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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Interview] 학교 밖에도 사람이 있다.

 


 

탈학교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어서, 폭력과 체벌에 견디지 못해서,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반항하는 불량청소년의 이미지는 그저 미디어에 비친 클리셰(cliché, 고정관념)일 뿐이다. 그러나 그 편견이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규정을 강요하고 있다.

편견은 또 있다. 청소년은 무능하고 따라서 보호해야 할 수동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미래는 어른들이 정해준다. 그 안에서 청소년들의 개성과 다양성은 묵살되기 십상이다.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일이야.”라는 말 앞에서 청소년은 어른에게 종속된 존재로 전락한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사회는 경쟁과 적자생존을 강요한다. 그리고 학교는 그 적자생존에 적절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교실엔 상호존중과 배려, 공동체, 함께 삶을 사는 방법 대신에 서로를 이기는 법과 대학 배치표의 언어만 존재한다.

어느 날부턴가 학교는 그렇게 변했다. 그 학교가 키운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쩌면 교실에서 그 사회에서 버텨낼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학교 밖의 세상을 선택한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학교 밖의 청소년들이 설 공간이 세상엔 아직 충분치 않다. 그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들의 존재는 마치 누가 일부러 지워놓은 것처럼 사라지곤 한다. 정해놓은 길 밖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건 세상의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이다. 그 틈에 희생되는 건 그들이다. 학교 안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학교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남이 규정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다.”고, “빠르지 않아도 틀리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학교 밖에도 사람이 있다. 학교 밖의 세상에 눈을 돌리는 일, 그들이 학교 밖으로 나간 많은 이유들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사실 거창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일. 그리고 학교 밖의 세상도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교육의 목표란 진학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운 건 오히려 학교 밖

“청소년일 땐 ‘애들은 가라’고 하다가 스무 살이 되면 갑자기 투표도 안 하는 나쁜 놈 취급하는 건 말이 안 돼요. 학교의 궁극적 목적은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인데 지금의 제도권 교육은 그런 역할을 못 하고 있어요.” ‘검은빛’은 활동명이다. 그가 학교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면서 쓰던 이름이다. “조금 허세가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바꾸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그. 검은빛이란 이름이 남들과 조금은 달랐던 그의 청소년 시절을 규명하는 이름이 됐다. 그는 그 이름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했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요구했다.

★ ‘학생이 아닌 청소년’이 이질적인 우리 사회
“고등학교 시절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전학도 하고 자퇴도 했지만 그 한 달의 시간이 너무 힘들었어요. 학교 못 다니겠다고 가출도 하고, 지금에 와선 부끄럽지만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으니까요.”

검은빛은 성적이 좋은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모범생이란 타이틀이 곧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학교를 떠났다고 그의 생활이 그저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탈락’했다는 주변의 시선도 괴로웠지만 그런 것보다 당장의 문제는 척박해진 환경이었다. ‘학생이 아닌 청소년’은 우리 사회에서 이질적인 존재다. ‘아수나로’나 ‘학생인권조례운동본부’ 같은 청소년 인권운동 단체는 학교 밖 청소년인 그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할 수 있게 도와준 곳이다.

“단체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이나 활동가들과 많이 부딪히고 그러면서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걸 배웠어요. 협력해서 목표를 이루고 함께 삶을 가꾸는 법을 알게 됐죠. 만약 학교에서 남들과 경쟁하는 교육만을 받았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들이었어요.”


 

★ 학교의 목적은 시민을 키워내는 것
검은빛은 학교의 목적이 정치적 시민을 양성해내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가 청소년의 참정권 확대운동에 힘을 쏟고 지금도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그가 생각하는 교육의 본령과 맞닿아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정치적 역량을 갖추는 것.

“우리나라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주는 외국 사례가 많아요. 정당 가입도 어릴 때부터 하고 부모님들과 밥상머리에서 정치 얘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요. 정치가 일상이 되는 거죠. 독일의 최연소 국회의원은 18살이었어요. 청소년 때부터, 또는 더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사회의 주체, 정치적 주체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정치를 더 역동적으로 만들 거예요. 청소년일 땐 ‘애들은 가라’고 하다가 스무 살이 되면 갑자기 투표도 안 하는 나쁜 놈 취급하는 건 말이 안 돼요.”

비단 학교뿐 아니라 이 사회가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가 느끼는 문제를 완전히 뜯어고칠 힘은 없지만 학교 밖에서 기존 제도에 균열을 내는 질문을 계속할 것”이라는 그는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학교 안 공간에서 ‘이렇게 살만 한지’ 자신에게 또 사회에 계속 질문을 던져 주시라”고 주문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삶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아요

“고등학교 때 적금을 열심히 부었는데, 정작 돈을 찾으려고 했더니 부모님이 오셔야 한다더라고요. 연소자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사회 곳곳에 있어요. 청소년들은 무능력하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인식이요. 청소년들은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거나 도전하는 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청소년 성장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탈학교의 클리셰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이나 ‘가정 문제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일탈’ 같은 것으로 좁혀지지만 사실 탈학교의 원인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경우도 많고 체벌과 징계로 학교에서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정작 공부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서 학교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생 정윤서는 요리를 배우고 싶었고 바리스타가 되고 싶었다. 파티시에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는 그녀의 꿈을 인정하지 않았다. 학교가 정해놓은 길, 국영수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가는 일만을 오직 ‘꿈’이라고 강요했다.

★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학교에선 할 수 없었어요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그런데 학교에 너무 오랜 시간 묶여있어야 했어요. 인문계 고등학교다 보니 정말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었죠.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꿈들, 다양성과 자율성을 학교는 이해하고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청소년이 스스로 학교를 만들고 운영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라는 꿈을 실현하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교우관계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고 흔히 이야기하는 불행한 가정의 불량청소년도 아니었던 정윤서 씨. 정말로 하고 싶은 일, 그를 위한 공부가 학교에서는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느낀 그는 학교를 그만뒀다. 학교를 나온 그녀는 대안학교인 ‘희망의 우리학교’를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결국에는 각자의 선택인 것 같아요. 상투적인 말일 수 있겠지만 힘들다고 해서 닦여진 길만 따라 걸으면 결국엔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요.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나지 않은 길에 도전해볼 수 있겠죠. 그렇다고 제가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이렇게 사는 건 아니지만요.”

고등학교를 나와 오랫동안 그가 매진했던 희망의 우리학교는 올해 초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신선한 실험이었지만 현실의 제약이 너무 많았다.

★ 사회는 청소년을 무능력한 존재로만 인식한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분히 제한적이에요. 청소년들끼리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건 지금으로선 사실상 불가능해요. 청소년들이 능력이 없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제도적 한계가 있어요.”

정윤서 씨가 학교를 그만두면서, 희망의 우리학교를 함께 만들면서 바랐던 건 오히려 간단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배우고 싶은 일을 배우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존중받는 것. 어쩌면 이 경쟁의 사회에서 어른들의 강요를 따르는 게 그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는 지금 고졸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고 있으며 생계의 어려움도 겪고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을 살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삶을 저당 잡히지 않고 산다. 또 새로운 꿈을 만들고 또 새로운 오늘을 살고 있다.


 

대학거부, 학벌주의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사표현

“학벌주의는 ‘능력 혹은 개인의 노력에 따른 차별은 문제없다’고 하는 사회의 시스템을 완성해요. 부모의 소득에 따라 학벌이 정해지고, 학벌이 좋지 않은 사람은 능력도 좋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그 책임을 오로지 개인이 지고 가게끔 하는 불평등의 구조가 구성되는 게 가장 큰 문제죠.”

해마다 겨울이 되면 고3 교실 뒤편엔 커다란 종이가 붙는다. 전국의 대학들을 일렬로 줄 세워 놓은 ‘배치표’다. 학생들은 그 배치표에 따라 자기의 남은 삶을 줄 세운다. 그러니까 그 배치표는 학교의 줄서기가 아니라 사람의 줄서기다. 열아홉의 겨울에 정해진 줄은 남은 삶 동안 좀처럼 뒤바뀌지 않는다. 학벌 중심의 사회다. 1등급 대학을 나온 1등급 인재와 3등급 대학을 나온 3류 잉여.

★ 서열화된 대학, 학벌주의를 거부하다
김서린 씨는 지난 2011년, 대학을 거부했다. 여느 고3들과 마찬가지로 어렵게 입학한 대학이었다. 함께 공부하고 책 읽고 운동하는 대학이 마냥 싫은 것만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 줄로 세워지는 삶, 그리고 학벌에 대한 반대를 위해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대학을 거부하는 일이었다.

“낙오자를 양산하고 차별을 옹호하는 시스템, 사회안전망이 전무한 현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반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게 대학거부의 형태가 될 것이라고는 상황이 코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저도 미처 알지 못했죠. 어쨌든 저에게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는 정치적 의사를 집단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고, 그것을 대학거부 선언을 통해 실현할 수 있었어요.”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 분명히 어딘가 뒤틀린 우리 사회 교육의 기저에는 서열화된 대학이 있다. 더구나 그 학벌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 세대의 소득에 따라 정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

“만약 소득 수준이 낮은 집에 태어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는 큰 이변이 없는 한 학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겠죠. 자연히 ‘노력’에 대한 동기는 약해질 수밖에 없죠.”

★ 이미 대학은 학문의 장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대학의 모습이 뒤틀어졌다고 대학 그 자체를 거부할 수 있을까. 대학은 분명 인류 지식의 진보를 위한 전당이었다. 연구와 지식의 전승이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우리 사회에선 사회변혁 이론을 만들고 담론을 선도하는 곳이기도 했다.

“대학은 자본주의 사회 속 차별과 불평등의 기제인 ‘성취도 모델’을 가장 선명하고 그럴듯하게 실현해 보이는 한편, ‘전문가 중심주의’를 굳건히 떠받치는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되어 버렸어요. 착취를 위한 논리를 확대하고 재생산하죠.”

김서린 씨는 대학거부 이후 학벌주의 철폐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대학거부 선언, 대학입시 거부 선언을 하면서 시작된 모임인 ‘투명가방끈’이다.

“투명가방끈은 오늘날의 대학과 입시로 상징되는 경쟁교육, 무한경쟁사회 등 낙오자를 양산하는 기성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예요. 투명가방끈이란 이름은 ‘가방끈’의 길이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사회에 문제제기하는 의미이며, 우리 자신이 대안적이고 다른 배움과 삶을 만들겠다는 마음의 표현이죠.”

순기능을 잃어버리고 학벌주의에 물든 대학에 가차 없는 비판을 쏟아낸 그도 “대학졸업장이 없는 삶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씨가 더 불안한 것은 대학 졸업장을 위해 스스로 원치 않는 삶을 살게 되는 일이다. 대학이 교육의 수단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이 된 상황에서 어쩌면 대학을 거부하는 일은 대학과 교육의 꼬인 관계를 전복할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탈학교는 대부분 사실상 비자발적

우리가 바라고 상상하는 학교의 모습이 있다. 그건 공동체의 역할을 수행하고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며 시행착오조차 이후의 삶에 자산으로 만들어주는 학교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의 학교는 정말 그런 곳일까. 학생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살아가며 어떻게 학교를 떠나게 되는 걸까. 금현옥 선생님에게 오늘날 학교의 현실에 대해 들었다.

★ 스승과 제자가 사라진 학교
“자기가 처한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가 당장 도움이 된다고 느끼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현실적인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굳이 학교에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요. 이런 상황에서 학교를 다니는 건 온갖 획일적인 지시와 통제와 억압을 ‘견디는 일’로만 느껴질 뿐이죠.”

금현옥 선생님은 청소년들이 학교를 벗어나는 것은 “학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내리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홈스쿨링이나 검정고시 같은 또 다른 선택을 이유로 들어 학교를 떠나더라도 학교가 청소년들에게 필요를 인식시켜주지 못했다면 그것은 비자발적 탈학교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학교는 학교를 떠났거나 떠나려는 청소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사회가 팍팍해지니까 학교 안에서도 관용이 사라졌어요. 예전에는 ‘학생은 실수하고 잘못하면서 배우는 것이고, 그게 학생의 특권’이라며 포용하는 여유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교원평가나 성과급, 학교 폭력에 대한 책임 같은 문제가 교사를 교육자라기보다는 직업인으로 기능하게 만들어요. 이제 학교에서 교사는 더 이상 어른도 아니고 스승도 아니게 됐어요.”

이렇게 ‘교육이 실종되는 상황’에 학교는 자정능력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입학식 날부터 교사에게 대들어 전교에 유명해진 학생이 있었다. 급기야 수업시간에 뛰쳐나간 이 학생에 대해 선생님들 사이에서 “어차피 오래 못 갈 애다, 붙잡지 말라”는 얘기들이 오갔다. 결국 입학한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아 그 학생은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금 선생님은 “정원을 채우기 위해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 짐작되는 아이들도 조건없이 입학을 ‘허가’하는 학교가 많아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 학생’이 된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고 교육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했는데, 그런 학교는 현실과 너무 멀리 있어요.”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 그래도 가장 안전한 곳은 학교
학교 현실을 지적하는 현직 교사의 메시지는 이미 학교 밖으로 나간 탈학교 청소년들의 진단보다 현실적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더욱 잔혹했다. 교육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학교. 그럼에도 금현옥 선생님은 여전히 탈학교를 바라는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주길 바랐다. 이 역시 가장 현실적인 판단이다.

“아직은 학교가 최선인 경우가 더 많아요. 단군 이래 가장 뛰어난 스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좋은 일자리를 갖기가 쉽지 않은 요즘의 현실을 돌아보면, 탈학교 아이들이 맞닥뜨릴 앞날이 참 사무치게 가슴 아프거든요. 일단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학교가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가 허용되고,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하고 나도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북돋워주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금 선생님의 간절한 바람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요

“제도권에서의 공부는 정답이 정해진 암기식 교육이잖아요. 저는 저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고 하나의 개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대안이란 기존의 것에 대한 문제제기다. 대안교육과 대안학교는 기존 제도권 학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시도하는 곳이다. 그래서 대안학교는 암기하는 주입식 교육, 경쟁하고 줄 세우는 교육,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기존의 교육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다. 한하림 씨는 중학교부터 대학에 다니는 지금까지 대안교육의 길을 선택해왔다.

★ 뭘 배우고 싶은지 알 수 없었어요

“친구들을 보면 다들 초등학생 때부터 12년 동안 죽어라 공부했고 그 12년이 모두 수능을 위한 삶인 것처럼 보였어요. 전 제가 왜 수능에 얽매여서 대학을 꼭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제가 진짜로 배우고 싶은 걸 찾았을 때 대학을 가기로 했어요.”

미디어에서 흔히 보는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고 싶기도 했고, 사회가 정해놓은 생애주기의 경로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고, 원하는 전공이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그저 남들을 따라 대학에 갈 수는 없었다. 점수에 맞춘 전공 선택으로 몇 년을 허비하다 자기가 원하는 삶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며 후회하는 경우도 숱하게 봤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조금 더뎌도 정말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공부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때 대안대학이라는 존재를 알게 됐다.

“그때 봤던 대안대학 홍보 문구가 ‘안 가자니 불안하고 막상 가면 참다운 배움이 사라진 현대 대학의 한계를 넘어, 혼돈과 불안의 시대를 여럿이 함께 키워나가는 대안대학’이었어요. 나의 마음을 읽어주는 학교가 있구나, 여기에 가면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다, 그리고 뭐라도 공부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지원서를 냈죠.”

한 씨는 일찌감치 제도권 교육과는 다른 길에서 교육을 받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일반 제도권 학교에 다니기도 했고 제천 간디학교에 다니기도 했지만 모두 자퇴했다. 그가 학교라는 이름의 공간에 처음으로 흥미가 생긴 건 여행학교 로드스꼴라에 다니면서부터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어요. 여행을 다녔고 시야가 넓어졌어요. 그때의 경험을 통해 디자인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 제도권 교육도 대안교육도 경험해보길
대안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을 수 있다. 제도권 교육에서 낙오하고 탈락한 사람들이 모이는 학교라는 시선.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 후 기성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없을 거란 편견. 한 씨는 생각이 다르다. “어차피 취업이 힘든 사회이니 더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학교를 통해 삶의 전환점을 찾았다고 말하는 한하림 씨지만 무조건 제도권 교육을 탈피해 대안학교를 선택할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제도권 교육이 맞는 사람이 있고 대안교육이 맞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때, 우선 두 곳 다 다녀보라는 입장이에요. 어렸을 때 한두 살 차이는 엄청 큰 것처럼 느껴지지만 훗날 생각해보면 50살과 51살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게 뭔지 우선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 본 기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민주누리 2016.04'에 실린 글입니다.

   민주누리 보러가기 >> http://www.kdemo.or.kr/book/nuri/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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