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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다시 희망이다

 
 
희망의 여명이란 밝은 대낮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피어오르는 것처럼 민주화 또한 독재와 철권통치의 암울한 시기에 고된 투쟁을 통해 이루어 진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정점이라 할 6월항쟁이 일어난지 어언 21년. 그런데 어째 날이 마냥 밝지만은 않은지 청계천엔 촛불 꺼질 날이 없다. 갑자기 우리 삶을 전복이라도 하려는 듯 생뚱맞은 어둠이 유령처럼 도처를 배회한다. 이상한 일이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와 함께하는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어야 비로소 날갯짓을 한다고 일찍이 헤겔이『법철학』 에서 설파한 바 있지만,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는‘황혼’이 여전히 필요한 것인가. 황혼은 어둠의 전제이자 서곡이다. 그리고 어둠은 역설적으로 다시 희망을 북돋운다.
바야흐로 경제가 공공선인 시대가 도래 했다. 우리의전 존재를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economicus) 로서만 평가하겠다고 한다. 경제 논리 중심에서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일이나 민주화운동을 기록하고 당시 사료를 보존하는 그 동안의 일들은 모두 다 무가치하거나 부담스럽거나 혹은 곤혹스런 일로 폄하되고 치부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그런 시각이야 말로 무지와 몽매의 소치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민주화운동에 유통 기한은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을 새 정부는 스스로를‘산업화와 민주화를 포섭하는 선진화’를 일굴 정권으로 자기 규정한 바 있다.
 
 
기념사업회 사료관 홈페이지를 열면 뜨는 문구 중에 ‘기억의 역사를 기록의 역사로’관리하여‘민주주의의 내일을 여는 역사의 보고’가 되겠다란 말이 있다. 무릇 위대한 나라의 지혜로운 국민일수록 없애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의 기록과 잔재를 지나칠 정도로 보존한다.
역사는 기억과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건망증을 권장하고 미덕으로 삼자는 나라에서 기억을 보존하는 일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역사는 후대의 정권 담당자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냥 뭉뚱그려 덮어버리거나 용서하고 화해한다고 발전 하는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까발리고 끊임없이 교훈을 찾아야 하는 교사와 반면교사의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가해자(또는 국가)와 피해자 사이의 용서와 화해가 현 실태 속에서 이뤄진다. 이것이 진정한 역사 발전이다. 그때 비로소 과거를 통해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당신들은 왜 선진화 시대에 자꾸만 과거 어두운 시절의 이야기를 들춰내어 상처에 소금을 뿌리냐고 애먼 소리를 할지도 모를 이들에게 최루가스에 절고 순정한 이들의 손때 묻은 사료들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한때 청춘을 바쳐 온 몸으로 일궈낸 이 정도 나마의 민주주의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물들이라고. “희망은 때론 위험하지만(희망의 결과로서의) 자유는 숭엄하다.”불멸의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제어다. 민주화운동의 사료들 또한 예외 없이 자유를 위하여 희망을 버리지 말 것을 보여준다. 지금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것 처럼 보이더라도, 대중들의‘일시적인 복종(short - lived-compliance)’현상에 착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고 거짓이 진실을 이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항쟁의 계절 6월을 맞아 다시 희망을 말해야 하는 이유이다.
 
글·사료 어수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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