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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익혀 삶으로 살아내는 민주주의

배우고 익혀 삶으로 살아내는 민주주의

글 장동석 출판평론가, 『기획회의』 편집주간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김정인, 책과함께)는 인민, 자치, 정의, 문명, 도시, 권리, 독립의 7가지 개념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절차를 거쳐 발전했는지 고찰한 책이다. 특이하게도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발현된 20세기가 아니라 그 기원을 19세기로 잡아 민주주의의 맹아(萌芽)가 싹터온 과정을 복원한다. 저자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전봉준으로 상징되는 인민과 김옥균으로 상징되는 개화파”가 “함께 빚은 역사”이다.

여기서 인민은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주체”로, 동학농민운동에 뛰어든 바로 그 인민들이 이 땅에 만민평등의 기치를 올렸다. 아울러 천주교와 동학이라는 평등 지향적 종교 공동체를 경험한 인민들이 ‘자치’의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되었다. 당연히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은 ‘독립’에의 열망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노정(路程)이었다. 막연하게 광복 후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이 땅에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가차 없이 깨버리는 책이 바로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사회든 민주주의가 올바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편향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땅에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한겨레> 초대 편집국장을 지낸 성유보의 『미완의 꿈』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토대로서 언론의 역할을 오롯이 드러낸 책이다. 성유보는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언론 민주화의 가치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는 특히 기자로서 보도의 주인공을 누구로 설정할 것이냐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언론은 육하원칙, 즉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 육하원칙에서 ‘누가’라는 주인공을 잘못 선택하면 ‘언론의 자유’는 함정에 빠지고 만다. 보도의 주인공이 국민이냐, 아니면 권력자냐 관료냐가 시민민주주의 사회와 권위주의 사회의 갈림길이다.”

저자 성유보는 우리 언론이 시종일관 시민을 뉴스의 주인공으로 삼은 적이 없다고 일갈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는’으로 시작하는 뉴스가 도배를 했고, 독재정권에서는 대통령의 이름으로 뉴스를 시작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시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가 싶었지만, 이후 재벌기업의 목소리만 추가되었다. “국민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는 결코 주권자가 되지 못하고, 관료 독재와 천민 자본가의 노복이 된다”는 지적은 뼈아프고, “언론은 언제나 변함없는 정경유착의 충실한 동맹자였다”는 일갈은 후련하다. 『미완의 꿈』이 보여주는 언론 자유의 꿈은 민주주의 가치 실현과도 잇닿아 있다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더불어 읽기 좋은 책으로는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세계적 석학 움베르토 에코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를 권한다. 인권, 자유,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현대의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이자 사상으로 평가받지만 그 이면에는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음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표현에서 보듯,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 수준의 민주주의로는 이상적 민주주의가 도래할 수 없음을 설파한다. 민주주의는 생각만으로 실현할 수 없다. 배우고 익혀 삶의 가치로 승화시켜야만 시민이 민주주의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 작은 책들이 그 토대를 쌓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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