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관계의 역사적 맥락과 한국의 국가전략
Special Theme 1 | 미중관계의 맥락
미중관계의 역사적 맥락과 한국의 국가전략
- 안보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평화담론의 중요성
글 김준형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교수 / jhk@handong.edu
2017년 5월 9일 각고 끝에 신정부가 출범했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은 56년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3가지 적폐의 종언을 의미한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원조인 박정희식 근대화 신화의 종언이며, 5·18민주화운동과 6·10민주항쟁의 정신을 외면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해온 반민주의 종언, 그리고 권력유지를 위해 분단체제를 악용해온 반평화 프레임의 종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은 권력을 위해 분단체제를 철저하게 이용했던 시기였다. 권력획득을 위해 이념갈등을 조장했고, 집권 후에도 냉전적 진영논리에 바탕을 둔 친미 및 대북강경책으로 권력을 공고화했다. 남북은 공히 상호적대감을 확대 생산함으로써 국내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적대적 공생’ 구도였다. 미중은 한국을 인질로 패권갈등을 격화하고, 일본은 재무장을 가속화하고, 러시아는 호시탐탐 개입을 도모하며,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 최악의 외교환경에서 보수기득권에 의해 장악된 정부는 최선의 판단과 최상의 실력을 보여주기는커녕 진영논리에 얽매여 국가를 위기에 빠뜨려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정부의 탄생은 국내정치 적폐의 청산과 동시에 분단체제의 극복을 알리는 신호탄이어야 한다.
미중관계의 역사적 맥락
미중관계를 한반도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변수로 간주하는 것은 자주적 사고의 부재가 아닌 국제정치의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류역사상 현재의 미중처럼 적대적이면서도 상호의존적 관계를 동시에 가진 예는 없었다. 때문에 세력재편의 와중에서 상대의 의도와 실체를 지속적으로 시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시험이 가장 치열하게 그리고 빈번하게 벌어지는 곳이 한반도이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초강대국이 확장할 때마다 세력 갈등이 맞부딪치는 곳이었다.
두 차례의 참혹한 대전 이후 냉전이라는 갈등구조로 이어지던 세계는 1990년대 초 탈냉전의 새로운 질서를 맞이하였으며, 평화에 대한 큰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하지만 탈냉전은 기대했던 지속가능한 평화의 도래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대체질서를 파악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정세가 이어졌다. 소련의 붕괴로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의 모든 문제들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탈냉전 도래 10년의 시점에서 발생한 9.11 테러는 미국에게 새로운 위협의 등장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테러리즘이나 비대칭전이 국제정치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지만, 그것을 기본질서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며, 부시 행정부의 군사주의와 일방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정당성과 효율성을 잃게 되었다. 따라서 미소 냉전체제 해체 이후의 질서, 즉 미소 2강구도의 공백을 어떤 질서로 대신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지속적으로 워싱턴을 괴롭혔다. 그러다가 중국이 1990년대 중후반부터 급속한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국제정치에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 질문은 ‘과연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로 구체화되었다.
✽ 지난 7월8일 독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트럼프(왼쪽) 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면하는 모습 ©연합뉴스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엄청나게 커진 중국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대중정책에서 일관된 전략을 수립하기보다는 위협론에 기초한 봉쇄와 상호의존에 의한 협력론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협력과 갈등이 반복되는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의 대중전략은 여전히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일반론적 고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경계심의 정도와 수사가 달랐을 뿐, 대중전략을 확고하게 정립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부시 정권은 중국위협론에 기초해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는 분명히 가지고 있었지만, 아프간과 이라크전쟁의 교착과 대내적 지지하락으로 인해 대중국정책을 확립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오바마는 취임 초 전임 부시 정부와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듯 보였는데, 그것은 G2로서의 중국을 인정하고 전략적 협력관계를 모색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재확인(Strategic Reassurance)'을 강조하며 대등한 양자관계의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협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구체적 실천은 뒤따르지 않았으며, 과감한 정책전환이 지연되는 가운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복원하겠다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갈등이 심화되었다. 세계 금융위기 해결방안을 둘러싸고 양국의 견해차가 두드러졌으며, 아시아에서 군사전략 차원의 갈등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통일된 전략의 부재는 이전 정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여기에다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 겹쳐 문제는 꼬여갔다. 중국을 미국주도의 세계에 편입시키는 것도 어려워졌으며, 적극적인 봉쇄를 통해 견제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국제정치 현실주의자들의 예측대로 미소대결의 재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세계화 속에서 공동운명체로서 긴밀한 협력관계가 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미국이 주도해온 질서를 중국이 계속 수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반대로 안정과 공존을 위해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본격화해서 우위를 확실히 다질 것인가를 미국이 선택해야한다.
그러나 선택은 매우 어렵다. 신현실주의자의 주장대로 미중 갈등구조가 미국의 선택을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릴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협력을 촉구하는 정치적 수사들이 난무하지만, 양국의 전략적 목표에서 수렴보다는 갈등요소가 훨씬 우세해지는 양상이다. 북핵문제, 통상 및 환율분쟁, 남중국해 영토분쟁, 대만 무기판매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갈등은 수면 위로 부상했다. 게다가 1979년 수교 이후 중국이 미국에 대해 현재의 시진핑 체제만큼 강경한 입장을 내보인 적이 없다.
한반도에 대한 함의
미중 갈등은 구조적 측면에다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 그리고 양국의 불신까지 혼합된 결과이기에, 어느 한 요소의 변화만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심화된다면 한국으로서는 매우 곤란한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재와 같은 대미 군사의존도와 대중 경제의존이 높은 구조에서 대중 봉쇄전략을 요구받는다면 심각한 딜레마를 겪게 될 것이다. 사드 배치 문제는 본격적인 시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물론 고조되는 미중 갈등에도 실제로 군사적 충돌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이 미중 양국의 높은 상호의존도로 말미암아 전면적 충돌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중국은 미국식 세계질서의 최대 수혜자이며, 미중 양국은 현 국제체제의 안정적 관리가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유지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충돌은 곧 공멸이므로 협력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당위는 수용하지만, 현실에서 그대로 실천될지는 미지수다. 상호불신이 여전한 가운데 상대의 수용과 양보를 전제로 하는 협력과 공존을 달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내 리더십에 대한 확장욕과 미국의 기존 리더십에 대한 공세적 방어가 상승작용을 일으킬 때 충돌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양국 세력권의 경계설정이 관건이다. 한반도, 중국-대만의 양안, 동중국해, 그리고 남중국해가 그런 지점들이다. 이들 중에서 한반도는 미중의 가장 치열한 기 싸움 또는 기 싸움을 넘어 충돌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
단층선의 가장 중요하고도 위험한 지점인 한반도는 갈등을 강화할지, 아니면 경계의 자리에서 완충의 역할을 할지 기로에 있다. 후자가 우리의 국익과 지역의 평화에 바람직하지만, 최근 상황은 반대로 가고 있다. 냉전이 끝난 지 4반세기가 넘었고 남북한의 국력이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는데도, 지난 9년은 통일은커녕 평화공존의 가능성마저 희미하게 만들어버렸다. 탈냉전 초기의 기회를 바탕으로 분단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이 관계개선을 추구하고 평화체제 구축을 모색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분단구조는 깊어졌고 상호적대감은 커졌다. 남북관계는 미중 갈등과 중일 대결의 땔감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와 남북관계 악화로 한반도는 분단고착을 넘어 전쟁위기의 상존에까지 이르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은 저지하지 못하면서 일본의 재무장과 미국의 대중봉쇄의 전위대가 되고 있다. 사드 배치 결정은 동북아 단층선을 강화하는 결정적 변곡점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교가 당면한 위기를 초래한 가장 일차적인 책임은 분단체제와 함께 한미동맹 관성을 체화시킨 기득권 지배세력에게 있다. 한미동맹은 지난 60여 년간 친미세력의 제도화와 친미의식의 강력한 관성을 축적해왔다. 단지 국익을 위한 실용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신화나 종교를 만들어버렸다. 외교는 한미동맹을 신성시했고, 남북은 대결구조를 강화하는 패턴을 반복해 왔으며, 국내정치는 안보세력과 이른바 종북세력으로 분열시켜 진영대결을 부추기는 3중 분단구조를 고착화시켰다. 특히 진영논리를 유지하기 위해 외교를 국내정치의 도구로 활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국정원의 NLL 대화록 공개, 국방부의 전시작전권 환수 무한 연기, 개성공단의 전격 폐쇄, 사드 배치의 졸속 결정, 한일정보보호협정 졸속 추진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국민의 안보불안 심리를 활용하는 안보 포퓰리즘은 유신시대의 반공 이데올로기의 부활과 같다. 반대로 통일과 평화담론은 위축되었다.
✽ 지난 5월 16일 문재인 대통령(가운데)과 미·중·일·러 ·유럽연합 주요국 특사단이 오찬 간담회를 갖는 모습. ©연합뉴스
전망과 우리의 과제
동북아에 구축되고 있는 ‘강자들의 전성시대’는 한국에게 가장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미편승 외교만으로는 한반도와 동북아에 아무런 이해상관자의 역할을 할 수 없고, 미중의 이익에 종속되거나 반대로 효용성을 상실하여 양쪽 모두로부터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이 역내에서 이익을 관철시키는 방법은 근거 없는 북한붕괴론을 내세워 대화를 거부하고 친미편승을 통한 대북제재에 ‘전부 걸기’하는 전략보다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미중의 패권적 관할체제를 약화시킴으로써 외교 이니셔티브를 조금이라도 높이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국제정치적으로는 대결구조를 통해 이익을 얻는 안보 포퓰리즘에 대항해 평화담론을 적극적으로 키우는 일이다. 2016년에 서울을 방문한 평화학의 대가 요한 갈퉁 교수는 ‘안보를 통한 평화보다, 평화를 통한 안보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일평생 견지한 그의 평화지론이다.
우리는 공존과 평화를 지향하는 대외정책을 견지함으로써 대결을 조장하는 극우적 민족주의를 거부해야 한다. 미국이 구축하려는 한미일 군사협력, 특히 지역미사일방어체제 합류는 냉전 부활을 가속화할 뿐이다. 한국은 남북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동북아 단층선의 심화를 막아야 한다.
우리는 천신만고 끝에 새 정부를 맞이했다. 중요한 것은 촛불의 의미를 심장에 깊이 새긴 정부여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강조했듯이 반민주와 천박한 자본주의 질곡의 극복도 중요하지만 분단적폐의 해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시급해졌다. 내부적으로는 좀비처럼 되살아나 여전히 분단체제에 기생하며 기득권을 유지해온 안보장사치들을 정리하고, 외부적으로는 극우민족주의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한반도 주변 국제질서에서 중심을 잡고 평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미국을 우리 국익보다 더 우선시하는 동맹중독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초한 사면초가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되, 현실감과 균형감을 지니고 미중 갈등에 휘말리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운신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우리가 새로 권력을 맡긴 국가의 정치 본령은 복지이고, 외교의 본령은 평화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실천해야 한다. 강자가 지배하는 홉스적 야만상태를 수용한다면야 약자를 위해 존재해야 할 정치가 필요 없을 것이고, 생존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과 공포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면야 외교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외교는 안보를 확보하는 가장 값싼 방법이며, 평화는 안보가 지향해야 하는 궁극적 목표다. 한국 우선의 국익을 추구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을 향해, 세계를 향해, 협력과 평화공존, 민주주의 같은 가치외교의 기치를 올려야 한다. 이것이 세계가 함께 사는 길이며, 우리도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시발점은 남북관계 개선이고 종착점은 동북아평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