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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커피 냄새로 가득한 법률 사무소, 동네 변호사 카페

 

박한나

일을 하고, 장을 보고, 밥을 먹고, 뛰어놀고, 공부하고, 잠이 드는 것까지 우리의 일상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각각의 공간들은 집이나 직장, 서점, 식당, 놀이터 등의 이름이 붙여지고, 같은 이름이 붙여진 공간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여기, 조금 색다른 공간들이 있다. 보기에는 똑같은 건물이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공간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지금껏 보아온 공간과는 다르다. 변주된 공간들을 둘러보고, 그 공간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 보자!  

법은 민주 사회의 근간이다. 우리 삶을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은 법이 정한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제한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법이 가진 이미지는 쳐다보면 목이 아플 정도로 높은 담벼락과 비슷하다. 법률을 다루는 직업인들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직접 의뢰인과 만나는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이는 ‘사’자 직업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더불어, 변호사와의 만남은 곧 소송과 재판, 사건과 문제라는 부정적 연상 때문이다. 

 

‘동네 변호사 카페’는 이런 고정관념에 슬며시 반기를 든다. 변호사 사무실이 즐비한 서초동이 아닌 경기도 의정부에, 카페와 동거하는 법률 사무소. 말만으로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지만 생각해보면 부자연스러운 구석도 없다. 이미연 변호사와 카페 운영자 이세나 씨 자매의 시작도 그러했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지긋지긋하게 가고 싶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할 때는 오고 싶은 공간이었으면, 카페같이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언니 이미연 변호사의 생각에, 손재주가 좋은 동생 이세나 씨가 자연스럽게 동의한 것이다. 

 

문턱이 낮아 부담이 없는, 동네 변호사
반세기를 지나도록 상인과 손님의 흥정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의정부 제일시장. 이 오래된 재래시장 길목의 낡고 작은 건물. 이보다 더 서민적인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변호사 사무실은 변호사 사무실인지라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알 수 없는 긴장이 인다. 하지만 2층 카페 문을 열면 이내 코끝으로 전해오는 은은한 커피 향과 달달하고 고소한 빵 냄새가 괜한 걱정을 앗아간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래서 더 빠르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온다.

 

마음의 문턱만 낮춘 것이 아니다. 예약만 하면 불필요한 절차 없이 이 변호사와 바로 상담이 가능하다. 다른 법률 사무소에 비하면 문턱이 낮다 못해 거의 없는 느낌이다. 대신 상담은 유료로 진행된다. “예전에는 상담이라는 것 자체에 법률적인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상담은 수임으로 가기 위한 단계였죠. 결국 사무장이 수임을 종용하는 식으로 끝나고요. 하지만 요즘에는 상담 자체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법은 너무 어렵다. 법령이야 검색하면 법제처 사이트를 통해 모든 내용을 읽어 볼 수 있지만 검은 건 글자요, 흰 건 바탕화면으로 보일 뿐이다. 법문을 이해한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서술된 내용을 내 상황을 대입해 해석하는 건 아무나 할 수가 없다. ‘법대로 하자’고 하지만 정작 법대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이 낮아져야 하는 이유다. 

 

유료 상담은 변호사들의 합리적인 법률 상담을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상담으로도 수입이 생기기 때문에 필요 없는 소송을 막고, 소비자에게는 각자의 상황에 맞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를 선임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소송의 경우 본인이 직접 소장을 쓰고 맞게 썼는지 상담하시는 경우도 있고, 소송까지 가지 않더라도 상담 자체로 해결되는 법률 문제들이 있어요.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그런 변호사 사무실이 많아지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지만 나라나 지자체 차원에서 그런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동네 변호사 카페’의 간판. 여느 변호사 사무실 간판보다 부드럽고 친근한 인상을 준다.

 


변호사가 하나부터 열까지, 1인 변호사 사무실
이 변호사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하는 일은 상담만이 아니다. 법원에 가서 사건 기록을 떼는 것부터 서류를 복사하고 상담 일정을 정리하는 것까지, 이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이 변호사가 직접 처리한다. 사무장이 없는 1인 사무실이기 때문이다. 

 

로펌이 성장하면서 대형화되고 기업화되는 풍토에 맞서기 위한 도전을 한 건가 싶지만, 그저 이 변호사 개인의 성향에 따른 선택이었다. “조직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만들고 싶지도 않고요. 가장 작은 형태의 규모를 유지하고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랑 같이 일을 안 해봐서 두려움이 있기도 해요.”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 변호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이런 사람이 어떻게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할까 걱정이 됐다. 기댈 데도, 물어볼 데도 없었을 것 아닌가. “막막했죠. 물어볼 데가 없다는 거, 내가 물어볼 데를 알아봐야 한다는 거,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것도 힘들었고.(웃음)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조직에 들어간 친구들도 우여곡절은 다 겪는 것 같더라고요.” 


‘서민을 위한 동네 밀착형 변호’를 소망하는 이미연 변호사. 스스로를 동네 변호사 ‘동변’이라 칭한다.   

커피 향기와 빵 굽는 냄새의 진원지, 동네 변호사 카페
워낙 우리나라에 친근한 변호사 사무실이 없다 보니 주목의 대상은 늘 변호사 사무실이지만, 동네 변호사 ‘카페’도 꽤나 매력적인 공간이다. 시장 어귀에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인테리어는 홍대 근처로 옮겨 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개성이 뚜렷하다. 

 

 

“목수 아저씨가 해주신 것 말고는 저희가 다 공간을 꾸민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어설플 수도 있는데, 여느 카페처럼 안 해놓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저희만의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카페 운영을 맡고 있는 세나 씨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 변호사가 “동생의 손재주만 믿고 시작했다”고 할 정도로 솜씨가 좋다. 사진을 찍고 블로그를 관리하는 것은 물론 카페 간판이나 각종 안내문 디자인도 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대부분 직접 만들어낸다. 

 

이렇게 이 변호사와 세나 씨의 특기가 다른 것처럼, 카페도 변호사 사무실과 전혀 다른 성격의 공간이지만 통한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억지로 메뉴를 늘리지 않는 대신 음료에 파우더는 쓰지 않고, 인공적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식물성 크림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렇다. 쿠키나 케이크 등은 예약 주문을 받아 바로바로 만든다. 강렬한 맛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담백하고 부드러우며 무엇보다 속이 편하다. “어떤 분이 여기는 카페가 아니라 가정집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기분 좋으라고 하신 말씀은 아니었는데 저는 나쁘지 않더라고요. 믿을 만 하다는 거잖아요.” 


동생 이세나 씨가 전담하는 2층 카페. 조용하게 흐르는 음악과 맛있는 냄새가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변화의 시작은 작은 날갯짓, 나비효과
자매이기 때문일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이미연 변호사와 세나 씨의 해사한 미소에는 강단이 느껴졌다. 누구와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만만함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는 이의 당당함 말이다. 이 변호사는 그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저는 그래도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 것 같진 않아요. 전업으로 공익 소송을 하는 분들은 아주 힘든 일을 하고 계신데도 항상 밝고 미래를 생각하시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고 강하다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상당히 약한 편이라 더 단단하고 강하게 단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이 변호사의 이야기에 수긍은 가지만 그렇다고 이 변호가 걸어온 길도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세상이 주지 않은 보기를 고르는 일은, 당장에 무언가를 이뤄내지 못하면 격려보다는 눈총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변호사는 ‘동네 변호사 카페’가 걸어온 3년에 대한 평가를 유보했다. “아직 평가할 단계가 아니지만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고비는 계속 오는 것 같아요. 직장인들처럼 3년마다 오는 고민도 있고. 1년이 지난 후부터는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이 변호사의 고민이 현재진행형인만큼 ‘동네 변호사 카페’의 행보도 아직 진행형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 걸음이 당장에 큰 파장을 일으키진 않겠지만, 언젠가는 우리 사회와 법률 문화의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나비효과가 되어 나타나길 기대한다.

 

동네 변호사 카페

위치 :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159-18, 2~3층

커피와 차와 케이크는 2층 : 11시부터 22시까지, 월요일은 휴무, dongbyuncafe@gmail.com

법률 상담은 3층 (예약 필수) : 031-821-5047, miyoundc@gmail.com

블로그 : http://dongbyu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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