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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6월항쟁 30년의 한국 민주주의 Ⅲ - 6월항쟁의 역사적 좌표와 촛불

Talk | 6월항쟁 30년의 한국 민주주의 Ⅲ

6월항쟁의 역사적 좌표와 촛불

손호철   촛불혁명의 과제는 헬조선과 대의민주주의
정근식   촛불시위는 혁명과 항쟁의 중간에 위치

일시 및 장소 2017년 6월 27일 10:30~12:3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회의실
진행·정리 이종률·김남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관리실 / 사진 이진욱 사진작가

민주누리 이번호에서는 6월항쟁의 역사적 좌표와 현재로서의 촛불혁명을 살펴보고, 민주화 30년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는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과 뒤를 잇는 기획 원고들은 사업회 내 연구소에서 지난 6월 7, 8일 양일간 개최한 학술토론회를 갈무리하는 의미도 있다. ‘6월항쟁과 11월 촛불혁명: 반복과 차이’를 주제로 발제를 한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사회를 맡았던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두 분을 모셨다.

이종률
숨을 고를 겸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실용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관해 질문하겠다. 6월항쟁에서 ‘항쟁’의 영어 표현으로 무엇이 적합한지 두 분 교수님의 학자적 견해를 듣고 싶다. Struggle, Uprising, Resistance, Strife 등이 있고 이전 정부에서는 Democratic Contention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손호철
기술적 영역의 문제를 생각하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러나 말이 어떻게 번역되느냐는 영어 표현 문제 이전에 하나의 언어 정치의 문제다. 6월항쟁이 가지는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이를테면 여순사건을 ‘여순반란’이라고, 5·18민주화운동을 ‘광주폭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분명히 정치적 목적이 있다. 5·18의 경우 과거 민주화운동이냐 민중항쟁이냐 논란이 있었지만, 오히려 급진적 이미지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광주 스스로가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러주기를 원했다.

영어 어휘와 6월항쟁의 의미를 생각하면 Uprising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Democratic Contention이나 Democratic Struggle은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이미지와 치열성을 희석시킬 수 있다. Strife는 갈등의 이미지가 커 적절치 않다고 본다.

정근식
항쟁은 저항과 투쟁을 합친 개념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대규모 투쟁들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는 당시 시민·민중들이 자기들의 의사를 합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어느 정도 주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또 한 가지 기준은 정형화되고 조직적인 동원이 이뤄졌는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조직이 약한 상태에서 집합적인 저항 형태로 나타났는가이다. 이러한 기준들이 대규모 민주주의 투쟁을 명명할 때 중요하게 작동한다.

5·18과 6월항쟁은 Uprising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집회·시위의 자유 수준과 권력의 억압 정도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동일하게 번역하기엔 어감이 마뜩지 않다. 막상 우리가 원하는 내용 전체를 짚어내는 아주 적확한 영어 표현이 없는 것 같다. 사회적 토론이 더 필요하다.

손호철
물론 체제가 억압적인 경우 저항의 움직임이 더 많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권력의 억압 정도를 민주화투쟁의 수준을 결정하는 척도로 생각하면 ‘이번 촛불은 항쟁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5·18이나 6월항쟁 때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제도가 성장했고 언론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제도의 정치적 틀을 넘어섰기 때문에 항쟁이라고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핵심은 제도정치를 넘어선 저항이다. 한국어로 가장 중립적인 표현은 민주화투쟁 정도가 되겠다.

이종률
영어든 한국어든 민주화투쟁의 명명에는 더 토론이 필요하다고 정리하겠다. 항쟁과 혁명의 차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린다.

손호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모두 다 민주화투쟁이고, 제도적 틀을 벗어나 거리로 나와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항쟁이다. 현대사에서 민주화투쟁은 계속 있었지만, 항쟁은 예외적으로 몇 번 정도가 있다. 6월항쟁, 4·19, 5·18이 모두 항쟁이고, 그런 의미에서 촛불도 항쟁일 수 있다.

그런데 항쟁과 혁명은 다르다. 차이는 무엇일까. 항쟁은 기본적으로 기존 질서의 민주화, 예를 들면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것이다. 혁명이라고 하면 단순히 정권교체나 제한된 민주화가 아니라 정치 질서, 사회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4·19를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승만 하야의 1기 이후 냉전적 반공질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려는 노력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가자 38선으로’를 기치로 내건 통일운동도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 피살자 유가족들의 명예회복도 시도되었으며, 거창 양민 학살사건에 관여했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전교조 등 노동운동의 강화 등 급진적 움직임이 드러났다. 물론 이것들이 실패로 끝나서 미완의 혁명이라고 부르기는 한다.

정근식
항쟁과 혁명은 주체와 규모의 측면에서 볼 때 큰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혁명이라고 할 때는 확실히 규모 문제, 대규모 시민 참여 여부를 따진다. 또한 혁명이라 이름 붙일 때는 역사의 합법칙적 발전을 촉진시키느냐를 보는데 항쟁은 이에 대해 덜 강조한다. 혁명이라는 문제를 역사철학적 측면에서 보면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 4·19혁명 당시 시민들이 탱크에 올라타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손호철
앞서 말했듯 혁명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결과와 요구사항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봤을 때 촛불집회의 경우 쟁점이 될 수 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공동 대변인인 안진걸(45)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얼마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촛불집회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완성된 혁명”이라 표현했지만, 답은 네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성공한 항쟁, 둘째는 미완의 항쟁, 셋째는 성공한 혁명, 넷째는 미완의 혁명이다. 이번 촛불집회의 목표를 단순하게 박근혜 퇴진과 정권교체로 보면 둘 다 이뤘다. 6월항쟁은 직선제 개헌에는 성공했지만 2차적 목표인 민주정부 수립에는 실패했으니, 어떻게 보면 6월항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드 문제처럼 아직 해결되지 않은 요구사항들도 많다. 우리나라의 고장난 대의민주주의를 고쳐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고, 헬조선 문제를 푸는 근본적인 문제들도 있다. 따라서 촛불집회는 미완의 현재진행형인 혁명이라 볼 수 있다.

정근식
촛불집회 지도부의 명칭은 ‘퇴진행동’이다. 퇴진이라는 초기 프레임을 탄핵 국면까지 가져간 것이다. 명명의 경우 일련의 사건이 다 끝난 다음 종합적 평가 차원에서 붙여지기도 하지만, 전개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시적 평가 개념이 그대로 유지되기도 한다. 사후 역사위원회 등에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과정에서 혁명이라는 이름을 획득하게 되면 관성적으로 이름이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명명의 기준은 수단과 목표일 수도 있고, 직접적 영향력 또는 장기적 효과일 수도 있다. 이런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이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촛불의 경우 대통령 탄핵 이후 제1야당이 집권했다. 대규모의 시민적 참여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하더라도 여당에서 야당으로, 제1정당에서 제2정당으로 바뀐 경우는 혁명성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존재하지 않던 정치세력이 등장하면서 정당이 등장하고 그 정당이 집권하면 혁명성이 강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위는 혁명과 항쟁 중간 정도에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촛불항쟁이냐 촛불혁명이냐 논란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6월항쟁 당시 서울 시내 도로에서 학생들과 전경이 대치하고 있는 현장

손호철
혁명과 항쟁의 중간쯤 있다는 고민은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쿠바혁명이나 프랑스의 유월혁명처럼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 않아도 혁명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백승욱 교수는 촛불집회의 혁명적인 에너지가 정권교체로 흡수되면서 제도정치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아 혁명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개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의미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하고, 정 교수님의 이야기도 비슷한 취지로 들린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이번 촛불 속에 혁명적 계기가 들어 있었으나, 퇴진행동이 너무 비대하게 여러 세력을 모으는 데 치중함으로써 대선국면에서 그러한 에너지나 요구조건을 제대로 반영시키지 못했다고 본다. 대선국면에서 모든 집회가 금지되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퇴진행동이 정치개혁,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대의제 민주주의 강화, 탈헬조선 문제 등을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대선주자들에게 ‘이러한 촛불의 요구를 대선주자들이 받아라, 아니면 낙선운동 하겠다’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한다. 초기에는 그런 혁명적 에너지가 있었는데 에너지를 조직화하지 못 하고 흐지부지 날려버린 것 같아 아쉽다. 더 설명되어야 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집회의 혁명적 에너지를 받아 수행해낼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게 지켜볼 지점이다. 만약 수행한다면 혁명에 답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항쟁으로 끝나거나 실패해서 ‘유산된 혁명’이 되는 거다.

확실한 건 혁명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붙이는 미사여구나 폼 잡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역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혁명이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회과학적으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정근식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계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다가, 탄핵이라는 법적장치에 의존하게 된 변화 같은 것이다. 그게 에너지의 문제인지 제도적 장치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한 촛불에 다음 대선을 생각하는 움직임이 드러난 것이 언제부터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적 양극화, 세월호 문제 해결 등 변하지 않았던 요구도 있었다. 부분적으로 중요한 변화의 계기들을 찾아서 촛불의 혁명성을 따져봐야 한다.

또 하나, 나이든 사람들은 촛불의 초기국면에서 6월항쟁을 떠올리며 참가했고, 젊은 친구들은 촛불을 통해 6월항쟁을 추체험했다. 회고와 추체험의 만남을 통해 역사와 현재가 만난 것이다. 6월항쟁 때의 시행착오적 경험이 촛불 국면에서도 분명히 작동했다. 과거와 현재가 어떤 방식으로 만나 미래를 구성하는가 하는 측면도 촛불에 대해 논의할 때 생각해봐야 할 측면이다.


✽ 6월항쟁 당시 연대 앞 도로에 손을 맞잡고 누워 시위하는 학생들과 학교 출입구쪽에 늘어선 전경들

이종률
6월항쟁 당시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였는데, 구호가 전국화되고 성공했지만 개헌국면까지 가면서 보니 국본 지도부가 개헌의 내용에 관여하지 못했다. 급속하게 대선국면으로 가면서 제도권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었다. 양김분열을 초래해서 대선에서 군사정권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낳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직선제 쟁취, 지방자치제 도입, 국정조사권 부활, 헌법재판소 설치 등 제도적 성과가 분명 있었다. 이러한 민주적 제도화는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과 헌법개정 등의 과정을 통해 한층 심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촛불혁명의 결과로 요구해야 할 것, 제도적 성과로 꼭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손호철
좋은 지적이다. 6월항쟁의 경우 직선제에는 성공했지만 양김이 분열하면서 군사정권을 연장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비극적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 변화의 모든 것이 87년 6월항쟁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촛불은 박근혜 탄핵만이 아니라 정권교체에도 성공했으므로 단기적으로는 6월항쟁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중장기적으로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물론 87년의 경우 군사정권하에서 워낙 출발점이 낮아서 성과가 컸던 측면이 있다. 반면 지금의 의회는 촛불하고는 상관없이 만들어졌고, 여소야대의 틀 아래에 있으며,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아직 근 3년 남짓 남았다.

그래서 더더욱 정치권이 촛불의 과제와 국민의 요구를 들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수술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는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대의제 민주주의의 파국을 가장 잘 보여준 사태다. 다행스럽게도 탄핵에는 성공했지만, 그동안 아무런 견제를 못 하고 3년 이상 지켜봐왔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역동적이고 사회운동이 모범적이라며 부러워한다. 그러나 정치는 세계에서 3류라고 평가받는다. 동전의 앞뒤 같은 관계다. 제도정치가 정상화되어서 한국이 자랑하는 거리정치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직접민주주의를 극대화해야 한다. 주민소환제, 주민발안제, 참여예산제를 적극 도입해서 국민의 참여를 높여야 한다.

또한 개헌보다 중요한 것은 선거제도의 개혁이다.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퇴진행동의 핵심 단체 대부분이 요구한 것처럼, 선거연령을 낮추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일이 절실하다. 현재 보수 지역정당과 군소 진보정당의 표차가 4대1이다. 보수정당이 4표를 가질 때 진보정당이 1표를 얻는다.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의원선거구별 인구편차 3대1 이상은 위헌적이라고 했으니 이미 위헌적인 것이다. 이를 바꾸려면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해야 한다. 또한 대선은 결선투표제로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 사상 최대 득표차이로 승리했다고 하는 문재인 대통령도 ‘40프로 대통령’이다.

물론 개헌도 중요하다. 개헌을 정치권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새로운 공화국, 우리가 살고 싶은 공화국은 무엇인가라는 비전을 시민들 스스로가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하는 정부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발본적인 기본권 문제를 사회적으로 함께 고민해야 한다.


✽ 6·10국민대회 당시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와 경찰 병력

정근식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을 한다는데 개정 내용에 ‘새로운 공화국’에 대한 상이 어느 정도 담겨지느냐에 따라 촛불이 혁명이냐 아니냐 하는 것도 판가름 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남북분단의 네 가지 문제가 6월항쟁과 촛불을 비교할 때 다룰 수 있는 중요한 주제다. 이 중 정치 문제는 손 교수님이 잘 정리해주셨으니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다.

6월항쟁 당시는 1인당 국민소득이 약 2500불 시대였는데, 지금은 25000불 정도다. 10배 정도의 소득차를 감안하지 않은 채 대규모의 혁명/항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2500불 시대와 25000불 시대의 정치투쟁이 어떻게 다를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당시는 끊임없이 성장을 하던 시기라서 지역적 균열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지금은 지역보다 사회적 균열이 더 중요하다. 사회적 균열을 어느 정도 치유 극복할 수 있는가가 촛불의 혁명성과도 연관이 있다.

마지막으로 남북 문제다. 6월항쟁을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가장 근본적 동기는 군사정권을 연장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노태우가 북방정책으로 성과를 이룬 것도 사실이다. 북방정책으로 남북공동합의서와 탈냉전이라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당시 한국은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상화 했는데 북한은 미국이나 일본과의 수교를 정상화하지 못해서 지금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때만 해도 한국정부나 시민운동권이 남북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지금 와서 보니 너무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오히려 남한이 북미수교를 강하게 밀고 나갔다면 평화에 더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민족 문제 측면에서 보면 이번 촛불이 과연 이러한 비대칭적인 탈냉전을 대칭적 탈냉전으로 끌고 가서 한반도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느냐도 과제라고 본다. 그 부분에서 과연 미국 중국 문제에 발목 잡혀 상당한 정도의 혁명적 전환을 이룰 수 있을지 걱정이다.

손호철
6월항쟁 이후 북방정책을 6월항쟁의 결과나 성과로 보는 것은 과잉이다. 군부 독재가 계속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세계적인 탈냉전 추세와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을 고려한다면 북방정책은 성공했을 것이다.

6월항쟁을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이유가 군사정권 연장 때문이라는 점도 의문이다. 만일 양김이 분열을 안 해서 김대중씨나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됐으면 혁명인가? 그렇지는 않다. 양김분열은 87년 12월의 문제지만, 7~8월부터 이미 항쟁이라고 불렸다.


✽ 지난 4월 29일 열린 마지막 촛불집회의 포스터

정근식
사학자들의 객관적 사후평가와 당시 상황에서 이루어진 명명은 서로 다른 문제다. 만약 12월에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명명이 달라졌을 수 있다는 말이다. 손 교수님은 혁명은 객관적이고 학자들의 냉철한 평가에 기초해서 명명해야 한다는 것이고, 나는 혁명, 사태, 항쟁의 개념 분류는 사회적으로 투쟁 과정에서 배태되는 것이 많다는 주장이다.

손호철
촛불에는 딜레마가 있다. 과거 6월항쟁은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가던 시절이니 개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동북아의 위기 국면이다. 특히 중요한 것이 사드 문제인데, 이것을 문 정부가 풀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촛불에 냉전체제의 해체를 기대하는 것도 너무 지나친 요구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전에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인식의 틀에서, 6월항쟁과 촛불에 분단 체계까지 연결시키시는 문제의식이 새롭다. 그 부분을 보니 더 비관적이 되어 간다.

이종률
두 분 의견이 부딪치니 더 흥미롭다. 촛불이 청산을 요구하는 적폐에는 헬조선 등 사회적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손호철
촛불에 가장 기여한 사람을 한 사람 뽑으라고 하면 ‘정유라’라고 생각한다. “돈 많은 부모 만난 것도 실력”이라고 하는 정유라의 표현이 국민적 분노를 전국적으로 폭발시킨 기폭제가 된 것이다. 헬조선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뒤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왔다. 오바마 뒤에 온 것은 트럼프다. 정권은 교체했지만 그 사람들이 헬조선, 헬아메리카 문제를 해결 못 해 다시 뒤집힌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김대중을 찍었는데 2007년 대선에서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이명박을 찍었다. 그만큼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힐러리는 완전 월스트리트를 대변하는 인물로 상징된다. 이번 촛불로 박정희 향수가 약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헬조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박정희 향수가 다시 살아나 한국판 트럼프가 나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잘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주의는 불평등과 불공정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불공정성 문제는 상당히 해결될 것으로 보이는데 불평등까지 가능할까 하는 점에서는 우려가 된다.


✽ 23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불법사드 원천무효”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근식
헬조선 문제를 해결하려면 필연적으로 일자리와 교육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서울대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서울대로 상징되는 고등교육 체제의 전환과 대학개혁에 관심이 많다. 대학이 사회개혁을 위해 내놓아야 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대학이 성취한 성과를 보장하는 국민적 합의도 필요하다.

손호철
우리나라에서 정책적 의도와 결과가 정반대로 된 최악의 분야 중 하나가 바로 교육이다. 교육평준화는 차라리 교육계급화 정책이었다. 예전에는 형편이 어려워도 공부 잘하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아예 위장전입을 하기 때문에 격차가 더 커졌다. 강남도 통합학군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나치게 혁명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미국은 1960년대에 흑인학교와 백인학교를 통합할 때 주방위군과 경찰이 무장하고 학생들을 에스코트했다.


✽ 2015년 12월 3일 열린 ‘헬조선, 노동개악 주범 새누리당 규탄’ 기자회견 퍼포먼스의 모습 ©연합뉴스

이종률
마지막으로 통일 문제에 대해 듣고 싶다. 청년실업 등 경제 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있는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근식
한국 자본주의 돌파구로서의 북한 시장론은 위험하다. 오히려 요즘에는 통일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공존과 협력, 자유로운 왕래와 상생 등의 개념으로 대체하자는 의견이 많다. 다만 남북이 우리끼리의 문제를 실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북한이 미국에 너무 노이로제가 있어서 자유롭게 상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안타깝다.

손호철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최고의 통일 세력은 한총련도 통일단체도 아니고 재벌이었다. 일자리나 진보적 시각에서 탈출구로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저도 비판적이다. 북한 건설을 주장하는 것은 사대강 사업처럼 ‘노가다 뉴딜’의 한반도판이다. 북한 시장이 한국의 좋은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논리도 나올 수 있다. 한국 자본 입장에서는 북한이 시장이고 새로운 돌파구일 수 있는데, 한국 노동이나 서민 입장에서 북한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일수 있겠는가 하는 측면에서는 회의적이다. 정 교수님 말처럼 상생, 공존, 평화공존 등의 프레임이 핵심 화두가 되어야 한다.

남북 문제와는 상관이 없지만 마지막으로 촛불연정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아까도 말했듯 국회는 촛불 민심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유럽처럼 국회를 해산할 수는 없으니, 우회해서 대통령령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시행령 개정 수준으로는 절대 촛불의 민심을 다 담을 수 없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촛불연정으로 국회를 정상화해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정말 잘 하고 있고 압도적인 국민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인사에서는 총리 인선부터 꼬였다고 본다.

국민의당에 호남 출신 인사 추천권을 줬으면 저절로 연정이 실현되었을 것이다. 독식주의를 철저히 버려야 한다.

이종률
6월항쟁 30년 학술토론회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 주셨다. 독자들에게는 가독성 높은 좌담이 될것으로 본다. 두 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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