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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와 한국의 역할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났다. 4월 3일 기준 군부 쿠데타 이후 어린이 40명을 포함해 최소 5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미얀마 시민의 불복종운동과 평화시위에 대한 군부의 대응은 더욱 잔혹해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우선 현 미얀마 사태를 1988년 ‘양곤의 봄’에서 시작된 미완의 혁명과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웅산 수치를 중심으로 한 오랜 민주화 투쟁으로 2015년 비로소 NLD(민주주의민족동맹,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한계는 명확했다. 2008년 헌법은 군부의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보장하고 NLD 민간정부와 사실상 권력을 공유하는 구조를 낳았다. 국회의석의 25%는 군부에 할당되었으며 치안, 국경수비, 국방 등 주요 장관직은 군부가 맡았다. 이러한 불안정한 권력 구조 속에 로힝야족에 대한 사실상의 ‘인종청소’가 자행되었고, 개혁은 지체되었으며, 아웅산 수치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지난해 실시한 총선에서 NLD가 압승했지만, 군부는 부정선거를 이유로 ‘헌법에 기초한’ 쿠데타를 전개했다. 88운동이 경제난을 불러온 군부통치에 대한 저항의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은 군부 통치 종식과 함께 불완전한 민주화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소수종족에 대한 탄압은 민주주의 한계를 의미한다. 현재 소수종족 무장단체는 불복종운동을 지지하는 한편 군부를 상대로 한 공동 투쟁을 모색하고 있다. 식민통치의 유산인 소수종족의 문제는 국가적 통합과 민주주의 이행의 큰 걸림돌로 작용했으며, 군부는 권력 유지를 위해 이러한 소수종족의 문제를 이용해왔다. 이번 미얀마 민주화 항쟁 과정을 통해 소수종족들은 종족 간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대중적 참여도 두드러진다. 88운동 이후 전개된 민주화운동이 아웅산 수치가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특정 지도자나 조직이 주도하는 것이 아닌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집단지성의 힘으로 불복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쿠데타 발생 직후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은 미얀마 시민들이 과거 군부 탄압을 기억하기에 쉽게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거나 냄비를 두드리는 소극적 저항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들은 용감하게 거리로 나섰다. 88년 전단지에 의존하던 의사소통은 이제 SNS가 대체했다. 군부가 인터넷을 통제하고 있지만 우회 접속을 통해 미얀마 전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공유되고 해외에 실상이 전해지고 있다. 투쟁과 연대의 방식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군부는 더이상 시민을 고립시키고 진실을 은폐시킬 수 없다.

미얀마 시민들의 분노는 민주화에 대한 강한 확신과 신념에 기반하고 있다. 독립 이후 대부분의 기간을 군부통치 하에 보낸 미얀마 시민에게 있어 민주화 투쟁을 통한 2015년 문민정부의 출범은 민주주의 승리의 경험이었다. 민주주의를 경험한 시민들은 더는 과거로의 회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국내 여건의 변화 속에 국제사회에 대한 요청은 구체적이다.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사회에 현 군부(SAC)를 인정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군부를 헌정을 파괴한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이에 국제사회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아울러 군수물자 수출에 대한 금지와 군부의 자금줄이 될 수 있는 투자 및 기업 활동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군부 비판 선언문이 아닌 ‘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Photo by Gayatri Malhotra on Unsplash 


미얀마 민주화에 있어 국제사회의 책임과 한국의 역할

미얀마의 요청에 국제사회의 책임은 무겁다. 미국, EU 등의 국가는 무기수출 금지, 군부의 해외계좌 동결, 개발협력지원 중단 등 제재를 도입했다. 민주화운동을 통해 민주주의 발전을 이룬 한국은 현재 미얀마 상황에 대한 아픔을 공유하고 시민 불복종 운동에 대해 남다른 지지와 연대 의식을 가진다.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시민사회는 가장 먼저 미얀마 사태에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 시민사회단체모임을 결성하고 미얀마 군부 규탄과 국제사회 동참을 호소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것이다. 지방에서도 미얀마 시민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고 군부를 규탄하는 다양한 캠페인과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국회가 미얀마 쿠데타를 비난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성명을 채택한 데 이어 정부도 군용물자 수출 금지와 전략물자 수출 허가 규제 강화,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국제개발협력 사업 재검토 방침을 밝혔다.

한국 정부도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 정부는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위해 다음의 역할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얀마 사태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대응을 위해서는 시민사회, 연구자, 정부 등이 함께하는 정책 연대체 구성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미얀마 사태는 식민통치의 유산, 소수종족의 역사적 반목, 군부 통치의 정치경제적 구조, NLD의 국정운영능력 등 다양한 요인을 포함하며 대외적으로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유엔과 아세안 등 국제기구의 역할 등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이다. 미얀마의 지역적 맥락을 이해하고 다각적 논의가 가능할 때 자국의 이해관계 또는 경제적 이해를 위한 수단에 국한되지 않고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연대체와 더불어 시민단체, 학계 및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플랫폼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언론보도와 SNS를 통해 미얀마 유혈사태를 접한 일반 시민들의 미얀마 사태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매우 높다. 그들 역시 구체적으로 지지 및 연대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층위와 지역에서 분절적으로 전개되는 미얀마 민주화 지지 활동을 공유하고, 미얀마 사태에 대한 정보 교류, 캠페인 활동,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원을 위한 특정 목적의 모금운동을 전개할 수도 있다. 시민참여 플랫폼은 기업의 미얀마 사태와 관련한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적극적 국제연대의 모색이다. 유엔, 지역, 개별국가 등 다양한 국제관계 차원에서 미얀마 사태를 글로벌 이슈화하고 소극적인 대응을 보이는 정부들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오랜 군부 통치를 거치면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비난 성명, 그리고 군부 지도자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국제제재는 군부 통치 종식에 효과적이지 못했다. 보호책임(R2P)을 군사행동에 초점을 맞추거나 국가 역할의 재건에 국한한다면 국제사회의 대응은 지연되거나 불가능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개인의 권리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고려하되 다양한 층위에서 비군사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군사정권을 최대한 압박하는 전략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국제형사법원 제소를 추진하고 세계은행 등을 통한 개발 자금 통제를 모색하는 한편, 아세안과 개별국가를 아우르는 다양하고 적극적인 정부 간 협력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중국, 인도 등 미얀마 사태에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가들에게도 전향적인 정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얀마 내부에서 반중국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미얀마 내에서의 중국의 입지를 위협하는 것이다. 미얀마 사태의 악화는 중국의 지역 전략 전개에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다. 이에 중국도 최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미얀마 군부 규탄 성명을 막지 못했다. 미얀마 사태에 침묵했던 인도 정부가 최근 비판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인도 국내 비판 여론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군부 쿠데타 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태국도 미얀마 군부의 유혈진압을 비판하고 나섰다.

아세안도 과거 ‘건설적 개입’ ‘강화된 상호작용’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얀마 군부와의 접촉을 인권유린 중단을 위한 대화 창구로 활용하고 정상적인 회원국 권리를 제한하는 등의 조처를 해야 할 것이다. 아세안정부간인권위원회(AICHR)가 쿠데타 직후 즉각적으로 규탄성명을 발표했듯이 아세안 내부의 인권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층위의 단체와도 연대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미얀마 사태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위한 연대체 구성, 시민참여를 위한 플랫폼 마련, 국제연대강화를 통해 이른바 대중적 개입(public engagement)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얀마 사태를 지구적 차원의 위기로 인식시킴으로써 미얀마 군부통치 종식과 민주화를 위한 세계시민의 참여를 촉진할 것이며, 전 세계적 시민 연대는 미얀마 시민의 보호받을 권리를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형종(연세대 미래캠퍼스 국제관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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