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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지난 20세기 우리의 100년은 세계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기에 온갖 격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던 혼란 속에서 굳건히도 우리 것의, 우리 정체성을 모색하는 시기였다. 조선의 멸망과 식민통치 36년, 해방과 분단,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한국전쟁, 혁명과 쿠데타, 독재와 항쟁……. 특히 분단구조에서 단기간에 이루어낸 압축성장으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폭과 깊이가 넓고도 큰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핵심이었던 민(民)이 역사와 사회의 대상에서 진정한 주체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960년 4·19혁명과 1970년 전태일의 분신,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0년 민주화의 봄과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 1991년 5월 투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민의 힘이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민의 성장과정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民主主義)’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민중을 의미하는 데모스(demos)와 지배를 의미하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참뜻은 군주나 귀족, 영웅이 지배하는 것이 아닌 민중의 지배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매우 자명한 것 같이 보이는 ‘민주주의’라는 개념 규정 속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라고 있다. 우선 민중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재산가, 백인, 교육받은 사람, 남자, 노동자, 시민, 성인 남녀 등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지배의 형태가 직접적이어야 하는지 간접적이어야 하는지 그에 관해 합의하기도 쉽지 않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채택된 민주주의가 정치영역에만 국한되고 있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사회, 경제적 삶의 다양한 영역에까지 확장되어 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가치와 목표가 어떻게 이해되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가에 따라 민주주의의 형태는 매우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예컨대 1970년대 유신시대의 폭압적인 정치체제가 ‘한국적 민주주의’로 불리었던 것처럼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로 둔갑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조금이라도 삶이 버거워지면 반(反) 민주주의에 대한 향수가 박정희 신드롬과 같은 형태로 사회 일각에 퍼져간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각각 주어진 특정 사회의 내적 구조와 사회관계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끊임없는 운동 ‘과정’이 필요하다. 통상 우리가 ‘민주화’ 라고 표현할 때 이 개념에는 바로 민주주의를 실현해간다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뚜렷한 이념과 목표를 가진 새로운 주체들이 기존의 사회제도를 변화시키려는 지속적인 활동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화운동은 특정한 계급이나 주체들의 특정한 이해관심의 실현에 그칠 수 없는 늘 새로운 이해관심과 이념을 새로운 제도와 경로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중단 없는 사회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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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민주화 이러한 민주화운동이 우리에게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는 것은 은혜와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해서 그것이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늘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200명 이상의 피의 제단으로 쌓은 4·19민주혁명의 희생과 헌신은 5·16쿠데타로 전복되었다. 4·19의 경험은 20년 후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1980년 민주화의 봄을 낳았지만 1980년 민주화의 봄은 광주민중들의 희생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좌절되었다. 그러나 다시 1987년 민주항쟁으로 이어졌고 87년 민주항쟁의 승리 이후에도 한국사회에서는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산을 위한 투쟁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민주화 과정은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진실 그 자체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1) 이렇듯 한국 ‘역사’상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희생과 헌신으로 일군 민주화운동이 존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현재화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제기된다. 지금 20대들에게는 60~80년대까지의 독재를 마감케 했던 치열했던 6월항쟁조차 기억에 없다. 6월항쟁의 주역이라고 자부하는 40~60대가 시퍼렇게 생존하고 있지만 6월항쟁은 더 이상 ‘현재’가 아니다. 광주항쟁을 1929년 광주학생 사건으로 떠올리는 학생들도 적잖게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독재의 과거, 민주화운동의 과거를 어떻게 살아있는 현재로 만들 것인가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아울러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이러한 기억의 과정, 기억의 전승과정이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전 국가적으로, 전 사회적으로, 전 역사적으로 구성되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대부분의 기념공간들은 모두 각 사건별로 발생지역을 배경으로 공간화 되어 있고, 현장의 역사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즉 3·15, 4·19, 5·18과 같이 개별사건으로 기억되거나 부산, 마산, 광주, 서울 식으로 지역성에 함몰되어 해방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의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성과를 전 사회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는 민주화운동의 기념 그리고 기념행위가 오늘의 관점에서 어떻게 계승되어야 할 것인지 미래에 시선을 두지 않고 과거의 사건과 경험에 결박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기억들을 가진 다수의 주체들이나 집단들의 끊임없는 기억투쟁을 통해 민의 힘으로 기념사업이 재구성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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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사건과 경험에 국한되었던 민주화운동기념 그런 점에서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2)를 통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가칭)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사업은 정식 국가기구도 아니고 소수 특화된 인물들이나 지역, 다양한 민주화운동 주체별로 제각기 구성된 세력이나 단체도 아닌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통과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의 정신에 따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범국민적 총의를 담아 특정 시기, 특정 사건, 특정 지역의 범위를 넘어서 민주화운동을 총괄하는 새로운 기념관을 건립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개별 기념공간이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데 왜 이 시점에서 다시 새로운 기념관을 만들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제반 기념유형들을 구축해 온 과정과 현재의 기념관을 돌이켜 볼 때 이 시점에서 새로운 기념관을 건립해야 할 현실적 당위성 또한 충분하나, 다음과 같은 쟁점과 과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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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의 쟁점과 과제 첫째, 민주화운동을 독립운동과 더불어 우리 현대사의 진전을 이끌어 온 동력의 다른 한 축으로 세워간다고 할 때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모든 민주화운동을 포괄하여 하나의 민주화운동 정신으로 연계된 우리식 민주화의 길을 새롭게 구성하고 그것을 공간의 형태로 외화해 낼 현재적 필요성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현재의 실천 속으로 생환(生還)된 역사만이 힘이 되기 때문이고, 생환된 역사는 기억과 계승을 위한 기념공간으로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전국에 산재해 있는 민주화운동의 기억과 기념의 외화된 형태는 늘 거대구조물의 개발독재 식 건조라는 형식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새로 만들어질 기념관은 거대한 구조물의 위압감이 아니라 마땅한 공간 찾기에서부터 공간을 알아가기, 공간의 참주인 되기, 소용에 따른 공간의 재창조와 전국에 산재한 관계 시설들과의 연계성이 살아나게 만드는 역사 만들기의 작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지역 기념공간들이 신축이나 역사적 현장과 무관한 외형적 공간으로 민주화운동을 구현하는 의미가 크다면, 새로 건립될 기념관은 현장 보존과 발굴을 통해 기억과 기념의 의미를 확보하여 역사적 상징성을 세우고 현장에 담겨 있는 역사적 의미를 길어 올려 기억의 증폭과 총화를 이룰 수 있는 프로그램 위주의 기능성을 담보하는 문화공간으로 구성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한물 간’ 현장이 다시 현재의 일상적 삶 속에 자연스럽게 공간화 되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기념관의 컨셉은 과거를 역사로 만들고 역사를 통해 기억의 불을 키울 주체들, 대다수 국민과 미래 세대들이 그것을 공간적으로 문화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기억의 공간화와 문화화 작업을 통해서 민주화운동의 시대정신을 새롭게 드러내고 구성해냄으로써 민주화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구현해 내어야 할 것이다. 물론 건립 장소의 역사적 상징성을 살려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관철시키는 것이 기념사업의 현실성을 고려할 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원칙은 어떤 경우든 지키려고 노력할 때 장기적인 역사의 힘이 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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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상징성과 기능성을 담보하는 문화공간 둘째, 이처럼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공간적으로 외화 하는 새로운 기념관의 건립은 그 주체 설정에서부터 기존의 기념관들과 다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기념관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화하며 미래로 계승하기 위한 방법을 담는 그릇일 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광범한 민주민중역량들의 주체화와 자발적 참여, 국민적 동의 수준에 따라 그 그릇의 형식과 내용, 시기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기념관 건립 과정에서 ‘당사자 집단 주도’, ‘관 주도’혹은 ‘명망가 집단 주도’ 라는 말로 기념사업의 내용과 방향이 평가되면서 거의 공통적으로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었던 것은 그 주체의 설정과 주체화의 올바른 건립 경로에 문제가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에서 여야의 합의 하에 통과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의 정신에 의거하여 새로운 기념관 건립을 추진할 유일의 법적 지위를 갖는 실무 주체임은 분명하지만 이미 준(準) 국가기구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국가화’가 가져오는 딜레마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민주화운동이 각계각층의 수많은 민의 힘이 모여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 스스로 고난 속으로 뛰어든 거대한 물결이었음을 받아들인다면 범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도 ‘당사자주의’를 떨쳐버리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새로운 기념관 건립의 실질적인 추진체가 될 국민이 참여하는 범국민운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범국민운동추진위의 정책적, 정치적 중심성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초동 주체가 되고 실무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상호이해와 협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각종 과거청산 및 민주화운동명예회복, 의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계기들을 ‘빌미’로 독재와 유착되었던 우리 사회의 수구보수지배세력의 반대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념관 건립과정이 개방적이고 협력하는 자세로 미래를 여는 진정한 주체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역사는 바로 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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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가 바로 설 때 올바른 기억(독재와 억압과 학살의 기억, 희생과 헌신의 기억, 침묵의 기억)을 구성할 수 있고, 우리의 얼룩지고 균열된 과거에 대한 올바른 주체의 기억투쟁으로 구성된 새로운 기념관이어야 다시금 독재의 유혹이 커지는 때가 오더라도 그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단호히 민주주의를 사수하려는 국민정신의 산실이 될 것이다.
개방적이고 협력하는 자세로 건립 주체 설정 셋째, 새로운 기념관은 차츰 망각의 장으로 밀리고 있는 해방 이후 국내 민주화운동을 총괄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체성의 실질이 민주화운동에 있음을 전국화 하는 것뿐 아니라 국외 특히 제3 세계에 그것을 각인시키고 우리의 민주화운동의 경험이 그들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고 추동하는 소통과 연대의 세계적 공간 거점이 됨을 명백히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기념관의 장기적인 전망은 곧 향후 기념관의 현실적 운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념관들이 존립의 당위에도 불구하고 자생력을 요구받으면서 공통적으로 기념관의 운영과 활용의 어려움을 안고 있는 점을 인식할 때 막대한 건립 비용과 일정 기간 요구될 운영비의 산술적 수치가 결코 만만하게 동의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적 요구와 세계적 요구가 소통될 수 있어야 그러므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의 전국화를 통한 시너지 효과와 세계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민주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담보되는 절대 ‘양적으로 계측할 수 없는’ 질적인 측면을 창출해 낼 책임을 갖는다. 예컨대 프로그램과 예산, 자료를 지원하는 허브나 터미널이 되어 사업의 전국적 연계와 집중의 네트워크 구축을 도모하되 분명한 자기중심성을 가지면서 지역적 요구와 세계적 요구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민주화운동의 회통처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화폐, 경제적 차원에서 접근되지 않는 새로운 기념관을 건립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정작 우리 사회의 사람들은 전태일, 박종철이나 이한열과 같은 상징적인 사건과 인물만을 기억할 뿐 민주화운동과정에서 그다지 희생이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만도 19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1,295명의 사람들이 사망, 행방불명, 상이 등의 희생을 감수하였다. 물론 이 자료는 자신들이 희생을 주장한 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속적인 희생을 말해준다는 점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출처-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2003년 자료>
2)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발족 당시부터 기념관 건립을 주요 과제로 추진해 왔다. 2002년에는 민주화운동기념관건립추진계획을 세워 제출했고 이의 예비타당성조사를 기획예산처가 한국개발연구원에 의뢰하여 보고서가 나왔으며 2003년에는 (가칭)민주화운동기념관건립기본계획을 위한 조사연구용역을 공모하여 상당한 인문, 사회학적 전문성을 담은 결과보고서를 만들어냈다.
<오유석>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와사회운동연구소 연구교수 <사진 황석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