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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개혁은 어떻게 가능한가?

좌 담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교수(정치학)
사 회 박은홍 본지 기획위원, 성공회대 교수(정치학)
정 리 이종률 김남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 진 장철영 사진작가

 

6월민주항쟁 30주년을 앞두고 우리 사회에는 헌법 개정과 민주주의 심화 문제를 화두로 백가쟁명 식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논의 주체에 따라 강조점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권력구조의 개편, 시민권의 강화, 국민 참여 방식 문제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중견 학자 두 분을 모시고 ‘헌법개혁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주제로 특집좌담을 마련하였습니다. 사회는 본지 기획위원이자 정치학자인 박은홍 교수가 맡아주셨습니다.


✽ 왼쪽부터 박명림, 박은홍(사회), 김선택 교수

민주주의 공고화와 역진의 기로

박은홍
일부 학자들은 민주화 프로세스를 개방-돌파-공고화의 단계로 설명합니다. 공고화 문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안정화와 실질적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지요. 지금 시점에서 개헌의 필요성은 공고화와 관련된 측면이 있습니다.

태국의 경우 1997년 이른바 ‘국민의 헌법’을 제정했습니다. 1996년에 지방의 각 대표자와 전문직 종사자, 학계가 모여 1년을 논의해서 혁신적 내용을 담은 헌법을 출범시켰어요. 그런데 쿠데타로 인해 지금은 군정 상태에 있고, 얼마 전 군사평의회가 발의한 헌법이 통과되기까지 했어요. 군부 특권을 보장한 헌법이지요. 공고화를 위해 새로이 헌법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 민주화가 역진된 것입니다. 개방, 돌파, 공고화, 역진 모두 헌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과 민주주의는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박명림
6월항쟁 헌법 체제가 들어선 지 30년입니다. 노태우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개헌론이 제기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과거에는 권력 연장과 독재 강화를 위해 개헌이 시도되었다면, 1987년 이후로는 헌법체제가 갖고 있는 민주주의 수행 능력때문에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임기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지만, 헌법 요인으로 인한 심각한 정치갈등과 여야대결, 진보 보수 진영의 교착상태가 항상 반복되고 있습니다. 실질적 문제 해결을 헌법적 요인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헌법적 장애’가 비등점 내지는 역치점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행정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사법개혁, 선거개혁, 정치개혁 등 숱한 부분적 개혁에도 불구하고 헌법적 장애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통령을 넘어 의회, 시민사회, 심지어 종교계, 노동계, 지자체, 지방의회에서까지도 헌법이 문제라는 것에 대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 발언을 하고 있는 김선택 교수(좌)와 박명림 교수(우)

김선택
87년 헌법이 공정하게 평가되고 있는지,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실험을 해본건지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헌법사를 통틀어 87년 헌법이 최장수 헌법입니다. 이 헌법 덕분에 5천년 역사를 통틀어 최초로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했다는 의미가 있어요. 또한 현행헌법에 와서 비로소 제도적으로 헌법이 권력자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 대통령이 “헌법 때문에 못해먹겠다”고 고백했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 발언을 듣고 헌법학자로서 굉장히 명예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고 권력자가 헌법에 구속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니까요. 87년 헌법은 크게 보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처음부터 잘 만든 헌법은 아니지요. 당시 파워게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여 헌법을 만들다보니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더불어 과거 헌법의 독소조항, 문제조항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개헌 논의는 핵심을 놓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민주주의가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87년 헌법의 원래 의도는 ‘직선제라도 받자’는 것이었지, ‘직선제만 하자’는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했지, 대통령 권력을 바꿀 자유만 원한 것이 아닙니다. 87년 헌법에서 소홀히 했던 것을 전면적으로 바꿔서 제도적 민주주의를 완전히 정착시켜야 합니다. ‘권력자 바꾸고 선거법 바꾸자’는 구호로는 안 됩니다. 헌법 개정을 쉽게 생각하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박은홍
박명림 교수는 6월항쟁 헌법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한 시민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이를 통해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김선택 교수는 헌법을 잘못 건드리다가 민주화의 역물결에 휩쓸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해주셨습니다.

박명림
6월항쟁 당시에 구체제 해체는 시민사회와 시민이 주도했는데, 신체제 건설은 주권을 위임받은 대표가 했습니다. 민주화는 거리의 정치가 주도하고 헌법화는 탁상정치가 주도한 것에서부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심지어 현행 헌법제정을 위한 탁상정치에는 구(舊)독재세력이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헌법화 논의에 시민이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두 분은 역진이라는 표현을 쓰셨지만, 정치학 용어로 탈민주화(de-democratization)라는 말도 있습니다. 민주화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이 너무 심각합니다.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터키 등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탈민주화를 주도하는 현상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양극화나 인간 실존문제가 심각합니다. 자살, 저출산, 노인빈곤, 남녀임금 격차, 빈곤율 등의 공공성 지표는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87년 헌법이 제공하는 공간 안에서는 기득권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의 담론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봅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는데 실질적 민주주의가 문제다’는 말처럼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호도하는 말도 없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면 실질적 민주주의가 발전합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란 권력과 자원의 배분을 제도적 절차로 규정한 것이지요. 권력집중을 포함해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이 되지 않아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너무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박은홍
희망하는 개헌 내용을 말씀해 주신다면.


✽ 6월민주항쟁 시위 현장


✽ 통일민주당이 개최한 헌법개정공청회

박명림
국민 합의가 전제된다면 새로운 헌법에는 환경, 생명, 자치, 평화, 통일, 평등 등 미래지향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고 봅니다. 권력분산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일반적으로 보편적 민주국가가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자치를 확고하게 강조해야 합니다. 서울은 한 구에서 국회의원 2~3명을 뽑지만 강원도의 경우 면적이 수십 배에 달하는 시/군에서 1명을 뽑습니다. 인구 대표는 영토 대표에 의해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미국 헌법을 만들 때 자치와 연방을 가장 중요하게 한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구에 따라 하원을 배분하지만 주별로 똑같은 상원을 배분한 것입니다.

 

영토조항의 경우도 보편적 발상이 필요합니다. 분단시기 독일, 아일랜드, 대만처럼 잠정헌법을 쓰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통일 이후 자유롭게 헌법을 기초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미 완전헌법, 통일헌법을 쓰고 있습니다. 이념적 독점욕구 때문에 헌법규범이 헌법현실과 충돌하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앞에서 말한 최대주의 헌법개혁을 희망합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봅니다. 따라서 2단계 접근이 중요합니다. 적어도 기본권, 경제조항, 지방자치, 권력구조 개편 등의 핵심은 개헌안에 꼭 담아야 합니다. 권력구조 개편이 개헌론의 출발인 것은 분명합니다. 권력의 독점이 곧 자원배분의 독점이고 인권 억압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을 분산하는 것에 있습니다.

 

박은홍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의 안정화에 대통령제가 좋은지 의원내각제가 좋은지를 두고 오랫동안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구체적 사례에 들어갔을 때는 일반화하기 쉽지 않지요.

권력분산과 협치의 구현

김선택
저는 콘텐츠의 측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프레임의 변화입니다. 정치권이 개헌을 논의할 때의 프레임은 권력 중심, 권력 참가자 중심입니다. 정부형태, 대통령 임기, 권력분산 이런 이야기만 합니다. 이 프레임을 깨야 해요. 우리 국민들이 명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은 우리 삶에 직접적이고도 큰 영향을 미치니, 삶이 지향하는 기본 가치가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치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먼저 결정하고, 그 미래가치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석한 다음에, 권력을 어떻게 짤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독소조항을 고쳐야 합니다. 5.16군사쿠데타 헌법, 유신헌법의 독소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대통령 권력, 즉 지위 조항이 대표적입니다. 시민참여 분권의 내용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고, 지방 자치 관련해서도 조문 세 개가 전부입니다. 이러한 흠결을 메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분권과 협치라는 전 세계적인 시대정신을 실현해야 합니다. 권력 분산만 시키면 의미 없고, 모든 결정을 함께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과제가 세 가지 있습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권, 중앙기관들의 권력분산과 협치, 중앙과 지방권력의 분산과협치. 이 세 가지가 미래과제입니다.

 

박명림
세 가지가 핵심이라고 봅니다. 첫째는 의회축소입니다. 1948년 건국헌법에서는 의원수가 인구 10만 명당 1인이었는데, 5·16쿠데타 이후에는 인구 20만 명당 1인으로 대폭 축소됐습니다. 한국은 현재 OECD 국가들 중 의원 숫자가 인구대비 너무도 적습니다. 둘째는 국가경제질서의 근본적 변혁입니다. 이전 헌법에서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 기본원칙이었는데 박정희 체제에서 ‘개인의 자유와 창의’로 바뀌었습니다. 셋째로, 유신체제 하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도 들어갔습니다. 좌우 전체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핵심원칙인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 질서’가 민주주의를 크게 축소 왜곡한 독재체제를 위해 들어간 것입니다.

박은홍
어떤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봤으면 합니다. 국민의 의견이나 생각은 다 같을 수 없습니다. 국민 목소리가 하나인 것처럼 설정해 호도하는 것은 일부 정치권에서 하는 일이지, 실제로 국민의 의견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자유주의의 전제이지요. 그러기에 선거 또는 다양한 절차를 통해 다수의 의견이 관철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 다수의 폭정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대한 하나의 해결 장치로 협의민주주의가 있습니다. 권력의 분산, 공유와 연관이 됩니다.


✽ 학생들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법복을 입고 진로체험 현장학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명림
중요한 말씀이십니다. 현재 헌법체제에서는 권력과 자원이 특정 주체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헌법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심대하게 제약하는 구조이지요. 우리는 너무 헌정민주주의에 익숙합니다. 민주주의의 원리가 헌법에 반영되는 민주헌정주의가 필요합니다.

시민사회의 의사가 비례적으로 대표나 국가에 반영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다수결 민주주의를 넘어서는것은 역시비례적 민주주의입니다. 의회의 35%를 득표하면 35%의 의석을 가져야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비례성의 원칙에 현저히 위배됩니다. 1인 1표 등가성 원칙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주권자의 1/3 정도의 득표율로 100%의 권력을 행사합니다. 의회도 득표율보다 훨씬 더 많은 의석을가져가는 정당이 제1정당이 되어왔습니다. 심각한 왜곡입니다.갈등이론에 의하면 이 괴리만큼시민영역에서 의사를 표시해도 공공영역에서 반영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시민영역은 의회를 통해 갈등을 해소할 수 없고 거리에 있게 됩니다.

 

민주헌정주의를 통해 권력과 공공영역이 구성되면, 놀라운 현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갈등이 현저히 완화되고, 타협이 급격히 제고됩니다. 동시에 각 영역의 최고 정당이 연합과 타협을 통해 최고의 국정운영을 할 수 있고, 정책의 지속성도 높습니다. 이것을 핀란드,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독일의 경험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박은홍
한국의 일부 파워엘리트들이 갖는 권력의 사유화와 과도한 정치공학적 발상 속에서 타협, 연합, 연정이 제대로 콘센서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일종의 교착상태로 빠지는 나쁜 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요?

박명림
지금 말씀하신 정치적 교착상태나 불능 상황에 대해 많은 분들이 걱정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무한보장했을 때의 상황입니다. 상호견제나 건설적 불신임 제도라든가, 가중다수결 제도 등으로 갈등의 문턱을 조정하면 됩니다.

박은홍
국민 대중의 이야기를 잘 반영할 수 있는 최적의 제도가 무엇일까요. 최고 수준에서는 헌법으로 시작해서 구체적으로 선거법까지 다 관련이 되어 있을 텐데요. 미래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헌법이 어떻게 리드해주면 좋을지 말씀해 주시지요.


✽ ‘헌법체험 한마당’ 행사에 참석한 어린이 ©연합뉴스

김선택
국민들이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라 엘리트들이 할 일이다, 나는 생업에만 종사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 독과점이 심각하고, 그것이 제도화되어 있어요. 심지어 “어리석은 일반 대중에게 국정 운영을 시키는 것은 무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이 아주 멋있는 말을 했지요. “그렇게 위험하고 중요한 권력을 국민 외의 어디에다 저장할 수 있겠느냐. 국민보다 더 나은 저장소를 나는 알지 못한다.”라는 말입니다.

민주주의는 삶의 형식, 삶의 방식이라고 봅니다. 공동체 내에서 살아가는 모든 개인이 민주주의를 생활습관화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요? 첫째로 공론장을 건설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식인들이 국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 눈앞의 사례로 말해줘야 할 책임이 큽니다. 두 번째로 국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정당 창당도 쉽게 할 수 있어야 하고, 언론·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도 충분히 보장해야 합니다. 선거 연령도 낮추고요. 마지막으로 엘리트들은 그들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기부해서 국민들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자기 재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합니다.

박은홍
정치권에서 여야 막론하고 빨리 헌법을 개정하자는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데 국민 혹은 시민이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하는 방식을 논의해 봤으면 합니다. 개헌 타이밍에 관한 이야기도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

박명림
20대 국회가 헌법을 개혁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민주주의는 갈등의 제도화이면서 동시에 불확정성의 제도화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점의 문제에 있어서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대선 이전에 하면 불확정성의 제도화에는 유리하지만, 너무 시기가 촉박해서 시민적 숙의의 과정을 거치기 힘듭니다. 대선 이후 공약을 통해 실시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과연 차기 대통령과 정부가 헌법개혁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딜레마지요. 그러나 지금 헌법 개혁 논의가 여러 군데서 분출하는데도 20대 국회를 그냥 지나 보내면, 많은 문제가 있는 현재의 헌법을 상당히 장기간 안고 가야 할 것입니다. 20대 국회 전반기와 후반기, 대선 이전과 이후의 장단점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의회와 시민사회의 공동거버넌스

김선택
현실적으로는 20대 국회에서 개헌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오늘의 논의와 무관하게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겠지요. 국민들이 바라보는 눈이 있으니 기본권 등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조항 몇 개를 보태서 대충 넘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입니다. 헌법 제1조 2항에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주권의 핵심은 우리 공동체를 우리 손으로 조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헌법을만들고 고치는 권력은 국민에게 있는 것입니다. 지금 헌법에는 발의권이 대통령과 국회에 있지만요. 헌법 개정 과정이 이상하면 국민투표운동이라도 해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No)!ʼ라고 하면 됩니다.우리 국민,옛날 국민이 아닙니다.

박명림
의회에 일방적으로 맡기기보다는 의회와 시민사회의 공동거버넌스, 이중거버넌스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헌법 조문은 입법자만 할 수 있습니다만, 조문화 직전까지 단계에서는 시민정치에 해당하는 공동거버넌스의 단계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또한 헌법개혁은 대통령이 주도해도 안 됩니다. 권력 연장, 혹은 이면의 의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대통령이 반대해도 헌법 개정은 어렵습니다.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논의구조와 설득채널을 만들어야 합니다. 최소한 반대하지는 않도록 말이죠. 설득의 역량도 민주 시민사회와 의회의 능력입니다.

개헌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능한 민주주의를 통해 인간 실존 문제를 고르게 예측 가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고요하고 안정된 가운데 사회에서 자기실현의 꿈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6월항쟁 세대로서, 다음 세대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있습니다.


✽ 아이슬란드의 최근 개헌 시도는 시민들의 집단 지성이 동력이 된 독특한 사례다

차원높은 협약에 기반한 헌법개혁

김선택
우리나라 헌정사를 보면 실력자가 집권제 시나리오를 다 만들었습니다. 국민은 끼지도 못하고 뒤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지요.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들도 부담스러워 자꾸만 ‘국민들이 주도하면 좋겠다, 시민사회가 먼저 해달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편승하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19대 국회에서는 헌법개정 절차 법률안까지 발의가 됐습니다. 폐기되기는 했지만요.

비슷한 외국 사례도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 IMF 재정위기가 왔을 때, 정부의 부도덕성과 부패에 화가 난 국민이 헌법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헌법개정을 촉구하는 시민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야당에서 집권을 하는 바람에 정식으로 헌법개정회의체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회의체에 정치인들은 다 빠졌습니다. 정치상황이 변해 이 개헌안이 최종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시민 주도의 개헌 논의 방법은 주목할 사례로 남았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자정보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시민대표 기구를 만듭시다. 전문가들이 서포트하고 언론홍보기구, 교육기구를 만들고 SNS도 적극 활용해서 대대적으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정헌법을 한 번 해봅시다.

박은홍
외국에서는 한국을 민주화의 성공사례로 평가합니다. 87년 헌법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당시의 협약과 타협으로 지금까지 한국 민주주의가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는 주장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헌법 개혁 논의와 관련해서는 보다 높은 차원의 협약, 협상, 타협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그게 잘 이뤄질 수 있을까, 시민이 주도하는 공동거버넌스를 잘 이뤄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오신 두 분 교수님께서 여론 주도 역할을 하시니 낙관하고 싶습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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