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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질문을 던지는 곳, 근현대사기념관


한국에 있는 기념관, 기념공간을 비롯하여 해외의 주요 기념관, 박물관, 기념공간을 살펴보는 글을 연재합니다. 국가 폭력, 식민 지배, 전쟁, 독재 등의 체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투쟁, 인권 등을 주제로 조성된 기념공간과 기념시설을 고찰해보고, 이를 통해 현재 건립 중인 ‘민주인권기념관’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연재되는 글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웹진-민주주의]에 게시되었던 것으로, 원고 작성이 2016 ~ 2019년에 이루어져 시기나 내용적으로 현시점과 맞지 않는 부분이 다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원고의 논지는 저술자의 관점에 입각한 것임을 밝힙니다.



역사가 질문을 던지는 곳, 근현대사기념관

박한나 작가 / hanna_p@naver.com


북한산의 강북구 자락 2.3km를 걷는 북한산 둘레길 두 번째 코스는 ‘순례길’로 불린다. 1시간 10분 남짓이면 완주할 수 있는 완만한 길에 이토록 무거운 이름이 붙여진 것은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하게 하는 장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잠들어 계신 국립4·19민주묘지와 헤이그특사 이준 열사, 초대부통령 이시영 선생,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손병희 선생 등의 묘소부터 광복군 합동 묘소까지, 순례길에는 수많은 순국선열 애국지사의 묘역이 있다.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청춘(靑春)을 내던진 이들이 푸르른 자연의 품 안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2016년 5월 이곳에 순국선열의 뜻을 제대로 기억하고 전파하기 위한 공간이 문을 열었다. 바로 근현대사기념관이다.


선열들의 소원, 평등•자유•민주

근현대사기념관은 강북구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하기 위해 세운 공공기념관이다. 순국선열 묘역과 3‧1운동 준비 활동의 근거지였던 봉황각,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삶을 바친 문익환 목사가 살았던 통일의 집까지 강북구의 역사성을 하나로 이어 그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지역적 요소에 집중하지 않고 순례길에서 마주치는 인물이 활동한 동학농민운동, 독립운동, 4‧19혁명을 좌표로 삼아 전시를 구성해 그야말로 한국의 근현대를 가로지르는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특정 인물의 영웅적 활동이나 역사적 사건의 크기에 집중하진 않는다. 순국선열이 얼마나 모진 고초를 견뎌냈는지 보다는 역경 속에서 지키려 했던 가치에 주목한다. 그것이 순국선열이 남긴 진정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선열들이 꿈꾼 나라를 살펴보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현재 우리가 가져야 할 비판적인 의식을 배우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인담 학예연구사는 근현대사기념관의 정체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렇다면 선열들이 꿈꾼 나라, 추구한 가치는 무엇일까. 근현대사기념관이 내놓은 답변은 ‘평등’, ‘자유’, ‘민주’다.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은 서구 열강이 아닌 우리 내부에서 시작되고 지켜져 왔다는 것이다. 인본주의 정신으로 평등을 주장했던 동학농민운동,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외친 3‧1운동, 민주주의의 형식‧절차‧정신을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재로부터 민주화를 지켜낸 4‧19혁명에 이르는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평등‧자유‧민주가 어떻게 성장하고 전파되었는지 알 수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해 뿌리 내린 이 가치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새삼 깨달아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그들이 꿈꾼 나라에 살고 있냐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냐고.


근현대사기념관의 동력, 시민

하지만 근현대사기념관은 비장한 마음이나 뚜렷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어야만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순례길이 보다 다양한 사람이 쉽게 자연을 거닐 수 있는 둘레길인 것처럼 근현대사기념관도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데다 건물 크기가 크지 않아 꼼꼼하게 살펴봐도 대략 1시간 정도면 상설전시는 모두 둘러볼 정도다. 북한산 등산이나 둘레길 트레킹을 위해 혹은 근처 식당과 카페를 찾았다 잠깐 들르기에도 부담 없다. 무엇보다 근현대사기념관이 시민의 방문을 진심으로 반긴다.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지 자주 찾는 주민이 별로 없으셨거든요. 그런데 올 여름이 너무 더웠잖아요. 더위를 피하려고 주민들이 매일같이 오시더라고요. 인사도 나누고 주민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서 좋았어요. 앞으로 여름에는 기념관에서 바캉스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죠.” 최인담 학예연구사의 이야기대로 근현대사기념관은 시민과 가까이 만나길 바라고 이를 위해 교육 프로그램에 공을 들인다.

기획 전시와 연계해 관람객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거나 현대사회 문제의 답을 역사를 통해 찾아보기도 하고 역사적인 날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살펴보는 등 매번 새로운 강좌를 기획해 시민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특히 영화를 중심으로 한 영상으로 보는 역사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끌었다.

방학 시기에는 청소년 대상 강좌를 연다. 역사 강좌도 있지만 ‘청소년 도슨트 아카데미’가 대표적이다. 수업과 실습을 통해 선발된 청소년이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전시해설을 맡는 프로그램이다. 이전에는 3‧1절이나 광복절처럼 특별한 날에만 청소년 도슨트를 만날 수 있었는데 올해 8월부터는 2주에 한 번씩 일요일마다 청소년 도슨트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전문가보다야 부족하지만 근현대사기념관은 이 과정을 통해 건강한 역사의식을 지닌 시민으로 청소년을 성장시키는 데 의미를 둔다. 근현대사기념관의 동력은 시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희는 시민사회의 힘을 얻어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시민들이 자주 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오셔서 시민들이 저희의 장점을 발견해 주시길 바랍니다.” 최 학예연구사의 당부대로 순례길도 걷고 근현대사기념관에도 들러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면 어떨까. 그 걸음은 가볍더라도 어제를 통해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오늘을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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