싶네요. 이웃이 사라진 세상은 곧, 그만큼 이웃이 필요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한두 사람의 마음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마음이라도 이웃과 나누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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