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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는 그 곳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밀려드는 비정규직 문제로 감당하기가 힘들었어요

“저희는 희망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처지인데요…….”
‘그곳에 희망이 있다’ 코너에서 취재를 한다고 전화로 말했을 때 월간 『비정규 노동』 편집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류한승(35) 씨는 이렇게 말끝을 흐렸다. 어쩌면 그가 가장 솔직한 대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과 같은 삶의 조건에서 과연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눈비가 섞여서 올 것 같은 눅눅하고 차가운 날씨였는데 영등포시장역에 내렸을 때는 희미하게 햇빛이 고개를 내밀었다. 새로 이사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찾아가는 길은 구석진 곳에 있어 매우 복잡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류한승 씨 얼굴이 잠깐 스쳐가더니 이내 다리만 보였다. 그만큼 그는 키가 컸다.
세원빌딩 3층 조그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무실이 나왔다. 사무실은 약간 어수선하게 책상과 서류로 가득 차 있었다. 좀 복잡한 사무실이지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및 부설 산업노동정책연구소와 민주노무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진들에게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월세를 잘 내지 못해 전에 있던 사무실에서 쫓겨나 일일주점 등 기금마련을 위해 온갖 일을 한 다음에 겨우 마련한 사무실이라 더욱 소중하다.
센터의 김성희 소장(45)은 IMF 직후인 1999년 초부터 센터를 만들기 위해 준비해 왔다고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해고 되어 비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었다. 밀려오는 비정규직들의 노동문제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해 10월 말 이미 비정규직들이 620만 명에 달했다. 비정규직들은 대부분 여성 노동자와 열악한 주변 노동자들에 집중 되었다. 대부분 사회적 약자이고, 그들은 광범위한 신빈곤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비정규직의 형태도 매우 다양했다. 임시, 일용, 파견뿐만 아니라 용역직, 촉탁직, 계약직, 사내 하청, 용역계약, 소사장제, 위탁계약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김 소장은 이런 비정규직의 문제는 노동문제 차원을 넘어 인권, 사회문제 등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할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 2000년 5월 20일에 센터를 설립했다. 그들의 생활 실태를 조사하고 정책 개발, 법적인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정보 제공과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실의 가장 밑바닥 삶을
들여다 봤어요

류한승 씨는 센터 편집부에서 일하기 전에 ‘밝히고 싶지 않은 유명한 시민단체’에서 일을 했다. 거기서 그는 비정규직들의 권리 침해 사례를 취재하다가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가진 것이 없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야만적인 폭력, 공권력을 들이대는 일이 비일비재 했어요.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권력 유지에 필요한 만큼만 민주주의를 허용하면서 집권에 방해가 되면 밟아버리는 것이 현실이었어요.”

 

월세를 잘 내지 못해 전에 있던 사무실에서 쫓겨나 일일주점 등 기금마련을 위해 온갖 일을 한 다음에 겨우 마련한 사무실이라 더 소중하다.
 

 

이런 현실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이고 비폭력적인 방법이란 거의 없었다. 그는 그 시민단체를 그만두고 취재하느라 인연을 맺었던 한국비정규노동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몇 년을 직접 비정규직들이 있는 현장에 돌아다녔다. 어떻게 보면 그는 현실의 가장 밑바닥을 접하고 들여다 본 것이다. 그 속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대뜸 현재 5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르네상스 호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 호텔 측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아주머니들이 했던 일들을 외주업체로 돌렸고 정규직이었던 아주머니들은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 자신들은 비정규직으로 바뀐 줄도 몰랐다. 왜냐하면 하던 일이 똑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월급날 보니 임금이 3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다. 호텔 측은 거기에 항의 하는 사람들을 계약만료를 핑계로 해고 시켜버렸다. 불법파견이라고 법원에서 아주머니들의 손을 들어 주었는데도 호텔에서는 복직시키지 않았다.

 

대부분이 40~50대인 아주머니들은 500일이 넘고 계절이 바뀌어도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아주머니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런데 어떤 법, 어떤 기관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도 열악할 대로 열악한 비정규직들만이 연대해 주었다. 그 힘으로 버티고 있다. 아주머니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어떻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종이 한 장 차이인지, 오늘의 정규직이 어떻게 내일의 비정규직이 되는지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언론에는 잘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을 쏟아내었다. 여의도에 증권거래소가 있는데 거기에서 전산업무를 담당하는 코스콤이라는 회사가 있다.

 

"가진 것이 없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야만적인 폭력, 공권력을 들이대는 일이 비일비재 했어요.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권력 유지에 필요한 만큼만 민주주의를 허용하면서 집권에 방해가 되면 밟아버리는 것이 현실이었어요." 활동가 퓨한승 씨의 말이다.
 

거기 노동자들도 정규직들이 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일들을 비정규직들이 하고 있다. 비정규직들은 자신들을 고용한 업체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회사이고 그것도 계속 바뀌면서 노동조건도 달라졌다. 이것에 항의해서 노조를 만들었는데 직장에서 내 몰아버렸다. 지금 증권거래소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하고 있다. 내내 순종하다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회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지였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서야 자신들의 내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차별로 인한 박탈감이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자신들이 당하고 살았는지. 그동안은 정규직 되려는 희망으로 온갖 것들을 참고 견뎠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이었는지도.
류한승 씨는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만나고 있다. 그들도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차비도 없어 걸어 다니면서 투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무실 월세는 항상 밀려있다. 원래 단체는 그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후원이나 당사자들을 조직해서 그 힘으로 운영해 나가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활도 책임지기 힘들기 때문에 센터를 후원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연대하는 투쟁 사업장이 너무 많아 한 푼이라도 지원해 줘야할 상황이다.

 


 

쫓겨 다니는 비정규직들의 든든한 진지가 될 거예요

맨 밑바닥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 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불평등한 빈곤이 너무 심해 한국사회가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 정도로 바닥으로부터 허물어지고 있어요. 더욱 문제인 것은 이렇게 문제가 심각한데도 사회 구성원들이 이런 문제를 깊게 성찰하지 않는 거예요. 자신만 성공하면 되고, 자신만 돈 벌면 된다는 ‘승자독식’의 생각이 아주 깊게 내면화 되어있어요.”
센터에서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특히 젊은 세대 청년층의 실업과 불안정고용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비정유직 법안은 뻥이야’이다. 길거리에서 직접 뻥튀기를 튀겨서 시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의 호응이 컸다. 새로운 형식의 시위 문화를 고민한 결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실업과 고용, 노동운동에 무관심한 청년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고 싶었다.

 

“작년에 종로 3가 큰 길을 막고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15년 전, 그러니까 1990년 대 초 강경대 열사가 전경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을 때 이렇게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20대 청년들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40, 50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때의 20대들은 직장인, 소시민들이 되어 자가용타고 차 막힌다고 투덜거리겠지요. 아마 비정규직들의 이런 집회라도 없으면 유럽의 이민자들처럼 폭동을 일으킬 겁니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미래의 전망이 없으면 사람들은 폭동을 일으킵니다. 그러니 길 막히는 것을 오히려 감사해야지요. 시위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면 최소한 폭동은 일어나지 않잖아요. 정말 인간적인 사회로 변하길 원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0년에 설립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문제 해결은 녹록치 않다.

 

 

센터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은 ‘장애인 차별금지’를 위해 장애인들과 같이 몸으로 싸우고, 대우빌딩 청소부 아주머니들과 함께 싸울 때는 용역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그들과 함께 한다. 그렇게 맞고,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해야 할 일들은 엄청 많아 피로가 쌓이는 데도 그들은 센터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했다. 적어도 센터는 어느 정도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낼 만한 가치가 있는 단체이고 모든 것에 쫓긴 노동자들을 지켜줄 진지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희망’이란 말은 너무 멀어 보이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사람들 곁에서 견뎌주는 그들이 있어 그래도 삶은 견딜 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삶의 공간을 우리는 ‘희망’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글 김순천 르포문학, 청계천 사람들 삶의 기록 `마지막 공간`과 세계화 시대 비정규직 사람들의 이야기 `부서진 미래`의 책임저자

사진 황석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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