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전망 45호
책머리에(김항)
벌써 2년인데, 아직 2년일지도 모른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예외 상황 말이다. 마스크, 영업제한, 비대면, 체온 체크, 손소독, 큐알, 그리고 백신접종 등 이제 예외 조치는 신체화된 감 마저 있다. 논란도 많았다. 저 일련의 예외 조치들이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위한 정당한 통치권 행사인지 아니면 기본적 권리에 대한 부당한 침해인지 말이다. 물론 미증유의 전 지구 적 재앙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금, 기본권 침해라 는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통치권의 적극 대응이 여전히 논란거리임은 변함이 없다. 통치권의 결 정에 따라 일상은 진폭을 거듭하고, 결정의 근거를 두고 다양한 논란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필요는 법을 모른다(Necessitas non habet legem)”란 오래된 격언, 혹은 “국가 이성(raison d'état)이란 공익을 위한 관습법의 위반”이란 전통 적 정의가 떠오른다. 이 격언과 정의는 통치권이 법이나 관습 과 대립하면서 스스로의 궁극적 형상을 획득함을 말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주권국가는 통치권과 법률 및 관습 사이 의 충돌이 근원적으로 내장된 체제이다. 즉 목적 실현만을 아는 기술 합리성과 역사 속에서 축적된 규범 의식이 불안한 동거 상태를 이루는 체제인 셈이다.
새삼 국가 이성과 예외 상태 등을 거론하는 이유는 통제냐 자유냐를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간절히 회복되길 바라는 일상이 어떤 일상일까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현재의 글로벌한 상황을 ‘책임화(responsibilization)’라는 개념으로 포착한 바 있다. 개인이 책임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구조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특히 최근 들어 의료, 고용, 교육, 양육 등 공공적인 인프라가 필수적인 영역에서 책임화는 두드러진다. 이랬을 때 세계는 개인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상호 돌봄으로 이뤄지는 공생(共生) 사회가 아니라, 취약함을 죄악시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이들을 버려두는 기민(棄民) 사 회가 된다. 자기와 타인에 대한 가혹한 채찍질이 일상화되는 셈이다. 간절히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일상은 어땠을까? 책임화가 철저하게 관철되던 일상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립이 불가능한 조건 속에서 자립을 강요받는, 실패와 좌절을 자신의 스펙과 노력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일상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과연 그런 일상으로의 회복을 원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이런 일상은 현재 전개되는 통치권의 예외 조치라는 패러다임 위에서 성립했다. 생각해 보면 한국 현대사는 예외 상황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독재, 쿠데타 등으로 얼룩진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법률과 관습은 위반되기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한국의 일상은 목적-수단의 기술합리성 위에서 영위되었고, 민주화조차도 그런 일상을 근본에서 변화시키지 못했다. 정치적 자유는 무한한 이익 추구를 위한 권리로 귀착되었고, 시민 연대는 경쟁에서 살아남아 자격을 얻은 자들로 한정된 지 오래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은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은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팬데믹은 책임화가 사회 그 자체를 붕괴시키는 패러다임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의 취약함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공공적인 상호 돌 봄 없이 사회는 성립 불가능함을 일깨워주었다. 물론 현재의 상호 돌봄은 의료 노동의 과부화란 왜곡된 시스템 속에서 간신히 기능했다. 이제 회복 될 일상은 국가에 외주를 주면서 유지되는 상호 돌봄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즉 통치권의 예외 조치로 이뤄진 상호 돌봄을 일상 속에 새롭게 뿌리내리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호 특집을 “권위주의적 통치와 저항”으로 잡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통치와 저항은 독재와 민주 주의라는 프레임 속에서 전유되어 왔다. 하지만 통치에 대한 저항은 기술합리성과 책임화에 대한 저항이었고, 새로운 공생의 규범과 관습을 창출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은 공생 사회 의 파괴였다. 통치와 저항의 역사를 이런 측면에서 독해함으로써 도래할 새로운 일상의 상상력을 키우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다.
여기에 덧붙여 대선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다양한 의제들이 쟁점화되는 가운데 군사정권에 대한 평가 또한 빠지지 않고 논란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유력 후보들의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한 평가가 지지를 가늠하는 주요 쟁점이 되는 형국이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권위주의적 통치와 저항은 여전히 유의미한 주제다. 특히나 군사정권의 공 과가 독재와 경제성장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전유되는 현재의 구도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지극히 단순한 역사 인식 속에 가두어 버리기 십상이다. 하 지만 권위주의적 통치란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마주하면서 이후 다양하게 분기할 문화정치적 흐름이 주조되는 매트릭스였다. 가두어 묶으려는 힘은 빠져나와 도망치거나 대립하려는 힘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두 힘의 마주침은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사회 곳곳에 균열을 만들어 그 틈을 타고 다 양한 삶의 리듬이 형성된다. 한국사회의 ‘현재’는 그런 리듬이 복잡하고도 중층적으로 얽힌 그림이다. 그렇기에 이번 특집은 현재 한국사회의 내력을 통치와 저항의 마주침 속에서 그려봄으로써 대선 국면에서 자칫 단순화되기 십상인 현대사 인식을 입체화하는 의의 또한 가질 것이다.
우선 홍태영은 박정희 시대의 통치성을 민족주의의 전면화로 특징짓는다. 민족주의는 통치, 경제, 문학, 역사, 문화 등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지배적 규범이자 담론이었고,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세력도 그 울타리 밖으로 나아가기는 불가능했다. 한 편에서 통치가 주도하는 동원을 위한 민족주의가, 다른 한 편에서 민중을 경유한 공생 사회를 향한 민족주의가 있었다. 그리하여 민중 중심의 민족주의는 1980년대 민중의 시대를 예비한다. 민족주의를 둘러싼 긴장을 다차원적으로 살펴보면서 통치와 저항의 결절 점을 세심하게 일별하는 손길이 돋보이는 논문이다. 다음으로 김보현은 해태제과 여성들의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에 초점을 맞춰 노동으로 환원된 삶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복원한다. 이를 통해 민주노조운동 혹은 노동 운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여성 노동자들의 운동이 되살아났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에서 비롯된 자신들의 일상적 고통과 무의미한 삶에 변화를 주 기 위해 저항을 조직했다. 그래서 이중의 저항이었다. 자본에 대항하면서도 자본과 이익을 공유하는 남성들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기에 그랬다. 자본과 젠더 질서의 교차성을 역사적으로 성찰하는 탁월한 논의이다. 이재성은 87년 6월항쟁까지의 저항을 ‘저항주기(cycle of protest)’라는 개념으로 재검토하여, 6월항쟁 연구를 갈등의 심화, 대중동원의 증가와 확산, 사회 운동 ‘프레임(frame)’의 등장과 변형, 대립하는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 저항 의 종결 등의 과정으로 실증 분석하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개헌운동과 5·3 인천항쟁이 새롭게 조명된다. 실증적인 검토를 생략한 채 6월항쟁으로 일괄되었던 당대의 흐르을 실증자료를 구사하여 세세하게 조망하는 범례적 연구로 손색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준영은 서울 도심을 지배의 공간으로 상정하고 학생운동 세력과 진압 경찰 사이의 무력 충돌을 분석 한다. 기존 논의가 시위의 주체, 정치적 배경, 사회경제적 맥락 등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 논문은 학생운동 세력이 전투 조직을 상시적으로 운영 하게 된 배경과 그로 인한 진압 경찰의 중무장화 등을 다룸으로써 1990년 대 학생운동을 색다른 각도에서 조망한다. 말하자면 ‘시위의 현상학’이라고 할까. 폭력 시위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해 온 기존 접근과 달리 폭력 시위 자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수단이 목적을 규정할 수 있다 는 소중한 성찰을 담고 있다.
기획 논문으로는 “아시아 민주화운동과 그 후”라는 주제 아래 두 편의 논문을 실었다. 최규연/박한비는 2019년 이래의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를 의례이론의 관점으로 조명한다. 뒤르케임 사회학의 다양한 개념을 활 용하면서 홍콩 시위를 집합 열광의 경험으로 이론화하는 참신한 시각이 돋보인다. 많은 기존 논의들이 주요하게 다뤘던 홍콩 고유의 맥락이 후경에 밀리면서, 이론적 분석과 프레임화가 전면에 등장하는 과감한 시도이다. 시위 참가자들의 정동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생생한 보고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다룬 박은홍의 논문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본격적인 분석으로 글로벌한 차원에서 민주화를 고민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문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지해방운동을 기원으로 하는 미얀마 군부 ‘땃마도’의 역사적 형성 과정 및 정신세계를 요령 있게 개괄한 뒤, 이 논문은 현재 미얀마의 상황이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 는 땃마도의 ‘수호자주의’에서 기인한 파국으로의 돌진임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식민지를 지배, 탈식민화, 군부독재, 민주화를 거쳐 다시 가혹한 군사정권으로 회귀하는 미얀마의 현 상황을 19~20세기 글로벌 체제가 현 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증좌로 읽어내야 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미얀마뿐 만 아니라 도처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는 변신을 거듭하며 굳건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일반논문으로는 시의성 있는 논의를 비롯하여 역사와 문학을 넘나드는 비평적 논의를 담은 5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희영·정성조·정다울은 팬데믹 상황 아래 한국의 방역정책이 성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어떻게 온존시켰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 아래 개방적이고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평가받는 한국 방역정책은 성소수자를 시민의 범주 바깥에 내모는 구조를 내포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협조하여 이뤄낸 방역 조치에서도 성소수자의 성은 방역의 필요성 아래에서만 취급되었다. 한국사회의 시민 형상이 어떤 것인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착찹한 분석이다. 박서현은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 운동에서 등장한 제주도청 앞 천막촌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운 시민운동의 출현을 분석한다. 천막촌 운동에 참여한 주민들과 시민사회활동가를 포함한 다양한 주체들 의 활동 양상을 통해 네트워크화된 커먼즈운동으로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운동을 이해하자는 제언이 참신하다. 노용석은 경산코발트광산의 사례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국가 수립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적 갈등을 다룬다. 코발트광산은 식민지 시기 일제의 한반도 수탈과 강제징용을 상징하는 장소였으며, 한국전쟁에서는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장소였다. 논문에서는 이런 중첩된 역사 기억을 재구성하고 과거사 청산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사례연구를 통해 보편적 성찰로 사유를 이끄는 솜씨가 매우 탁월하다. 안현효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과 『반일종족주의』 에서 ‘신우파 경제학’의 퇴행적 진화 과정을 분석한다. 두 저작은 민족주의를 배타적 종족주의로 규정하면서 매서운 비판을 전개한다. 하지만 논문에서 두 저작의 비판은 실증을 강조하면서도 중진자본주의론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힌 신우파 경제학으로 인해 퇴행적으로 좌초함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사실과 실증이 이데올로기를 감추는 클리쉐로 전락하는 과정이 날카로운 분석으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역작이다. 이행선은 최창학의 원폭 문학 「해변의 묘지」를 분석한다. 최창학의 소설은 1980년 한일정부 합의 하에 일본에서의 치료가 가능하게 된 시점에서 한국인 피폭자의 역사를 그려냈다. 논문은 당대의 정세와 맞물린 작가의 전략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양한 자료와 깊이 있는 비평적 시선을 통해 부조해 낸다. 문학이 눈앞의 현실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지층을 어떻게 표상했는지를 음미할 수 있는 역작이다. 시론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미국 패권의 변화를 다룬 공민석의 옥고를 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미국 예외주의의 역사를 재검토 하고 중국의 부상이 글로벌 질서, 특히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국제질서를 어떻게 변화시킬것인지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다룬 시의성 있는 논의가 돋보인다. 특히 한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기 십상인 담론 지형 속에서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관점으로 현재의 지정학적 정세를 다룬 관점은 신선함과 동시에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번 호 마지막을 장식하는 회고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인터뷰다. 국가 권력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산산조각 냈는지, 읽으면 읽을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음을 고백해 둔다. 1991년 5월 투쟁 중에 일어났던 김기설 분신 사망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주인공 강기훈 님과 본지 편집위원 권영숙이 만났다. 소개는 생략하고 싶다. 그저 일독을 권해드린다. 어떤 말도 강기훈 님의 시간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그저 죄송스럽고 또 죄송스럽다. 조작을 주도한 자들이 여전히 잘살고 있음을 생 각하니 다시금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
저물어가는 2021년 끝자락에 편집위원을 대신하여
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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