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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 Ver 2.0 연영석 - `간절히`

필승 Ver 2.0 연영석 - `간절히`

글 성지훈/ acesjh@gmail.com 

태고 이래 세상은 단 한 번도 평탄했던 적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무언가에 저항하고 싸워야 했다. 힘이 없고 가난한 자들은 늘 빼앗겼다. 힘있는 이들과 싸우려면 무기라도 잘 갖춰야 할텐데 무기를 살 돈이 있으면 힘들게 싸울 이유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춤도 췄다. 노래와 춤, 가난하고 억울했지만 삶에 대한 욕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의 무기는 늘 한과 흥사이 어디쯤에 있는 노래와 춤이었다.

“This Machine Kills Fascists”. 대공황기의 미국에서 ‘포크(Folk)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 우디 거스리가 자신의 기타에 새겨넣은 문구다. “이 기계가 파시스트를 죽일 것이다”. 우디 거스리는 자신의 기타가 ’빼앗긴 노동자들‘의 무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6, 70년대 히피문화의 최선두에서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던 가수 조안 바에즈는 2011년 월스트리트 거리에 다시 섰다. “Where’s my apple pie?”.어느새 머리가 하얘진 나이든 가수는 거리에 쏟아진 ‘99%’를 위로하며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애플파이를 되찾겠다고.

고단한 삶, 정의롭지 못한 부, 착취당하는 노동, 잊혀진 민주주의, 무시당한 인권. 태고 이래 단 한 번도 평탄한 적 없는 세상에서 노래와 춤은 삶을 위무하고 정의를 갈구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우디거스리나, 밥딜런, 조안바에즈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한국에도 그렇게 아픈 세상과 사람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태춘, 김민기, 노찾사. 그리고 연영석.


# 노래 - 간절히

“오늘도 여전히 불안한 사람들 모두들 제각기 제 길을 가지만 난 아직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 <간절히> 중

민중가요는 거의 잊혀졌다. 90년대 이후 사회운동의 쇠퇴는 민중가요의 쇠퇴를 함께 가져왔다. 민중가요는 현존과 실재를 증명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같은 상황에 민중가요의 현재성을 확인시켜주는 가수가 연영석이다. 그러나 민중가요를 부르는 연영석은 ‘투사’가 아니다. 태준식 감독이 연영석을 대상으로 다큐를 찍고 싶다고 했을 때, 연영석은 자신이 투사의 이미지로 그려질 것을 가장 걱정했다고 한다. 연영석은 그저 노래를 부를 뿐이다. ‘투사’이길 거부하고 ‘문화노동자’로 자신을 규정하는 연영석은 노래의 예술성과 사회성 모두를 담지해야 하는 내부의 갈등을 안고 있다.

연영석은 영화 내내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투쟁과 음악사이, ‘투사’와 ‘게으른피’(‘Lazy Blood’는 연영석이 자신을 지칭하는 별명이다. 자본의 사회에 사는 것에 게으르겠다는 의미다.) 사이의 갈등. 온갖 현장과 집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모습과 게으름 속에서 에너지를 응축해야 비로소 예술적 소진의 원천을 만들 수 있는 ‘예술가’라는 직업의 운명 사이에서 느꼈을 고뇌. 영화의 주된 주제의식은 연영석의 그 고뇌와 갈등이다. 영화의 긴장감이 가장 고조되는 순간은 투쟁현장의 절박함에 연영석의 노래가 덧씌워진 장면이 아니라 화면과 음악의 공백을 연영석의 갈등과 고뇌가 채워가는 순간이다.

연영석의 고뇌는 그대로 연영석 음악의 근간이 된다. 연영석의 음악은 기존 민중가요의 문법과 다르다. 강고한 연대와 굴함없는 투쟁을 선언하던 기존의 민중가요와 달리 연영석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과 그들 개인의 삶이 일으킬 저항에 집중한다. 집회 현장에서 모든 대오가 함께 제창을 하는 것이 목표였던 기존의 민중가요와는 달리 그의 노래는 연주와 공연에 적응했다. 예술성과 사회성이라는 두가지 가치를 모두 쫓은 그의 노력은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 4개부문에 후보로 오르고 선정위원회 특별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점은 연영석이 음악전공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영석은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흥얼거린 멜로디를 삐삐에 녹음해놓고 나중에 들으면서 곡을 만들었다. 기타 코드를 잡을 줄도 몰라서 음악하는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서 기타를 배웠다. 미술학도에서 노동운동가로, 다시 음악하는 문화노동자가 됐다. 변화와 굴곡, 고뇌, 갈등이 그의 삶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의 삶이다. 오늘도 고뇌하고 갈등하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삶. 그는 그 고뇌와 번민의 간절함을 노래한다.


# 노동 – 이씨 니가 시키는대로 내가 다할 줄 아나

“아침부터 새벽까지 몸 버리고 속 버리고 일했는데 이제와서 필요 없다 이제와서 나가라니 웬말이냐. 이 씨 니가 시키는대로 내가 다할줄 아나” - <이씨 니가 시키는대로 내가 다할 줄 아나> 중

석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한 채 매일매일 중노동을 해야하는 이주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위해 투쟁하는 KTX 승무원들, 해고와 폭력진압에 반발하며 일터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코스콤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부당해고에 반발하며 싸우는 이랜드의 노동자들, 기네스북 기록을 경신하며 투쟁하는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그 외에도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 영화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연영석은 그들의 투쟁에 노래로 답한다. 청바지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저녁을 빵과 우유로 때우는 이주노동자 검구릉씨의 사연에 연영석은 <현실>을 읊조린다.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쫓아낸 노동자들 앞에서 골프를 치며 ‘나이스 샷’을 외치는 자본가들을 <돼지 자이언트>로 조롱한다. 외주용역화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서 싸우는 홈에버 노동자들에게 <밥>을 먹자고 한다. 새빨간 거짓말에 속을 수밖에 없는 코스콤 비정규지부 노동자들의 싸움에 연영석은 그럼에도 <노란선 넘어 세상>에 가야 한다고 응원한다.

영화는 2006년에 만들어졌다. 올해로 만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변할만큼 세월이 지났고 연영석이 그토록 열심히 응원하지만 사실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쩌면 오히려 더.

KTX의 승무원들은 10년간의 지루한 싸움 끝에 끝내 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 법원은 철도공사에게 그녀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지 않아도 되고, 해고도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1심 승소 후 지급받은 임금까지 도로 반납해야 했다. 1억 원 가까운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한 승무원은 세 살배기 아이를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기륭전자는 길었던 투쟁을 마치고 노사가 직접 고용을 합의했지만 회사는 복직을 차일피일 미루다 회사 집기를 들고 야반도주했다. 2년째 연락두절이다. 이주노동자 검구릉 씨는 출입국관리소의 표적 단속에 걸려 강제 출국 당했다. 그가 밀린 임금을 돌려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집권당의 대표는 노조 때문에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정부는 최우선 국정 목표로 비정규직을 더 많이 만들고 임금을 더 적게 주겠다는 ‘개혁안’을 내놨다. 못살겠다고 거리에 나선 노동자와 농민들에게는 물대포를 직사하고, 집회를 연 노동조합 위원장은 5년동안 감옥에 가둬두겠다 한다. 나아진 것은 없다. 어쩌면 오히려 더.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투쟁을 한다.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추운 거리에서 밤을 보낸다. 간절히 바라는 세상, 전혀 다른 세상에 함께 가자고 외친다. 그리고 그 자리엔 연영석이 있다. 늘.


# 필승 – 구르는 돌

“세상 모든 굴레를 딛고 구르자. 더러운 것들 밟고 구르자. 자유로운 세상, 전혀 다른 세상에 우리 모두 함께 가보자” - <구르는 돌> 중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패배’가 일상인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간절히. 그래서 그들에게 감독이 붙인 이름은 ‘필승’이다.

연영석은 영화에서 이게 승리라고 말한다.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승리라고. 내일 노래를 관두고 산속으로 갈지도, 시골로 농사지으러 내려갈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사는 게 결국 승리라고. 3개월째 임금을 못받은 이주 노동자가 예쁜 신발을 신고 다시 일터로 나서는 것, 천막 안에서 눈물흘리는 KTX 비정규직 승무원들이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는 것, 그리고 연영석은 노래로,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또 위로받는 것. 그렇게 삶을 견뎌내고 살아내는 것이 ‘필승’이다.

그래서 <필승 ver 2.O 연영석>이 말하는 건 투쟁의 ‘선언’이나 ‘선동’이 아니다. 마치 연영석의 노래처럼. 삶을 <간절히> 원하라고, 흥에 겨워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그녀처럼, <니가 시키는 대로 다 할 줄 아냐>고 소리지르는 연영석처럼.


<필승 ver 2.0 연영석>은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매끈하고 유려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다. 편집은 산만하고 구성은 소란스럽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보여주지만 그들의 투쟁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연영석이 주인공이지만 정작 연영석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감독이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건 우리의 삶이다. 끝없이 구르는 돌의 간절함 같은 것. 그래서 영화는 정확하고 유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영화를 관통하는 건 삶에 대한 끈질긴 믿음, 서로가 건네는 위로에 대한 믿음.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정성’을 전달하는 것만이 오직 목적인. 마치 연영석의 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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