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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 다큐 <노라노>

역사란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 다큐 <노라 노>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은행이나 미용실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그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건 패션 잡지다. ‘보그 병신체’는 패션잡지의 글들이 온통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로 이뤄져 있음을 비꼬는 말이지만 사실 어쩔 수 없다. 패션지가 소개하는 대부분의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외국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와 밀라노의 최신 트랜드, 현지 디자이너들의 의도를 전달하면서 그들의 언어를 쓰는 게 뭐가 그리 큰 잘못일까. (물론 쓸데없이 과한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오히려 아쉬운 건 온통 외국에서 온 디자인뿐이라는 점이다. 디자인, 미적기준, 실용성 같은 개념이 실은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면 한국의 디자인이란 한국의 디자이너가 가장 잘 구현할 수 있겠다는 아쉬움이다.


코코샤넬, 비비안 웨스트우드 같은 디자이너들은 비단 패션뿐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 트렌드를 선도했고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다. 디자이너들은 물론 ‘패피’들도 그 전설같은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토양 위에서 옷을 만들고 입지만 그 전설들과 동시대에, 같은 선상에서 옷을 만들었던 한국의 디자이너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않는다. 시작과 역사, 그리고 현재. <노라 노>는 한국 최초의 디자이너 노라 노의 삶과 역사를 조망한다. 하지만 그건 낡아빠진 과거의 영웅담이나 존경하는 디자이너에 대한 단순한 오마쥬는 아니다.   

# 장밋빛 인생


라비앙 로즈(장밋빛 인생)은 한국의 1세대 디자이너 노라 노(본명 노명자)의 전시회 제목이다. 영화는 디자이너 서은영이 노라 노의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노라 노의 삶을 반추한다. 서은영은 한국 보그에 실릴 노라 노 화보를 준비하면서, 관계자들에게 노라 노의 옷이 몇 십 년 전 보그 해외판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수출용 옷에는 태극마크가 박혀있었다고 설명한다. 최초의 ‘한류’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그러나 패션업계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던 현장의 사람들이 대부분 노라 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1928년 경성에서 태어난 그녀는 유복한 유년을 보내며 고등학교까지 다녔지만,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곧 이혼했다.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인 시집생활에 대한 거부였다. 젊은 이혼녀 노명자는 ‘노라’라는 이름을 짓고 디자이너가 됐다.  노라 노가 일을 시작한 1950년대 한국에는 패션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런 시절에 옷을 만들고, 자신이 만든 옷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대중문화의 향방을 좌우하는 삶. 한국에서 처음으로 패션쇼를 열었던 디자이너. 그녀의 인생은 영화처럼 화려했고 그만큼 풍파가 많았다. 가시가 많은 장미 빛깔 같은 인생.  


서은영은 노라 노의 패션이 어떻게 현대의 패션에 기반이 됐는지, 그녀의 패션이 50년이 지난 지금에 어떻게 재해석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한다. 그러나 노라 노는 서은영의 의도가 탐탁치 않다. ‘옷이 사람보다 앞에 나와선 안된다’는 노라 노의 디자인 철학이 노라 노의 디자인사(史)를 통해 한국의 패션을 재해석하고 싶었던 서은영의 구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노라 노는 후배 디자이너들이 이름 붙이 ‘장밋빛 인생’이라는 전시회 제목도 마뜩치 않다. 그녀의 삶이 장밋빛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라 노는 자기의 삶에는 오류가 많았고 때로는 어리석기도 때로는 현명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 복잡한 세월을 그저 ‘장밋빛’같은 말로 포장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노라 노는 과거를 회상할 때는 당당하지만 선의로 자신의 전시회를 돕는 후배들과의 미팅에서는 자주 망설이고 당혹스러워하며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지 못해 낙담하는 표정을 짓는다.  

# 갈등과 욕망, 현역의 증거


그러나 갈등은 오히려 그녀가 과거에 박제된 존재가 아님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 갈등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정립한 디자인 철학,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착, 그리고 여전히 지니고 있는 뚜렷한 욕망. 갈등은 본래 욕망이 부딪힐 때 발생하는 것이다. 욕망은 미래에 대한 희구, 삶에 대한 열정, 의지와 같은 의미다. 

노라 노는 맟춤옷 일색이던 의류업계에 최초로 ‘표준화된 기성복’을 도입했다. 그녀가 열었던 최초의 패션쇼에도 일반인들이 무대 위에 올랐다. ‘패션’, ‘의상’이라는 말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에 누구나 예쁜 옷을 보편적으로 입을 수 있길 바랐다. 노라 노가 만든 기성복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사람들에게 팔려나갔고 의류시장의 양적, 질적 발전을 추동했다.

동년배인 앙드레 김이 화려한 자수와 하얀색으로 유명했다면 노라 노는 심플한 디자인의 검은색 옷을 주로 만들었다. 그건 그녀가 옷을 만들며 ‘일하는 여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여성 노동자였기에 일하는 여성들의 옷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그녀의 말은 그녀의 디자인 철학이 어디에 기반하는지를 드러낸다.  

여전히 긴 속눈썹을 붙이고 머리를 단장하고 블랙톤의 롱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지금도 옷을 ‘짓는다’. 오랜 단골이 옷이 필요하다고 찾아오면 수다를 떨며 스케치북에 디자인을 그려나간다. 오랜 단골의 성품과 필요와 취향을 아는 그녀의 손에 골무와 바늘이 들리고 한땀 한땀 옷을 짓는다. 세월이 지나도록 그녀의 작업방식은 노동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완고한 철학과 원칙을 지켜내고 여전히 필드에 선 현역 디자이너. 

# 온당한 존경


그래서 그녀는 후배들의 상찬이 달갑지만은 않다. 여전히 진행형인 자신의 삶을 화려한 수사들로 치장해 회고하고 싶지 않았고 자기의 역사를 장밋빛이기만 했던 것처럼 포장해 훈계하고 싶지도 않았다. 영화는 그런 그녀의 태도마저도 카메라에 담아냈다. 영화는 입지전적인 실존인물에 굴복해 마냥 미화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고 나이들어도 늙지않은 노라 노에게 온당한 존경을 표한다.

영화는 노라 노의 젊은 시절을 재연 드라마의 형식으로 재구성하는데 이같은 방법은 자칫 대상에 대한 과한 상찬이나 대상화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그러나 이 영화의 재연 장면들은 이 온당한 존경의 표식을 위한 장치로만 작용한다.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존경심을 잃지 않는 것, 상투적이지 않으면서도 대상에 대한 객관성을 잃지 않는 것. 그건 “때로는 현명하기도 때로는 어리석기도 했다”던 노라 노의 삶의 궤적과도 상통한다.

# 역사는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는 신파의 요소를 최대한 배제했고 단순히 감상적으로만 노라 노를 그려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울컥거림이 시작된 건 최은희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던 순간이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던, 그야말로 여배우의 얼굴. (그건 지금의 젊은 여배우들에게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감상을 느끼는 것과는 다른 층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옷 매무새를 만져주는 여든 다섯의 스타일리스트, 노라. 육십여년 쯤은 가볍게 뛰어넘어버린, 아니 그보다는 육십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모습이 어쩐지 가슴벅차고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건 아마 '시간'이 세겨놓은 주름과 그 주름의 골마다 박힌 지혜와 어리석음, 그걸 고스란히 견뎌온 묵직한 삶의 아름다움이었을테다.

그리고 기어이 눈물이 흘렀던 장면은 노라 노가 스무살 남짓의 어린 디자이너 지망생들과 전시회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었다. 기억은 전승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순환의 과정. 그건 그 자체로 역사의 단면이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나이들었지만 낡지 않은 여자와 나이 들어도 결코 낡고 싶지 않을(혹은 낡지 않을) 여자들의 만남. 역사란 고루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가슴벅찬 것이며,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주조하는 것이라는 명징한 증명이다.

# 수퍼스타 노라 노


영화엔 간간히 아는 얼굴들이 등장한다. 당대의 여배우들. 그 얼굴들을 찾아내며 감탄하는 것도 노라 노를 모르는 젊은 세대가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전시회의 메인 모델이 돼 준 노라 노의 페르소나 최은희와 엄앵란, 김지미, 문희, 윤복희 같은 얼굴들. 당시 노라 노의 옷을 입기 위해 의상실에서 몇 시간을 대기하고 무료로 패션쇼의 모델이 돼 준 노라 노의 친구들. ‘사회문제’였던 윤복희의 미니스커트도 노라 노의 작품이다. 윤복희와는 지금도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가면 몸빼바지와 억센파마가 전부인 줄 아는 ‘엄마’에게 물어보자. “엄마, 노라 노를 알아요?” 어쩌면 우리는 몰랐던 그녀의 역사, 그녀의 삶, 그녀의 장밋빛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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