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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만에 허락된 특별한 사진전

피란, 폭격, 학살을 담은 <허락되지 않은 기억> 사진전 리뷰

임재근(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평화통일교육연구소장, 북한학 박사)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어선 민주인권기념관 4층에 마련된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 전시실 ⓒ 임재근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아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어선 민주인권기념관 4층과 5층 전시실에서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 진행되었다. 사진전 ‘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은 피란, 폭격, 학살이라는 주제를 통해 전쟁 지도부가 허락하지 않았던 전쟁의 모습에 집중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신재욱 상임활동가가 4층 전시실에서 전시 해설을 하고 있다 ⓒ 임재근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 4층 전시실의 모습 ⓒ 임재근

4층 전시실은 크게 3개의 섹션으로 구분되었다. 첫 번째는 ‘어떤 피란의 여정’이란 제목으로 살기 위해 떠난 사람들에게 국가가 ‘자유 피란민’이라 불렀던 이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들이 만난 ‘자유’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를 물음 속에 길 위에서 만난 것은 생존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또 다른 전쟁의 현장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어떤 피란의 종착지는 죽음이었다며 피란과 죽음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특히, 피난 갈 다리를 끊어 ‘불가능한 피난’을 만들어놓은 떠난 자들이,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을 ‘빨갱이’, ‘부역혐의자’로 몰아 오히려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 했다. 두 번째 섹션은 ‘폭격’의 민낯을 고발하고 있다. ‘폭격, 마을과 사람을 겨누다’는 제목으로,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죽음은 ‘부수적 피해’가 아닌 ‘학살’임을 드러낸다. 전후방 가리지 않고 한반도 곳곳에 떨어진 폭격지도를 통해 왜 폭격이 ‘학살’이 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후방 마을의 하늘에서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폭탄을 보고도 어찌할 바를 몰라 그대로 몸이 얼어붙은 민간인의 모습이 미군의 항공촬영에 그대로 포착된 사진은 폭격의 목표가 왜 마을과 사람이 되어야 했는지 울부짖게 만든다. 세 번째 섹션은 ‘국민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민간인 학살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전시가 주목한 민간인 학살은 대전지역에서 발생했던 두 개의 학살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대전에서는 군인과 경찰들이 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을 ‘산내 골령골’로 끌고 가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대전을 점령했던 인민군들은 퇴각을 하면서 대전형무소와 그 인근에서 보복학살을 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의 5층 전시실은 대공분실 조사실로 사용되었던 방 중 10개를 ‘어떤 무덤’, ‘남겨진 사람들’, ‘부역자’, ‘위안부’, ‘어떤 폭격’, ‘고지전’, ‘노무자’, ‘반란자’, ‘불러보는 이름’ 등의 제목으로 전시실로 만들어 ‘전쟁을 통하는 10개의 방’을 만들었다. ⓒ 임재근

5층 전시실은 대공분실 조사실로 사용되었던 방 중 10개를 ‘어떤 무덤’, ‘남겨진 사람들’, ‘부역자’, ‘위안부’, ‘어떤 폭격’, ‘고지전’, ‘노무자’, ‘반란자’, ‘불러보는 이름’ 등의 제목으로 전시실로 만들어 ‘전쟁을 통하는 10개의 방’을 만들었다. 이중 ‘어떤 무덤’은 희생자들의 유해가 묻힌 곳을 지도로 표현해 놓았다. 그랬더니 전 국토가 무덤이나 마찬가지였다. ‘남겨진 사람들’에서는 희생자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가장 처절하게 들려오는 단어는 ‘아버지’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그들은 얼굴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아버지를 왜 그리 그리워할까? ‘불러보는 이름’에는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담긴 2만명 가까운 희생자 명단을 지역별, 시간별로 나눠 정리해 출력해 벽면에 붙였다. ‘불러보는 이름’ 방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녹음해보는 특별한 전시실이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지금껏 제대로 호명되지 못했던 그 이름들.. 그 이름들이 벽면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장면을 보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음의 골짜기로 끌려갔던가를 실감한다. 하지만, 이름이나마 남은 이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허탈함마저 몰려든다. 누가,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찾을 수 없는 현실에, 그나마 밝혀낸 희생자들의 이름 2만여 명을 어두컴컴한 방에서 호명(呼名)하는 의식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존재로 승화시킨다.

5층의 13번 조사실은 ‘어떤 무덤’이란 제목의 전시실이 되었다. 전시실 ‘어떤 무덤’은 유해발굴과 관련된 진시를 담고 있다. ⓒ 임재근

5층의 2번 조사실에 마련된 ‘불러보는 이름’ 전시실에는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담긴 2만명 가까운 희생자 명단을 지역별, 시간별로 나눠 정리해 출력해 벽면에 붙여져 있다. ⓒ 임재근

전시를 기획한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박석진 상임활동가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는 어떤 평화를 만들어 낼 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국가의 공식 전쟁 기억이 구현된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군인, 영웅, 승리, 군인 중심의 기억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번 전시는 전쟁 피해자의 관점에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사진전 ‘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첫째는, 그 동안의 전쟁기억이 군인 중심과 전투의 승패를 중심으로 발현되었다면, 이 전시는 그동안의 전쟁기억이 의도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외면해 왔던 민간인을 향한 시선과 민간인들의 시선에 집중하고 재해석하고 있다. 이는 전쟁기념관을 비롯한 기존의 전쟁기억 공간들이 변화해야 할 전시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전시(展示) 방향의 전환은 전시(戰時)에 발생한 국가의 전쟁범죄를 반성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전시 공간이 갖는 상징성이다. 전시 공간으로 선택된 민주인권기념관은 옛 남영동 대공분실로, 이곳은 과거 국가공권력에 의해 인권이 침해당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앗아갔던 악명 높은 곳이다. 머리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폭이 좁고 깊게 설계된 5층. 이 때문에 조사실에는 충분한 햇볕조차 들지 않은 암흑과 같았다. 불을 켜고 끄는 것과 불빛의 세기까지 모두 문밖에서 조절하게 돼 있고, 전기고문과 물고문이 자행되었던 조사실이 있는 공간이다. 조사실마다 설치된 욕조, 바닥에 볼트로 고정된 책상.... 모든 것은 고문을 위해 철저히 설계된 것들이다. 그런 공간에서 전쟁 피해자의 시선으로 마련된 전시가 진행되었다는 것은 피해자들의 한을 풀고,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는 관람객들도 위로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RESTRICTED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어선 민주인권기념관 4층과 5층 전시실에서 2020년 10월 2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렸다. ⓒ 임재근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 말살이 가장 첨예하고, 인간의 기본권이 가장 심하게 박탈되는 때가 바로 전시(戰時)이다. 전쟁의 승리를 다짐하는 호전적 전쟁기억을 통해서는 전쟁을 미리 방지할 수 없고, 오랫동안 호전적, 적대적 입장에서 전쟁기억에 노출된 사회에서는 전쟁에 친화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쟁기억 재현은 오랫동안 배제됐던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기반으로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 또한, 똑같은 기록이라 하더라도,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관련 기록들을 전쟁 피해자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이번 전시가 전쟁기억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바탕으로 전환하는 데 큰 마중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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