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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들이보고느끼는국토 우리땅걷기모임

한낮 바람이 제법 매섭다.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도 유난히 길다. 절기로 우수(雨水)가 바로 코앞인데 날씨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길 어 지루함마저 든다. 이제 그만, 봄볕을 쬐고 싶다. 등 뒤로 비치는 따뜻한볕을 밭으며 밖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다. 휴일 오전,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한 번에 해결하고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을 때를 상상하며 내 게으름이 이뤄지지 못한 일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런 날 서울 구로의 한 사무실에서는 연령층이 다양한 구성원 50여명이 모여 현판식 행사를 치루고 있었다.
‘우! 리! 땅! 걷! 기! 모! 임!’

걷는 사람들
지난 2005년 국토를 거닐며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자했던 이들이 모여 만든‘우리 땅 걷기’모임이 사무실 한 켠을 얻어 소박하 게나마 현판식을 하고 그 기념으로 14킬로미터 되는 안양천을 걷는다고 했다. 모두들 약간은 상기됐지만 오늘 하루 걷는 코스가 그저 몸 푸는 정도라
며 식사를 마치고는 바로 길을 나설 준비들을 한다.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왔다는 초등학생부터 칠순이 넘은 어르신, 아들 을 따라 무작정 왔다는 60대 중반의 어머니도 무척 밝아보였다. 모두들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걷는 일이라면 나도 뒤지지 않는 편인데 이들 모 임을 따라가는 내 걸음이 종종 치기 시작했다. 다들 오랜 답사 기행 경력들이 있어서인지 트레킹 신발부터 복장, 간단한 요깃거리, 물 등의 물품들이 능숙하게 준비가 됐다. 수도권 400만 수도권 시민들의 물줄기인 안양천을걷기 위해 철산대교부터 시작해서 염창교를 지나 여의나루공원까지 가는 길, 초등학생 걸음으로 네 시간의 여유를 두고 계획한 길이다.
 
“걸으면 얻는 것이 많습니다. 우선 걸으면서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다른 사물을 자세히 볼 수가 있죠. 국토를 걸어가며 바라보고 땅의 숨결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고 체득할 수 있으니 건강에도 좋죠.

”‘우리 땅 걷기 모임’의 신정일(53) 대표는‘발로 쓴 국토 교과서’라고 도 불리는『다시 쓰는 택리지 1,2,3』의 저자이기도 하다.
‘우리 땅 걷기’모임은 이렇듯 신 대표의‘국토사랑’과‘걷기’에 대한예찬을 빌미(?)로 많은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현재 이 모임에는 전 국에 걸쳐 총 150여 명의 회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모임의 활동지역은 한정되어 있지 않다. 물론 온라인 상에서 모임을 준비하고 공지해
야 전국에서 일사분란하게 답사를 진행할 수 있다. 낙동강 길을 걷겠다 하면 그 지역에 사는 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타 지역에 사는 이 들은 그 답사 일정에 맞춰 중간에 합류하기도 한다.
땅마다 얽힌 우리의 역사
이제까지 모임에서 총 80여회가 넘는 걷기 모임을 진행했다. 섬진강을 따 라 동학농민의 치열했던 삶의 현장을 느껴보고 조선 최고의 산수라는 선유 동과 화양곡 계곡,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 아름다운 항구 통영과 미륵섬 을 지나 남해로 가기도 했다.
또한 황톳길에 펼쳐진 남도 땅을 걸으며 척박 한 삶을 살아갔던 민중들이 걷던 그 길을 쉼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길에는 우리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는 단 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역사를 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걷는 일은 곧 우리 후손들과 교류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또 자식이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땅 밟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통이나 역사 와 무관한 개발과 자본의 논리로만 우리 국토가 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백두대간의 미시령, 대관령, 죽령, 이화령은 말할 것도 없이 터널이 뚫려서 그 고개를 지나는 시간이 단축되어 버렸습니다. 빠른 것 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닐 겁니다.
18세기 인물인 이중환이 쓴『택리지』를 21세기에 살고 있는 그가 다시 쓰겠다고 한반도 땅을 20여 년 동안 걸어 다니며 느꼈을 안타까움은 그의 말 에서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국도와 고속도로, 거기다 고속철도까지 차를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편해졌다. 시간을 절약해 그 안에 다른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무언가 빠트리고 사는 느낌이 드는건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닐것이다. “땅은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가장 포근한 안식처이고 신앙처럼 성스러운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잠시 살다가 가지만 우리 대를 이어 사는 후손들 것이기도 하니까 좀 더 깊이 이 땅을 가꾸고 보존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니 사실 가꾸지 않아도 돼요. 가장 좋은 건 그대로 두는 거니 까…….”

신 소장은 2008년, 21세기에 사는 사람들이 조선 시대 사람들처럼 한적한 고갯마루를 넘으며 여유를 부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땅을 느 낄 수 있게 자동차 길 옆에 보행자 전용 도로를 만들어 땅 위에서 자연과인간이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보행로 만들기’운동이나‘옛 길 문화재
지정’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잃어버리고 놓치고 사는 우리의 길 문화를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걷고 오르고 건너야
“지금 국가 시책이라고 하는 것들 그리고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서 질 문을 받습니다. 이러이러한 사업들을 하려고 하고 이곳저곳에 생태계가 파괴되 는 데 어찌 생각하냐고……. 그러면 저는그럽니다. 가서 걸어봐라, 걸어보지도 않 고 산을 오르지도 않고 강을 건너지도 않고 그곳에 살아보지도 않고 어찌 알 수 있 냐는 거죠.

국가를 위하는 일이든 환경을위하는 일이든 국토를 걸어보고 느껴봐 야만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단 겁니다.”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쯤 신 대 표를 비롯한‘우리 땅 걷기’회원들은 지금쯤 한반도 어느 길 위에서 발바닥에 못 이 박히고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어 우리땅을 밟고 있을 것이다.
(http://cafe.daum.net/sankang)

“나는 국토가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와 같다고 본다. 사람이 땅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사람의 몸짓과 땅의 몸짓은 더불어 함께 움직인다. 봄에 쟁기
질을 하여 땅은 움직이며 변화하여 사계절을 달려간다. 상전(桑田)은 벽해 (碧海)가 되고 벽해는 상전이 되어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마을이 공장 지대가 되고 산이 평지가 된다. …… 국토는 인문지리의 사실에 의해 인식 되는 것뿐만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인식되어야 한 다.

『( 국토와 민중』박태순)

 

글. 사진 황석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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