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연극의 제의성을 회복하자고 하는 저희 생각은 오히려 연극의 기본에 충실하고 그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제의연극이란 공동체 문화에서 이어져 왔던 ‘굿’을 회복하자는 말이기도 한데 예를 들어 무당이 굿을 할 때 신을 놓고 신을 즐겁게 경배하면 관객들은 무당이 신이랑 판을 잘 벌이고 있는가를 지켜보는 증인의 역할을 합니다. 연극도 이 굿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공연을 통해 ‘신’을 되돌려 놓자는 겁니다. 열사를 위한 굿을 하면 죽은 열사 신들과 함께, 전태일 연극을 하면 전태일 영혼과, 위안부 연극을 하면 위안부 영혼하고 놀자는 것입니다.” 이들이 지난 2002년부터 올린 크고 작은 공연의 횟수는 100회를 넘는다. 이주·비정규직·환경미화 노동자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굿을 벌였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 열사를 위한 거리 문화공연, 4·3항쟁 거리굿 등 사회 문제에도 이들의 시선은 멈추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노동현장에도, 평생 농사짓던 땅을 내줄 수 없다며 안간힘을 썼던 평택 대추리에도,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던 부안에서도 그들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판을 벌였다. ‘부네굿’은 민중들의 차별 문화에 대한 응어리를 풀어내고 해체된 공동체를 통해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제의연극이다. “공연을 하다보면 할머니들이 제 손을 잡고 막 우세요. 그건 아마도 제가 벌인 굿판을 지켜보던 그 분들이 부네를 통해 자신의 고단한 삶이 느껴졌을 수도 있고 ‘굿판’이라는 삶의 문화에 익숙한 우리 문화 정서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지난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졌다는 열사굿 <지나가리라>는 해마다 한 달 정도의 기간을 잡고 순례공연을 한다. 열사들이 투신하거나 분신한 장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현장에서 굿을 하는데 지난해에는 임진각에서 통일굿을 시작으로 마지막 도착지인 마석 모란공원까지 열사들의 혼을 달래는 굿을 펼치기도 했다. 장소익 대표는 배우와 연출 분야를, 극작가인 임은혜(34) 씨는 연극 대본과 공연 기획을 맡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남미 6개국을 돌며 부네굿을 공연을 했다. 한국의 전통 탈과 굿 양식의 제의연극을 소개하며 남미 각 나라의 연극단체와 탈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고 탈을 통한 창작방법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과 라틴 아메리카 사이의 공연예술 교류를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어느 나라나 민중들의 삶은 비슷한 것 같아요. 브라질에서도 부네굿을 보고 관객이 울 정도였으니까요. 전혀 다른 이국의 문화를 접한 그들에게는 또 어떤 아픔이 있고 우리가 공연한 부네굿이 그들의 아픔에 어떻게 다가간 것일까,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주었을까, 공연을 하면서 늘 그런 생각을 해요.” 임은혜 씨는 남미 순회공연을 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무당이 굿을 하거나 심마니들이 삼을 캐러갈 때 또는 마을이나 문중에 큰 제사를 치룰 때 모든 제를 올리기 전의 시작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장소익 대표는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아니 늘 굿판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배우의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꾸준히 연습하고 공부하려고 한다. 그래서인가, 그의 눈빛이 예사로워 보이지만은 않은 것 같아 취재 내내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2007년, 올해는 이들에게도 남다른 해이다. 다음달 28일(월)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할 예정인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의 연극 - 체 게바라>는 체 게바라 사후 40주년을 기념하면서 1987년 6월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에 대한 성찰을 통해 민중운동에 생기를 부여하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祝祭)라고 하죠. 물론 요즘도 그런 축제가 많잖아요. 사과 축제, 인삼 축제, 나비 축제 등. 하여튼 그 많은 축제들의 특징은 살아있는 자들만의 축제라는 거죠. 하지만 축제라는 것은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어우러져야 축제다운 축제입니다. 저희는 죽은 자와 산 자가 어우러진 연극을 하려는 겁니다.” 어릴 적 뒷마을에 살던 친구 집에 가려다 고개 마루에 있던 서낭당이 무서워 몇 번 이고 놀러가기를 포기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직도 그 서낭당은 우리가 살던 그 마을을 지켜주고 있긴 한 걸까, 아직도 그 산은 그대로일까? 서울로 올라가는 통영 - 대전간 35번 국도는 왜 그리도 잘 닦여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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