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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말랄라> : 상식에 대한 공격에 대처하는 자세

<내 이름은 말랄라> : 상식에 대한 공격에 대처하는 자세

글 성지훈

“저의 목소리는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의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는 매일 커지고 있습니다.” - 말랄라 유사프자이

# 상식

2012년 파키스탄 스와트 밸리에서 열다섯 살의 말랄라가 총에 맞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이었다. 두 명의 남자가 다가와 말랄라에게 “네 이름이 말랄라냐”고 물었고 말랄라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곧바로 총을 쐈다. 말랄라는 왼쪽 머리와 목에 총상을 입었다. 말랄라를 쏜 남자들은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 소속이었다. 사건 직후 파키스탄 탈레반은 성명을 발표해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혔다. “여성이 세속적인 교육을 받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며 “율법에 어긋나는 세속주의를 설파하면 누구든지 우리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말랄라가 사는 파키스탄 스와트 밸리는 2009년부터 탈레반이 점령하고 있다. 그들은 이슬람 율법을 들먹이며 여성은 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했다. 말랄라는 ‘굴 마카이’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탈레반이 저지르는 만행을 고발했다.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었다. 탈레반은 말랄라가 계속 글을 쓰면 그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물론 그녀의 가족들도 죽이겠다고했다. 그러나 말랄라는 협박에 질려 글쓰기를 그만두는 대신 실명을 공개하고 BBC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결국 그녀는 탈레반이 쏜 총에 맞았다.

2015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일흔 살 노인 백남기가 쓰러졌다. 수만의 사람이 몰려있는 서울 도심 한복판이었다. 경찰 살수차는 백남기를 조준해 10기압의 물포를 직사했다. 10기압의 물포는 시속 160KM로 날아오는 야구공에 얻어맞거나 100m 높이에서 떨어진 물풍선에 직격되는 것과 똑같은 충격이다. 백남기는 두개골이 골절돼 뇌가 손상되는 중상을 입고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됐다. 경찰은 사건 이후 지금까지 물포 직사가 적법한 절차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과격한 시위”가 문제라는 것이다.

백남기는 전남 보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백남기가 서울까지 올라온 2015년 11월 14일은 서울에서 ‘민중총궐기’ 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농사꾼 백남기는 한없이 떨어지는 쌂값으로 농민들이 얼마나 힘겨워지는지를 알리고자 상경했다. 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추곡수매가 21만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백남기가 쓰러지던 2015년 말 당시 쌀값은 한가마에 12만원이었다. 개사료 80Kg보다도 싼 값이다. 수백만 톤의 쌀이 남아돈다며 쌀을 개사료보다 싼값으로 취급하던 정부는 3만톤의 쌀을 수입해왔다. 쌀 수입량을 더 늘리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애초에 약속했던 쌀값 인상문제는 언급도 없었다. 백남기는 지금의 쌀값으로는 농사지어 살아갈 수 없다는, 정부가 약속을 지켜 농촌과 농민들의 삶을 지켜야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했다. 백남기는 결국 정부가 쏜 물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 사망했다.

# 웃을 수도 없는

말랄라는 총에 맞은 직후 영국으로 이송돼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깨어난 후에도 그녀는 탈레반의 억압으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현실을 알려내는 활동을 이어간다. 그 활동으로 2014년에는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그러나 말랄라의 가장 큰 고민은 물리 시험과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학교 숙제다. 카메라는 인권활동가 말랄라의 활동과 꼭 같은 분량으로 말랄라의 쉽지 않은 학교생활을 비춘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61점짜리 물리 시험지를 감추고 파키스탄의 친구들에게 “영국 애들은 공부를 엄청 잘한다”고 하소연하는 평범한 17살 고교생 말랄라의 모습이다. 그건 말랄라의 목숨까지 앗아갈 뻔 했던 그녀의 주장이 사실 얼마나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공부를 하는 일이, 숙제하기 싫어서 몸을 베베 꼬는 일이, 책을 읽고 시험을 보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일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그 일상을 보고 있자면 총에 맞고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주장이란 게 ‘고작’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바람이라는 게 허망할만큼 웃긴다.

그러나 말랄라의 그 평범한 바람조차 ‘수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되면 마냥 웃고있을 수만도 없다. 파키스탄 옵서버(Pakistan Observer)는 노벨평화상 수상을 “정치적인 결정이고, 서방세력의 음모”라고 비난했다. “말랄라는 서방세력이 원하는 것을 판매하는 평범하고 쓸모없는 소녀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어떤 이들은 말랄라의 투쟁이 서방세력의 정교한 음모 가운데 일부분일 뿐이며, 말랄라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SNS에는 ‘말랄라드라마’(#MalalaDrama)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파키스탄인 일부는 말랄라가 파키스탄에 서구적 가치를 주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담아 ‘말랄라드라마’ 해시태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백남기는 쓰러진 후 바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1년 가까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백남기는 2016년 9월 25일 끝내 숨을 거뒀다. 경찰의 공권력 집행으로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언론은 백남기의 학생운동, 농민운동 경력을 제시하며 그가 불법 과격시위를 했기 때문에 물포 직격 살수는 불가피한 공권력 집행이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학생운동, 농민운동 경력이 있는 ‘평범하지 않은’ 농민이었다던 백남기가 그 날 주장했던 건 ‘공약 이행’이었다. 쌀이 남아돈다고 쌀값을 후려치더니 굳이 쌀을 또 수입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약속을 지키라는 ‘과격한’ 주장 때문에 일흔살 노인에게 물대포를 직접 쐈다는 경찰당국의 해명은 허망할만큼 웃긴다.

백남기의 사망 이후 벌어진 상황은 억지로도 웃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다. 병원 측은 백남기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그가 ‘병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의 사망원인을 규명하겠다며 시신을 부검하겠다고 나섰다. 어떤 이들은 백남기가 사망한 것은 가족들이 그의 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며 유가족들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고발한 사람들도 있다. 백남기가 경찰의 물포가 아닌 시위대에게 맞아 사망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나왔다. 물포에 맞아 정신을 잃은 노인에게 경찰이 20초가 넘도록 물포를 ‘조준 사격’한 장면은 온 국민이 다 봤다.

# 놀랍도록 닮아있다

가끔 지구 반대편에서 만들어졌음에도 놀라울만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땅의 모습과 닮아있는 다큐멘터리나 영화가 있다. 그건 세상을 살아가는 군상의 모습이, 그들의 욕망이, 그에 대한 분노가, 그럼에도 명확한 한계가, 극복하지 못한 오류가 닮아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학교에 가고 싶었던 말랄라와 농사를 지어 먹고살고 싶었던 백남기는 똑같이 그들의 땅을 ‘지배’하는 욕망과 한계와 오류에게 공격당했다. 무섭도록 닮아있는 공격이다.

말랄라는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가 총에 맞았고, 백남기는 “함께 먹고살자”고 말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말랄라를 공격한 탈레반은 ‘테러 집단’으로 불린다. 그들이 전통이고 신념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사실 폭력이고 억압이라는 것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다. 백남기를 공격한 이들에게도 전통과 신념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은 그 전통과 신념을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 남은 이들의 몫

말랄라는 총격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선생님, 한 권의 책, 한 개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학교에 가고 시험을 보고 책을 읽고 가끔 숙제를 빼먹고 UN에서 연설을 하면서 산다. 그렇게 일상을 지켜내는 것으로 자기의 바람이 실은 아무렇지도 않은 당연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백남기는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말랄라처럼 살아가는 것으로 자신의 일상과 바람을 증명하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면 여든 여덟번의 손길로 벼를 키워내는 농부의 삶이 비루해지지 않아야 한다 말하고,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에 살인적인 물포가 돌아오는 일에 화를 내는 일, 백남기의 목소리는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의 목소리이며, 그들의 목소리는 매일 더 커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 됐다.

백남기가 쓰러진 민중총궐기는 올해에도 진행된다.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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