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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수준과 국가의 품격

후퇴하는 민주주의 지수, 국가 발전에 영향

글  이영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정치학 박사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나라, 대한민국

 한국은 민주화의 제3의 물결에 해당하는 남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의 국가들 중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모두를 성취한 대표적인 나라로 꼽히고 있다. 1970년~80년대 많은 국가들에서 민주화 이행이 시작되었으나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공고화되지 못하고 퇴행하거나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중남미 지역에서 민주화의 제4의 물결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센 민주화 흐름이 형성되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이들 국가들에서도 민주주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적 성취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사례이며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경제적 성취의 지표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 전자제품과 화장품, 조선 등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한국 상품은 한국 경제의 위상을 드러내는 징표가 된 지 오래이다. 전통적 산업을 넘어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산업의 발전은 한국 경제발전을 더욱 눈부시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경제적 성취는 경제 지표를 통해 확인된다. 국제기관 등에서 조사·발표하는 다양한 경제 지표는 한 국가의 경제적 수준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GDP로, IMF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 GDP기준 세계 11위이다. WTO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 6대 수출대국으로 소위 많은 선진국들보다 위에 있다. 이러한 경제 지표들을 통해 모든 경제적 상황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한 국가의 경제적 수준과 성취를 판단하는 대표적인 지표들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 민주주의, 충분한가 부족한가?

 한국에서 민주화 이행, 즉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가 한국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거나 훌륭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국에서 민주적 선거에 의하지 않은 집권이나 독재, 군부 통치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며, 제도적 수준에서 민주주의의 틀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담론이 이야기하듯이 공고화된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 즉 민주주의의 양과 질, 내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이견이 존재한다. 한편에서는 민주주의가 너무 과잉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에서 민주주의는 경제발전, 국가안보 등을 위해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부족하거나 심지어는 퇴행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진전되고 있지 못하며, 때로는 언론, 사상, 양심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지표들

 경제지표만큼 주목을 받지도, 자주 거론되지도 않지만 매년 언론에 보도되는 지표 중의 하나가 민주주의 관련 지표이다. 대표적인 지표로는 미국 국제 NGO인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에서 매년 발표하는 자유화 지수와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가 있다. 프리덤 하우스의 자유화 지수는 정치적 권리와 시민자유라는 두 개의 범주의 점수를 합산하여 ‘자유(Free)’, ‘부분자유(Partly free)’, ‘비자유(Not free)’로 구분한다. EIU가 조사하는 민주주의 지수는 선거 과정과 다원성, 정부기능, 정치참여, 정치문화, 시민자유 5개 부문으로 평가한다. 점수에 따라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미흡한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혼합체제(Hybrid Regimes), 권위주의(Authoritarian Regimes)로 분류한다. 프리덤 하우스의 경우 자유화 지수와 병행하여 언론자유(Freedom of the Press Status)와 인터넷 자유 (Freedom on the Net Status)를 평가, 발표한다.

한국 민주주의 수준 1 - 완전 자유국가, 그러나 부분적 자유 국가

프리덤 하우스의 『2016년 세계자유 보고서』(FREEDOM IN THE WORLD 2016)에 따르면 세계 195개 국가 중 86개국이 자유국가이며, 59개국이 부분자유국, 50개국이 비자유국이다. 한국은 완전 자유국가로 분류되었고 북한은 최악의 12개 국가에 포함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총점 96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정치적 권리와 시민자유 두 개 범주 모두에서 최고 수준의 평가인 1을 받았다. 그 다음 대만이 정치적 권리 1, 시민자유 2에 총점  89점으로 2위, 한국이 양자 모두 2에 총점 83점으로 3위로 평가되었다. 북한은 양자 모두에서 최악의 수준인 7에 총점은 3으로 평가되었다. 눈여겨볼 것은 한국은 자유국임과 동시에 언론자유와 인터넷 자유에서는 부분자유국으로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언론자유 조사 대상 199개국 중 자유국이 63개, 부분자유국이 71개, 비자유국이 65개였다. 이중 한국은 나미비아와 공동 67위, 북한은 가장 낮은 199위였다. 한국은 2011년부터 부분적 언론자유국이었다. 인터넷 자유의 경우 조사대상 65개국 중 자유국이 18개, 부분자유국이 28개, 비 자유국이 19개인 것으로 나타났고, 한국은 나이지리아, 카자흐스탄 등과 유사한 수준의 부분자유국으로 평가되었다.

한국 민주주의 수준 2 - 미흡한 민주주의 국가

 EIU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 이전의 ‘완전한 민주주의’국가에서 ‘미흡한 민주주의’국가로 한 단계 떨어졌다. 조사대상 167개국 중 20개국이 완전한 민주주의, 59개국이 미흡한 민주주의, 37개국이 혼합체제, 51개국이 권위주의로 분류되었다. 전체 순위에서는 22위로 2014년에 21위에 비해 한 단계 떨어졌으나 아시아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2014년 8.06점에서 2015년 7.97점으로 평균 8점 이상의 경우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하는 기준에 따라 미흡한 민주주의 국가(6~8점 미만)로 분류되었다. ‘선거과정과 다원성’에서 특히 점수가 하락했는데, EIU는 “야권분열에 따라  2016년 총선에서 다수당의 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그 이유로 지적했다. 

민주주의 수준과 국가의 품격

민주주의 지표는 경제지표처럼 선거참여율과 같은 객관적 데이터로 구성하기도 하지만 질문에 대한 평가자의 판단에 의존하기도 한다. EIU의 “미흡한 민주주의” 평가에 대해 다원성이 아니라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와 같은 선거과정의 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처럼 해석의 다원성도 존재한다. 불과 0.03점 차이로 민주국가의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한계를 근거로 지표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표의 한계를 뒤로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후퇴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며, 여전히 한국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 수준에서도 높은 수준에 있다고 안주할 수도 있다. 때로는 최악의 국가인 북한을 그 비교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경제지표의 하락 경향에 대해서는 전 국가적인 재난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민주주의 하락 경향에는 매우 둔감하다. 부패수준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민주주의 수준 역시 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EIU라는 경제조사 기관이 경제환경분석의 일환으로 민주주의 지수를 조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 없이 또는 민주주의를 희생해서 경제성장하는 수준의 국가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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