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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망령의 목록
망령. 어느 시대건 혐오스럽고 치욕스런 역사의 잔재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 아직 안 죽었소.’ 하며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망령의 대표적인 목록에 드는 것이 친일파, 신사참배, 박정희, 국가보안법 등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단죄하고 청산하지 못한 후세대의 죄도 무시 못 할 것이라 시대착오적인 망령의 출현에도 실효성 있는 해법이 없어 무기력할 뿐이다. 진보적 비판 세력의 목소리만 분기탱천할 뿐 보수화의 급물살을 타고 전력 질주하는 한국 사회를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즈음, 그 망령의 목록에 새로 오른 것이 있으니, 참으로 생뚱맞기 그지없는 단어, ‘전두환’이다. 광주 학살의 발포 명령자를 속 시원하게 밝히지는 못했으나, 그 주범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고, 1980년 광주의 ‘폭동’이 5·18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된 지도 20년이 다 되어간다. 물론 그 후 자본화라는 광풍에 휩쓸려 유·무형의 모든 가치가 환금되는 동안 광주의 정신 또한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오늘날 전두환 이라니, 박정희 신드롬의 아류인가, 뭔가 꿍꿍이가 있는 계산된 시추에이션인가.
지난 여름 8월 중순부터 약 한달 동안 합천읍의 한적한 공원 ‘새천년 생명의 숲’ 앞 인도에는 천막 농성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카페 회원들이 드디어 오프라인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길거리 시위를 벌인 것이다.
우연히도 나는 그 무렵에 고향인 합천에 내려와 있었고, 이런저런 일로 합천읍을 여러 번 오가게 되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상영되고 며칠이 지나 공원 앞을 지나가는데, 총천연색의 현수막과 커다란 걸개 사진이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각하의 명예회복 영광의 그날까지’라는 글귀 다음에 느낌표를 두 개씩이나 박아 넣은 현수막을 발견한 순간,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무슨 희한하고 진귀한 구경거리를 만난 듯했다. 그리고는 “햐, 참 대단하다. 어쩜 저럴 수 있을까?”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그 아래 걸린 전두환의 대형 사진, 그것을 눈 뜨고 봐야 하는 것조차 내겐 모욕이었다. 전사모의 눈에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만 보일 뿐 그가 앉았던 자리가 총칼로 무장한 피의 권좌라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가 보다. 회복할 명예가 눈곱만큼이라도 있기나 한가 말이다.
합천군민이 모르는 전 군민 대상의 설문조사
합천은 산이 많은 지형이라 면 단위 마을에 가려면 대개 산 하나씩은 넘어야 할 만큼 지역이 넓다. 그래서 실상 합천읍에 있는 공원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는 합천군민의 문제라기보다 주된 공원 이용자인 합천읍민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나 역시 언론을 통해 간간히 보게 되는 ‘일해공원’ 논란을 생뚱맞은 해프닝쯤으로 치부하곤 했다. 이번 취재에서 ‘새천년 생명의 숲 지키기 합천군민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의 배기남(35세) 사무국장을 만나 그 내막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올해 초, 합천군청에서 전두환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으로 느닷없이 이름을 바꿔 버린 이 공원은 김대중 정부의 밀레니엄 사업 중 공원 조성 사업 지역으로 경남에서 합천과 함안이 선정되었고, 지난 2004년에 완공되었다. 그리고 사업명인 ‘새천년 생명의 숲’이 그대로 공원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합천군에서는 2004년과 2006년, 두 번에 걸쳐 공원 이름을 공모했다고 밝혔다. 2004년에 전 군민을 대상으로 서면과 전화로 이름을 공모했다고 하는데, 배기남 사무국장을 비롯해 합천군민들은 그런 공모가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다고 한다. 여하튼 그때 선정했다는 이름이 일해, 황강, 죽죽, 군민 등 4가지다. 그러다 명확한 이유 없이 이름 선정이 중단되었고 지난해 11월, 선정사업이 다시 부활했다.
합천군은 읍면 단위 기관단체장, 마을의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농업경영인회장, 바르게살기운동본부, 청년회의소, 각 학교장 등을 대상으로 우편설문을 했다고 한다. 어디에서도 실시하지 않는 우편설문이라니, 시작부터 주최 측의 속셈이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원래 설문조사는 우편으로 하지 않습니다. 익명성도 보장되지 않고 회수율이 보통 20%를 넘지 않는데, 실제 회수율은 그보다 더 낮았어요. 회수된 우편 중에 일해공원 찬성표는 절반에도 못 미쳤구요. 전체의 20%도 안 되는 찬성률을 가지고 군민 전체의 의견이라고 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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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해인사로 유명했던 합천이 이제는 일해공원으로 유명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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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표본은 또 어떤가? 누가 봐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표본이 아니다. 모두 관의 지원을 받는 사람들이고, 특히 새마을지도자회에서는 몇 천 만원 단위의 활동비 전액을 지원받는 관변단체이니, 이 설문조사는 “권력 집중식이자 행정 편의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공원 이름에 대한 내용이 군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바로 배기남 사무국장이다. 합천군농민회 일을 하고 있는 그는 농민회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젊은 사람이다. 7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 합천군농민회에 추천받아 오게 되었고, 가회면에 둥지를 틀고 농사도 조금씩 지어가며 농민회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발견한 ‘일해공원’은 지역의 문제를 넘어 한국 현대사를 뒤흔들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하여 그의 발의로 지역 내 진보적인 인사와 단체가 모여 운동본부를 꾸리게 되었다.
올해 초, 합천군청에서 전두환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으로 느닷없이 이름을 바꿔 버린 이 공원은 김대중 정부의 밀레니엄 사업 중 공원 조성 사업 지역으로 경남에서 합천과 함안이 선정되었고, 지난 2004년에 완공되었다. 그리고 사업명인 ‘새천년 생명의 숲’이 그대로 공원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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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숲 공원은 정부 지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숲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조성하기 위해 합천군민들이 나무 1천 6백 그루를 헌수했으며, 향우회를 통해 재일 동포들이 1억 2천만 원을 투자해 식수했다. 합천군민의 애정과 노력으로 조성된 공원은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합천군민 모두의 것인대, 합천군 당국이 이처럼 ‘일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합천군내는 물론 전국적으로 들끓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강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내막을 좀 더 들어보자.
‘일해공원’은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의 시작에 불과
“심의조 군수가 처음 군수 선거에 나왔을 때 내건 공약 중에 전두환 기념관 건립이 있었어요. 당시 낙선을 했기 때문에 무산되었다가, 재선으로 현 군수 자리에 오르면서 공원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 다시 기념관 이야기가 공무원들 사이에 돌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귀가 솔깃해지면서 결국 그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공원 이름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심의조 군수는 새마을지회장, 농지개량조합장 등을 지냈으며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과도 가까운 사이다.
2005년도에 전두환이 합천에 왔을 때 발 벗고 나서서 환대를 하고 함께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리는 등 전(前)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임을 공공연하게 과시하곤 했다. 그리고 그가 야심 차게 진행해 마무리를 지은 사업으로 율곡면에 있는 전두환의 고향 마을에서부터 선산까지 말끔하게 닦아 놓은 도로와 다리가 있다. 도로 이용자가 거의 없는 곳에 혈세를 퍼부은 것인데, 누가 봐도 그 불필요한 도로의 필요성은 빤하지 않은가. 거기에 군수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는,
몇 백억 대의 재산가로 탈바꿈했으며, 가난한 집안이었던 일가친척들이 지금은 모두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는 배기남 사무국장의 증언은 공원 선정사업의 본의를 짐작하게 한다.
이런 군수의 행적으로 보아 그의 전두환에 대한 충정은 단지 개인적인 호불호의 성향으로만 넘겨 보아줄 문제는 분명 아닌 것이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 학살자의 이름과 백지 수표의 교환쯤 되려나. 한 술 더 떠서, 합천군청이 전두환 기념관을 세우려고 했던 처음 자리는 공원 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관련법상 공원 안에는 건물을 지을 수가 없어 공원 맞은편에 있는 종합운동장 쪽에 짓겠다고 땅 매입 예산안까지 제출했다고 한다.
‘일해공원’ 논란이 하도 시끄러워서 그런지 지금은 다시 잠잠해졌지만,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사안이다. 운동본부는 그래서 더욱더 ‘일해공원’을 막고자 한다. 처음엔 다들 어처구니없어 황당해할 뿐이었고, 정말 그렇게 하겠느냐 반신반의했다가 조금씩 그 문제에 접근할수록 ‘일해’라는 이름은 공모를 통해 우연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 군수의 의지 하에서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되어 온 하나의 프로젝트임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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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공원’은 지역의 문제를 넘어 한국 현대사를 뒤흔들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는 합천군농민회 배기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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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석정 전 합천군수는 “(공연히 일해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합천 사람, 합천 땅 전체가 욕을 먹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고 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근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예전에는 해인사로 유명하다가 요즘에는 일해공원으로 유명한 합천에서 지내고 있어요.”라고 자조 섞인 대답을 한다. 아무 잘못도 없이 싸잡아 욕을 먹는 판국인 것이다.
사실 지금의 노인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면 오로지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마을 앞의 먼지 풀풀 날리던 길이 말끔하게 포장되기만 해도 대통령의 덕이요, 후광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실상은 전두환이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그랬고, 그 후에도 그가 합천을 위해 한 일은, 딱 잘라 말해, 없다. 그리고 합천군청의 선전과는 달리 ‘일해’라는 이름을 지지하는 합천군민의 숫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재했을 당시 영화 포스터라도 찾아내려고 온 읍내를 훑고 다녔지만 그 많던 포스터 한장 찾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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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시절에 건설한 합천댐과 88고속도로를 전두환의 업적이라고 여긴다면 정말 곤란하다. 수량 조절을 위해 지은 댐은 장마나 태풍이 오면 툭하면 범람해 수해를 입히고 댐 아래 지역은 안개가 자주 끼어 농사짓는 사람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여전히 당국은 방관하고 있다. ‘죽음의 고속도로’로 불리는 88고속도로는 지형적으로 뚝 떨어져 있는 해인사 근처를 지나가는데, 합천에서 인근 도시로 나가려면 어디로 가든 한 시간 이상은 족히 걸린다. 88고속도로가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도로가 들어오지 않아 오히려 합천을 교통 소외지역으로 전락시켰다. 설혹 댐과 고속도로 건설로 합천이 살기 좋아졌다고 해도 그것이 학살과 맞바꿀 만큼 위대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합천에서 부활한 그해의 오월
지난 8월 23일, ‘새천년 생명의 숲’에서는 영화 <화려한 휴가>가 상영되었다. 야외공연장 잔디 계단을 빼곡하게 메운 관람객 수만 1천 5백명(경찰 발표 숫자와 동일하다)에 달했고 관람석 뒤쪽 넓은 잔디밭도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함께 마련한 5·18 사진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운동본부 측은 그 수까지 다 합한다면 그날 <화려한 휴가>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의 수가 4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관람객들은 중간에 일어서는 일 없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이었다.
“성공적이었죠. 그 후로 목욕탕이나 슈퍼에 가면 수고했다, 열심히 한다며 격려를 해줍니다. 많은 합천군민들이 광주항쟁과 일해공원을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심리가 강했는데, 그것이 결국은 같은 문제이고, 역사의 큰 부분을 합천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배기남 사무국장은 영화 상영 후, 그 동안 ‘일해공원’에 대한 찬반 입장을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확실히 반대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전하며, 영화 상영 당시의 두근거리던 마음을 다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운 듯 수줍게 웃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면 단위 사람들과 학교에 찾아가 순회 상영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재정 등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아 당장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직 없다고 한다. 그래도 지속적인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전한다. ‘일해공원’ 명칭 반대도, 영화 상영도 궁극적인 목적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5공의 완전 청산이며, 그럼으로써 권력과 돈에 역사가 훼손당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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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외향
1973년 경남 합천 출생. 1966년 대구 매일신문으로 등단,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집으로 『꿈꾸는 자는 유죄다』가 있다.
사진 황석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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