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장사꾼이 만들어가는 진짜 새마을 <레알뉴타운 청년몰>
* 청년 장사꾼들이 각자의 가게를 나무토막에 그려서 완성한 <청년몰> 안내도.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는 <청년몰>의 슬로건.
장면을 만들다
* 구경하다 앉아 쉴 수 있도록 곳곳에 자리한 <청년몰> 벤치. |
* 청년 장사꾼들의 모임 장소이자 공동 공간인 '청년 회관'. |
전주 남부시장 2층. 시장에서도 외진 곳에 있고, 그곳으로 향하는 계단은 곳곳이 깨져 있어서 누가 이용할까 싶었던 곳. 식당이 있었지만 시장 손님들의 발길은 거의 닿지 않았고, 그곳을 창고로 사용하는 상인들만 하루에 한두번 드나들 뿐이었다. 전국 5대 시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했던 남부시장 안에서도 가장 활기가 없는 곳, 그곳이 바로 남부시장의 2층이었다. 그랬던 곳이 4~5년 만에 시장에서 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생기가 넘치는 곳으로 변했다. <청년몰>이라는 새로운 마을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재래시장 하향세라는 흐름은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남부시장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 ‘이음’은 침체된 남부시장에 주목했다. 시장에 문화적 감수성을 더해 매매 공간을 넘어서는 곳으로 재구성할 계획을 세웠다. 간판을 정비하고, 벽화를 그리고, 공연장과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시장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무거운 공기까지 변하지는 않았다.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자극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청년들이 만드는 문화 공간 <청년몰>이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했던가. 때마침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통 시장 활성화를 위해 진행하던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 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의 지원이 이뤄졌다. 몇 년간 ‘이음’의 활동을 지켜봐 온 남부시장 상인회도 <청년몰>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시장 활성화 동력을 외부에서 끌어오면 안 된다는 내부의 반대도 상인회가 직접 설득했다.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정작 <청년몰>에 관심을 갖는 청년장사꾼이 없었다. 설명회에는 고작 12명이 모였고, <청년몰>을 위한 청년 창업 아카데미가 시작되자 6명으로 줄었다. 그들은 남부시장과 창업에 대해 배우고, 남부시장의 물건을 한옥마을에 서 팔아 가며 현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들조차 시장의 새로운 바람이 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재래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이 아니라 익숙한 풍경이 될 그림을 그렸다.
야시장이 전환점이 됐다. 보름 동안 시장 상점들이 문을 닫은 밤에 야시장을 열었는데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났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시장에서도 놀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존 상인에게는 문화가 시장에 활력을 채우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재래시장 속 새마을, 뉴타운이라는 씨앗의 싹이 돋아난 것이다.
지금까지 <청년몰>과 함께하고 있는 기획자 양소영 씨는 이를 두고 “씬(장면)을 만들고자 했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전통 시장에 청년들이 활보하는 장면이, 새로운 문화가 펼쳐지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이름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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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를 수료한 사람들 중 선발된 두 팀이 가게 문을 열었다. 일단 시작은 했지만 그야말로 맨땅에 하는 헤딩이었다. 남부시장 2층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없었고, 10년 가까이 방치된 공간이라 으스스할 정도였다. 당시 음악 소리에 호기심을 느껴 발걸음을 했던 젊은 연인 손님은 깡패가 있을 것만 같아 올라오기가 망설여졌다고 고백하더란다. 결국 한 팀은 가게를 접었다.
홀로 남은 ‘카페 나비’ 정영아 사장은 “(다른 가게들이) 들어오면 잘 될 거야. 나는 내 할 일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겨울에는 수도꼭지를 밤새 틀어 놓아도 멀리서 수도를 끌어오다 보니 중간에 물이 얼었다. 다른 식당 가서 설거지를 하노라면 서러웠다.
다행히 해가 바뀌자 정 사장의 고군분투는 끝이 났다. 청년 장사꾼 모집 설명회에 60여 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그 안에는 ‘카페 나비’의 손님과 야시장에 참여했던 사람도 있었다. 서류 심사와 면접까지 거친 끝에 열한 가게가 선발됐다. ‘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간을 정비하는 것부터 각 가게의 입점 준비까지 힘을 합쳐 함께 했다. 힘든 일도 서로 도와가며 하다 보니 즐거웠다.
‘카페 나비’를 둘러싸고 열한 가게가 자리를 잡자 드디어 <청년몰>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볶음 요리 식당, 수제 공방, 보드게임 가게 등 겹치는 품목 없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냈다. 청년 장사꾼들은 가만히 앉아 손님을 기다리지 않았다. 각자의 재능을 살려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돌아가면서 홍보 전단지를 나눠 주러 다녔다. 점차 사람들의 발길은 늘어났고, 시장의 공기는 신선해졌다.
자연스레 <청년몰>의 이야기가 언론으로 퍼졌다. KBS ‘다큐멘터리 3일’에 방영되자 남부시장 2층이 순식간에 손님들로 붐볐다. 한옥마을과 가까워서 한옥마을을 들렀다가 <청년몰>에 오는 것이 하나의 코스가 됐다. 물론 <청년몰>의 청년 장사꾼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덕분에 매년 추가 모집 때마다 신청자가 몰려 현재는 빈 공간 없이 모두 32개의 가게가 <청년몰>을 이뤄 장사를 하고 있다.
꿈을 그리다
이제 <청년몰>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여러 곳에서 벤치마킹을 했고, 하고자 한다. 하지만 양소영 씨도, 정영아 사장도 입을 모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지원 사업은 끝난지 오래고, 전주의 관광지로써의 인기도 한풀 꺾였다. 가건물이라 시설의 상태도 썩 좋지 않다. 입점 시기도 제각각이고 업종도 다 다르다 보니 청년 장사꾼이 바라는 <청년몰>의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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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청년몰>은 먼 길을 갈 채비를 하고 있다. 잘 걷고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 매주 반상회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아기자기한 이미지로만 소비되지 않기 위해 각자의 가게를 발전시켜 오래 걸을 수 있는 근육도 키우고 있다. 각자 걷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기 위해 청년 장사꾼 한 사람도 빠짐없이 홍보·기획·환경·디자인·총무 등 5개의 팀 중 하나에 들어가 <청년몰>의 일원으로서 일한다.
개성과 열정이 넘치는 청년들이다 보니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아 애를 먹을 때도 있다. 하지만 라이프 코칭 상담소 ‘달세상’의 최보윤 사장은 “사람들하고 부닥치면서 오는 과정 자체도, 거기에서 오는 에너지도 좋게 다가온다.”고. 결국 <청년몰>의 가장 큰 힘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것, 떨어져 있지 않고 모여 있다는 데에 있다. 개인적 성향이 강해 스물다섯에 취직 대신 <청년몰>을 선택했다는 전통 디자인 문구점 ‘새새미’의 이혜지 사장은 <청년몰>에서 사람에 대한 즐거움을 느꼈단다.
이렇게 <청년몰>은 청년 장사꾼의 웃음과 고충,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있다. 여느 일터, 여느 노동자와 다름없이 청년 장사꾼들에게는 노동의 공간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청년몰>에 가면 동화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은 청년들의 꿈이 더해졌기 때문 아닐까. 언젠가부터 청년에게 사치로 여겨지던 꿈 말이다. 그 꿈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청년 장사꾼들은 오늘도 <청년몰>의 문을 연다.
레알뉴타운 청년몰
위치 전라북도 전주 완산구 풍남문 2길 53 남부시장 2층온라인 simsim1968.blog.me, facebook.com/2Fchungnyunmall
문의 카카오톡 <청년몰>, 화요일~일요일 11시~19시, 입점 문의는 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