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름 `청년`
희망의 이름 `청년`
글 장동석(출판평론가,『기획회의』 편집주간)/ 9744944@hanmail.net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청년은 희망의 이름이어야 하지만 오늘 우리 시대 청년은 절망을 껴안고 산다. 누군가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쌓은 세대”라고 말하지만, 어렵사리 쌓은 스펙을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곤고한 청년의 때를 견디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그들을 위로할 수 없다. 새로운 지향을 찾아 청년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숱한 길 사이에서 책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 청년들도 도전해 봄직하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 _ 장하성
장하성 교수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는 불평등한 한국의 경제구조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책이다. 재산의 불평등보다 소득 불평등이 한국 사회 불평등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소득 불평등은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 때문이며 이는 기업의 ‘원천적 분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마땅히 분노하고, 평등을 요구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아울러 행동해야 하는데, 특히 청년들의 행동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청년세대가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리면 우리에게 다음은 없다. “한 개인의 절망은 개인적인 아픔이지만, 한 세대의 절망은 국가적인 위기”라는 저자의 말은 절절하다.
기성세대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쟁취했을지 몰라도 오늘의 현실을 모르거나 외면한다. 이제는 중심이 되었기에 과거에 묻혀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서 내려올 생각도, 다음 세대인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들의 생각을 깨기 위해서라도 청년 세대는 분노해야 한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함께 분노하고 연대하고 행동할 때 작은 균열이 생긴다.
표백_ 장강명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 장강명의 작품들은 대개 젊은 세대의 암울한 표상을 그려낸다.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표백』은 청년세대의 자살을 주제로 한국 사회의 잔인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기성세대가 짜놓은 틀 안에서, 그만큼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가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일단의 젊은이들이 계획한 연쇄 자살이라는 충격적 소재는 우리 사회의 과거 혹은 미래 모습이 아닐까 하는 기시감이 들 정도다.
한국이 싫어서_ 장강명
출간 직후부터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 여성의 호주 이민기를 그린 작품이다. 안정적인,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는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주인공 계나는 출퇴근 지옥철을 참지 못해 사표를 내고 호주행을 택한다. 가족과 남자친구의 만류와 친구들의 비난 아닌 비난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싫어서’ 그녀는 호주로 날아갔고,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회계학 대학원까지 마친다. 남자친구의 청혼 아닌 청혼을 받은 계나는 안정적 직장과 아파트까지 있는 프러포즈를 뿌리치고 끝내 다시 호주행을 택한다.
두 번째 호주행은 단지 한국이 싫어서만은 아니었다. 자신을 찾기 위한, 스스로의 삶을 찾기 위한 떠남이었다. 얼마나 많은 젊은 세대들이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는지 우리 사회는 알지 못한다. 소설이 사회상의 반영이라면, 오늘 우리 시대를 사는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한국이 싫어서’ 떠나고 싶어 할까. 또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찾고 싶어 할까. 장강명의 소설에는 젊은 세대를 향한 애처로움이 묻어난다.
스팅_ 스팅/오현아 옮김
청춘에 관한 마지막 책은 세계적인 뮤지션 스팅의 자서전 『스팅』이다. 이 자서전은 유명한 시절의 자랑만 읊조리는 여타의 자서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스팅은 이 책에서 자신이 유명해지기 전까지의 이야기, 즉 자신에게 영향을 준 가족과 이웃 이야기, 음악을 향한 스스로의 열정을 키우고 지키기 위해 애쓴 분투기를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전해준다. 유년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부터 밴드 폴리스로 성공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여서 자서전이라기보다는, 부제처럼 ‘뮤지션을 키워낸 성장의 순간들’을 기록한 성장기에 가깝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제는 연륜이 쌓인 음악인이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청년인 스팅은 여러 모로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