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민중항쟁을 총칼로 제압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김대중을 비롯한 문익환,고은 등 민주 인사 37명을 계엄법, 반공법, 국가보안법이란 근거를 들어 내란음모 (1980.7.4)죄로 구금했다.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8월 27일, 마침내 그들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을 11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후 전두환은 국민투표(10.23)를 거쳐 5공화국 헌법을 만들고, 27일에는 국회를 해산,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발족하여 법적 조치들을 마련,‘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정치풍토쇄신 특별조치법’, 국가보안법 등을 개정하거나 제정했다. 피와 학살을 주저하지 않는 그의 이러한 야만적 권력욕 앞에 민중은 절망하거나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뜨거운 함성이일었다. 외침은 처절했으며, 그 핏빛울림이 민주와 통일의 꽃망울이 되어 관악을 흔들고 조국의 산하를 덮기 시작했다. 서울대 아크로폴리스는 그 무렵부터 주요 정치적 국면 때마다 저항과 투쟁의 진원지가 되었다. 학생운동의 리더는 물론 문익환 목사 같은 재야인사들도 수시로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수배, 구금의 길을 밟았다. 당시 아크로폴리스는‘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위험을 감수하는 공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