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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역시 진보민중세력에게 있습니다.` 한국진보연대(준)상임운영위원


그 많던 자유민주주의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참여정부 평가와 2007년 대선 전망’을 둘러싸고 이른바 ‘진보논쟁’이 휘몰아쳤던 지난 봄. 최장집-조희연-손호철로 이어진 학자들의 논쟁에 노무현 대통령이 불쑥 끼어들면서 진보논쟁은 또 다른 차원의 논쟁을 불러들이며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되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노무현 시대는 자유민주주의 위기상황’이란 글이 올라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이 글은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위기를 말할 때다’라는 제목을 달고 <프레시안>에도 올라왔다.)
이 글의 필자는 ‘진보타령 하기 전에 자유민주주의라도 제대로 지키라’며 다소 ‘거칠게’ 운을 떼고는, 논쟁의 주자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우리 사회에 절차적 민주주의나 형식적 민주주의,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명제부터 뒤엎어 버렸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위한 집회가 원천봉쇄되고 시위에 참가한 노동자와 농민들이 경찰에 맞아죽고, 노조의 정당한 집회가 금지되며, 조선일보 사이트에도 있는 ‘선군시대 승리’ 포스터를 전교조 서울지부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현직 교사 2명이 반국가단체 찬양·고무혐의로 구속되는 등 군사독재 시절 못지않은 인권유린이 횡행하는 현실을 조목조목 들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임을 역설했다. 이 글 밑에는 다수의 비난성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그 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서울 영등포에 있는 민중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박석운. 그는 현재 수배중이라 이 곳 사무실에서 줄곧 지내고 있다.

몇 개 안 남은 머리를 휘날리며 종횡무진하는 박석운은 그야말로 현장과 함께 하고 현장에서 죽는 사람이다. 썩어 문드러질…… 방구석에 처박혀…… 감 놔라 대추 놔라. 떠들어대는 ○○보다 어디서나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 마이크를 잡아 쥐는 박석운이 내게는 더 위대해 보인다.

“아주 작심하고 쓴 글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거든요. 자유민주주의가 완성 단계에 들어섰고 권위주의적 통치가 종식되었다는 거예요.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구속노동자 숫자가 드디어는 1천 명을 넘게 됐어요. 지금 9백 명 정도인데 이랜드 사건 지나고 나면 1천 명을 넘어설 거 같아요. 이게 뭐냐, 이거죠. YS 정권 이후로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가 도리어 거꾸로 가고 있는 게 아니냐. 우리 사회의 일반 민주주의적 과제도 이렇게 퇴보하고 있는데 지금 진보논쟁하고 있을 땐가, 반어법적인 문제 제기였죠. 나는 진보주의자지만, 내 신념은 진보주의자들이 자유민주주의적인 과제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정작 이 땅의 그 수많은 자유민주주의자들은 모두 어디 가 있느냐,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있느라고 이런 헌법 파괴와 인권유린 상황을 방치하고 있느냐 이거죠.”

어디서나,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한미 FTA 반대투쟁, 이라크 파병반대 투쟁, 비정규직 철폐투쟁……. 그야말로 ‘어디서나,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몇 가닥 남은 머리를 휘날리며 ‘짱가’처럼 나타나는 사람이 박석운이다. 1976년 12월 서울대 법대 졸업을 앞두고 기습적인 시위를 주도하여 긴급조치9호 체제의 시퍼런 침묵을 깨뜨렸다거나, 고 조영래 변호사의 시민공익법률상담소에서 노동상담을 하는 등 노동운동에 줄기차게 관여해 왔다거나 하는 이력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최근 10년 동안 9시 뉴스를 열심히 본 사람이라면 그의 ‘훤한’ 얼굴이 눈에 익을 것이다.
내성적인 ‘범생’이었다는 그가 대중운동의 표면에 떠오른 것은 아마도 노동법 개정안이 안기부법 개정안과 함께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지난 1996년부터일 것이다. 그 직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의 세찬 물살 속에서 구조조정, 정리해고, 개인 파산자, 노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굵직굵직한 사회 문제를 폭발적으로 받아 안게 되었으니 지금 신자유주의의 가장 반대편에서 가장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대중운동가 박석운의 모습도 어떤 의미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가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필요’가 사람의 성격 내지 스타일을 바꾸는 그런 측면도 있어요. 유신 때도 그랬고, 노동운동 할 때도 그랬고, 내가 뭐가 돼야겠다는 것보다는 항상 ‘역할’을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들 저를 신기해하죠. 이런 저런 근처에 얼쩡거리면 ‘배지’ 달 기회도 있을 거고, 제도권에서 뭔가 할 수도 있을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냐. 하지만 저도 나름대로 꿈이 있잖아요. 진보민중세력이 거대한 덩치에 걸맞는 정치·사회적 영향력과 힘을 결집해서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게 제 꿈이고, 또 그것이 빨리 앞당겨지도록 기여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와 내 동료들이 좀더 유능했다면 IMF 환란 초기에 조직을 준비하고 투쟁노선을 좀더 고도화시킬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런저런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라는 비싼 월사금을 물긴 했지만, 더디더라도 한 발 한 발 길을 찾아온 면도 있지 않느냐…….”

 

‘배지’에 대한 욕심은 아니더라도, 진보민중세력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를 위한 ‘현실 정치 참여’는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예의 ‘필요충분론’과 ‘역할론’이 베이스에 깔린 답변이 돌아온다.
“정치? 중요하죠, 억수로 중요하죠. 그런데 잘 봐야 돼요. 우리 사회에는 제도권 정치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의 기피증이 있어요. 그 하나가 정치무서움증인데 일반대중들은 아직 냉전적 잔재를 완전히 극복 못했어요. 진보정당 하면 공포증이 있는 거죠. 그 임계점을 넘어야 돼요. 또 하나는 정치혐오증이에요. 노무현 정권은 지금 정치혐오증, 냉소증의 최극단에 가 있는 거예요. 이 상황에서 당장 정당에 가서 내가 뭔가 된다고 해 봐야, ‘별 낙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진보민중세력이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잡는 데 부속품으로서 필요하다면 역할을 할 순 있겠죠. 그러나 그건 ‘때’와 ‘필요’가 종합적으로 맞아야 되는 거고요. 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하고 싶은 사람들 억수로 많은데, 거기 머리 디밀고 들어가서 하는 게 과연 맞는 건가 그런 생각도 있지만, 사실은 당장 할 일이 너무 많아요.”

큰 판을 만들려면 그물을 넓게 쳐라


그 많은 일들 중에서 그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은 역시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의제라 할 한미 FTA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다.
“한미 FTA가 체결된 마당에 반대투쟁 이제 물 건너간 거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국회 비준 절차도 남아 있고,

 


대통령선거와 총선도 있지 않습니까. 한미 FTA와 비정규직 문제 두 가지를 잘 묶어낸다면 이번 대선 국면에서 당락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쟁점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두 가지를 묶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한미 FTA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공공성에 심각한 훼손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로 보고 있고, 1987년 직선제 투쟁 이후 가장 폭넓은 연대가 이루어졌어요. 문제는 주력이 거의 농민이라는 거죠.
농민들은 한·칠레 FTA와 쌀 개방을 겪었기 때문에 문제가 뭔지 금방 알거든요. 그런데 노동자들은 실감이 안 나는 거예요.

 


사진제공 민중연대
한미 FTA로 인해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된다고 하지만 그 폐단이 아직 눈에 안 보이니까.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좀 달라요. 정규직 노동자들도 드디어는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눈뜨고 있어요. 마침 이랜드 투쟁이 진행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 대중투쟁을 엮어서 대선판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보다 효과적인 세력의 재편과 힘의 결집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게 요즘 제 고민이에요. 큰 판을 만들려면 그물을 넓게 쳐야 하니까요.”
이달 16일(일)에는 그가 상임운영위원장으로 있는 한국진보연대의 본 조직이 공식 출범한다. 지난달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도 진보연대 가입을 결정하여 출항을 앞둔 ‘진보연대호’에 힘을 실었다.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빈민연합, 민주노동당, 전국여성연대 등 진보민중진영의 대표적인 단체들을 포괄하고 있는 한국진보연대가 이번 대선 국면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자못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번 대선은 실제로 ‘낙’이 없는 선거거든요. 어려운 시기가 올 거라는 건 작년부터 예감이 되지 않았습니까. DJ나 노무현 대통령이나 민주개혁세력이라고 해서 찍어줬는데 무능한데다가 신자유주의의 포로가 되면서 민주개혁을 지지했던 서민대중들의 마음이 떠나버린 거예요. 민주개혁담론으로는 안되는 그림이 된 거죠. 희망은 역시 진보민중세력에게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역량이 많이 모자라고 준비도 미흡하지요. 그러나 이달에 드디어 진보연대 본 조직이 출범합니다. 물론 본 조직이 출범한다고 대선투쟁 과정에서 진보민중세력이 저절로 모이지는 않겠지요.
각 지역에 기반을 둔 비정규 노동자들, 영세자영업자들, 도시빈민들, 서민들을 대상으로 대담한 정치의식화도 하고, 교양도 하고, 실천도 해서 진보민중세력의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입니다. 민주개혁의 과제를 진보민중적 시각으로 재구성해서 대선판을 크게 격동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정권이 혹시 수구세력한테 넘어가더라도 우리의 진지는 굳건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

 

 

 

글 김기선
1965년 서울 출생. 평전 작가로 저서로는 『저는 열네 살 선영이에요』, 『전태일』, 『김진수』, 『최종길』, 『한일회담반대운동』 등이 있다.

사진제공 민중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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